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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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7일 오전 8시30분. 산행이 버거워진 걸까. 온몸이 나른해진다. 뼈 마 디마디 나사가 풀린 것같다. 출발한 지 얼마되지 않아 길까지 놓쳤다. 어 느덧 표식기도 보이지 않는다. 무작정 앞으로 나아간다. 다 팽개치고 휭 하니 서울로 올라가고 싶다.
의욕이 없기는 이튿날도 마찬가지. 오전 6시에 눈을 떴지만 몸이 일어나 질 않는다. 낮은 야산으로 이어지지만 거미줄 투성이다. 몸을 털면 수없 이 많은 곤충들이 거미줄과 함께 떨어진다. 신의티 고개는 완전 모기밭이 다. 이젠 모기에 물려도 무감각하다. 겨우 백학산을 지났는데… 절벽에서 떨어지는 꿈을 꾸고 화들짝 놀라 깼다.
새벽부터 발걸음을 서둘렀다. 거미줄 때문에 머리를 숙인 채 땅만 보고 걷다가 길을 잃었다. 다시 제길을 찾았지만 1시간30분이나 허비했다. 정 오 무렵 신풍리 고개에 도착했다. 비가 그치니 이번엔 땡볕이 괴롭힌다. 그늘에서 기온이 낮아질 때까지 휴식을 취했다. 장자동 고개에 도착하니 경묵이가 또 꼼짝달싹도 못한다. 이번 주는 계속 고난의 연속이다.
약을 사먹어야겠다는 경묵이를 눌재에서 만나기로 하고 출발했다. 아침부 터 푹푹 찌는 더위로 발걸음이 더디다. 몸은 무겁고 목이 바짝바짝 탄다. 겨우 속리산 천황봉에 올랐다. 오랜만에 등산객을 만나니 기쁘다. 문장대 에서 내리막길을 타다 또 길을 잃어버렸다. 자꾸만 계곡으로 빠져든다. 기를 쓰고 능선으로 붙어보려 했지만 능선은 신기루처럼 멀어져만간다. 또 아침부터 비. 회양산 오르막이 까마득하다. 발걸음을 떼자 마자 온몸 이 비에 젖는다. 쉴 때마다 한시간, 두시간, 남은 시간을 손가락으로 꼽 으며 한숨을 쉰다. 회양산 오르는 길은 온통 바위투성이여서 기다시피 한 다. 해질 무렵 백화산을 지나서야 완만한 능선이 나타났다. 랜턴을 켜고 이화령에 닿으니 한밤중이다.
7월14일 오전 6시40분. 하늘이 무겁다. 안개만 없었다면 경치가 그만일텐 데. 정오께 조령3관문에 도착. 근처 주막집에서 대금 소리가 바람에 실려 온다. 오후엔 살인적인 무더위. 온통 땀 범벅이다. 마역봉을 지나 부봉까 지는 그야말로 첩첩산중이다. 진을 쪽 빼는 지형이다. 하늘재에 오르니 민가 한채가 외롭게 고개를 지킨다.
오늘은 지금까지 가장 긴 거리를 걸어야 한다. 지도상으로만 25km. 다행 히 날씨가 산행하기에 안성마춤이다. 간간이 햇빛이 나오고 시원한 바람 까지 불어준다. 묘적령까지는 가끔 잡목지대가 나오더니 소백산 국립공원 에 들어선다. 산중 대로다. 해질녘 죽령에 도착. 국립천문대까지 도로 따 라 걷는다. 제2연화봉 한국통신기지 앞 식수대 옆에서 텐트를 쳤다. 모기 가 없다. 좀 추운것 말고는 환상적인 잠자리다.
아침 하늘엔 구름 한점없다. 또 푹푹 찌겠군. 다행히 제1연화봉부터 구름 이 적당히 해를 가려주고 바람이 간간이 불어준다. 비로봉을 거쳐 국망봉 까지 오르막이다. 그 오르막에 물통마저 무겁기다. 마당치와 고치령을 거 쳐 오후 8시께 마구령에 도착하니 달빛이 환하다. 이렇게 빛나는 달은 난 생 처음이다.
새벽부터 복통과 설사. 겨우 일어나 약기운에 의지해 오전 9시께 출발했 다. 왜 이 일을 시작했을까. 고통이 심하다. 무더위에 하늘이 어질어질 현기증까지 난다. 쓰러질듯 말듯 오후 5시 박달령. 늦은 점심에 설사약과 진통제로 몸을 추스린다. 옥돌봉을 지나서 내리막길인 도래기재까지 전력 질주했다. 저만치 지원조가 보인다. 살았다!
© 한겨레신문사 1997년08월21일 제 17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