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특집

반역의 숨결이 흐른다

(사진/계절마다 신비한 형상으로 다가오는 덕유산의 가을 정취.)

백두대간은 남쪽에서 보면 지리산에서 시작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덩치 가 큰 산. 유구한 산줄기를 따라 그윽한 계곡과 천연의 원시림, 그리고 수많은 문화재와 아픈 역사를 품고 있다. 둘레만 장장 3백리에 3도 5군 1 6개 면을 감싸고 있다. 여기에 해발 1천4백m급 이상의 봉우리 20여개를 거느리고 있다. 특히 천왕봉(1915m)에서 성삼재에 이르는 50여km의 주능 선은 우리나라 제일의 고산지대를 이룬다.

천왕봉의 동봉인 써리봉에서 벌어져 대원사 계곡, 장단골을 몰아 덕천강 으로 마무리되는 산청군 삼장면은 지리산에서도 가장 후미진 곳이다. 골 짝골짝이 어찌나 깊은지 인근에선 “그 사람 삼장갔다”면 못찾는 것으로 통한다. 지금도 이 깊숙한 고샅에는 곰잡이 사향노루잡이가 숨어 살고 있 다고 한다. 삼장면의 반대편, 즉 천왕봉의 북쪽으로 임천강까지 24km에 걸치는 칠선계곡도 마찬가지. 이곳에는 두지터니 목공장터니 하는 흔적이 남아 있다. 목수들이 몰래 숨어들어 도벌한 나무로 목기를 만들던 곳이다 .


광활한 별천지로 불린 청학동 마을

지리산은 또 아늑함도 갖췄다. 특히 경남 하동군 청암면 묵계리 일대는 그 넉넉함으로 유명하다. 지금도 상투를 틀고 주역을 공부하는 청학동 마 을이 있는 곳이다. 고려 이인노의 <파한집>이 전하는 이야기 한토막. “ 지리산은 두류산이라고도 하는데, 이 산을 둘러싼 고을이 10여주에 이른 다. 이 산의 신비를 다 살필 양이면 얼마 만큼의 세월이 걸릴지 모른다. 길이 극히 좁아 겨우 사람이 지나칠 만하며 어떤 곳에서는 아주 길이 막 혀, 기고 엎드리고 하여 가까스로 수 리를 들어간다. 그러다 비로소 광활 한 별천지가 벌어진다. 거기는 양전옥토로 곡식을 심기에 적당하며 오직 푸른 학이 산다.”

지리산은 예부터 말이 많았다. 이름부터 그렇다. 지리산이란 이름 외에 두류산, 방장산, 삼신산으로 불린다. 신선사상에 근거하는 삼신산 즉 봉 래산, 영주산, 방장산의 하나였던 것이다. 신라 때부터 다섯 뫼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기도 했다. 특히 이성계가 왕위를 찬탈할 속셈으로 명산을 두루 찾아 기도를 올릴 때 지리산 산신만은 거절했다고 한다. 그래서 반 역의 땅으로도 통한다. 일제 아래서는 징집을 피해 젊은이들이 모여들었 고, 해방 전후에는 숱한 빨치산들이 몸을 묻었다.

덩치가 크다보니 신기한 경관도 수없이 벌어진다. 평균고도 1천m를 헤아 리는 주능선의 분수령 상에 희한하게도 군데군데 맑은 샘물이 솟는다. 여 느 산처럼 종주하다 물을 긷기 위해 골짜기로 내려갈 일이 없다. 선도샘 을 비롯해 임걸령샘, 총각샘, 뱀실샘, 선비샘, 장터목샘, 천왕샘 등 큼직 한 샘만 10여개를 헤아린다. 밋밋한 육산이지만 속에는 바위벼랑이 많아 폭포도 즐비하다. 쌍계사의 불일폭포를 비롯해 만복대 아래 구룡폭포, 한 신계곡의 가네소폭포, 치밭목 못미쳐 무재치기 폭포, 써리봉 아래 용주폭 포, 장터목 아래 법천폭포 등이 유명하다.

지리산을 출발한 백두대간은 덕유산(1614m)에서 더욱 깊어진다. 무주구천 동의 긴 계곡을 비롯해 33경을 간직했다는 덕유산은 구비마다 절경이 펼 쳐진다. 신라와 백제가 국경을 삼았던 나제통문, 선녀가 가야금을 탈 때 물소리가 조화를 이뤄 신비한 소리를 냈다는 청금대, 층암절벽과 청송, 철쭉이 절경을 이뤄 마치 금강산을 축소시켜 놓은 것 같다 하여 소금강이 라 부르기도 하는 수심대 등등. 봄 철쭉과 가을 단풍도 뭍산에 뒤지지 않 고 겨울의 설경 또한 장대하다

(사진/숭실대학교 산악부 백두대간 종주팀. 맨 왼쪽 오경목씨와 가운데 박진우씨가 공격조로 나섰다. )

묘하게도 이 큰 산엔 그 흔한 절이 거의 없다시피 하고 성터마저 가뭇없 다. 덕유산국립공원 테두리 안을 다 뒤져도 절이라곤 신대리의 백련사를 비롯해 적상산의 안국사, 안성쪽의 원통사 등 손가락으로 꼽을 만하다. 그나마 이 절들은 탑파마저 보잘 것이 없는 말사 속암에 지나지 않는다. 유일한 성터인 적상산성도 고려말 최영장군이 축성한 것으로 신라 백제가 각축을 다투던 시대의 것이 아니다. 덕유산이 신라와 백제의 칸을 지르는 국경이었음에도 그 나제통문은 이 산 동쪽자락에서도 한참 멀리 있다. 훗 날 사람들이 “산이 턱없이 커 절도 성도 있을 수 없다”고 변명할 뿐이 다.


봄 철쭉·가을 단풍에 겨울 설경까지 간직

덕유산 주능선의 길이는 20여km. 그 오르내리는 산자락까지를 합치면 10 여km는 더 보태야 한다. 겨울의 풍설이며 적설량은 영동의 여느 산 뺨친 다. 남덕유산(1507m) 정상에서 내다보는 조망은 장관이다. 북쪽으로 평균 고도 1천3백m를 웃도는 높이를 유지하며 쭉 구불거리며 나우리치는 산줄 기가 장엄하다. 여기에 남쪽으로 아득히 갈매빛으로 떠오르는 지리산 연 봉들이 신비감을 더한다. 발치 아래 월봉산(1288m), 금원산(1352m), 기백 산(1330m)은 이웃처럼 가깝지만 동쪽으로 가야산(1288m)이 깃발처럼 나부 끼고, 서쪽으로는 진안의 마이산(673m)이 야트막하게 말 귀를 쫑긋거리고 있다. 덕유산에는 지리산의 세석평전 못지않은 산마루 평원이 있다. 넓이 는 세석평전보다 덜하지만 여기에는 세석의 돌무더기들이 간데 없는 대신 그저 활짝 트인 초원이다. 이 언저리에 5월 무렵에는 원추리꽃이 온산을 덮는다. 여기서 아랫배에 힘을 모아 질러대는 소리는 실실이 흩어지는 구 름 조각이다.

유강문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8월21일 제 17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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