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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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물을 건너지 않고, 물은 산을 넘지 않는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인 까닭이다. 옛 사람들은 산과 강이 서로를 넘보지 않는다고 여겼다. 비록 높은 산이 이웃해 있어도 사이에 물이 있으면 산줄기는 돌아갔고, 평야에 서도 산맥이 흐르면 물줄기는 물러선다고 했다. 백두대간은 그렇게 산과 물이 평화로운 한반도를 달린다.
백두대간! 민족의 영산 백두산에서 민중의 한이 서린 지리산까지 거침없 이 뻗어내린 산줄기다. 금강산을 넘고 설악산을 거쳐 오대산과 태백산, 속리산을 이어달린다. 그 힘이 하도 세차고 맑아 한반도를 받치고도 남는 다. 덕유산을 거쳐 지리산에 닿아서도 숨가쁨을 모른다. 그 장엄한 달리 기에서 이 땅의 숱한 물줄기를 낳고, 평야를 길러낸다.
백두대간은 요즘 산꾼들의 방문을 받느라 바쁘다. 국토의 등뼈를 밟아보 고자 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늘어났기 때문이다. 산꾼들은 바늘로 땀을 뜨 듯 구간을 나눠 오르기도 하고, 줄자를 뽑아내듯 쉼없는 종주를 감행하기 도 한다. 늘그막에 접어든 부부가, 아버지와 아들이, 그리고 그저 산을 좋아하는 무리들이 줄지어 백두대간의 품을 찾는다. 산나물로 배를 채우 고 샘물로 목을 축이며 홀홀단신 백두대간을 짓쳐오르는 이들도 있다. 그 들이 한결같이 말하기를 백두대간은 곧 이 땅이며 그 생명이다.
젊은이 두 사람이 얼마 전 백두대간을 밟았다. 폭우와 강풍, 그리고 폭염 을 뚫고 40여일을 걷고 걸었다. 도중에 길을 잃고 계곡을 헤매기도 했고, 병들어 쓰러지기도 했다. 모기떼와 뱀이 길을 막아서고, 하늘로 향하는 것 같은 오르막길이 전진을 방해했다. 그리고 인적없는 산에서 만난 고독 감. 정열만으로 오르기엔 백두대간이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등산화는 밑 창이 떨어져 너덜너덜해지고 옷은 땟구정물로 절었다. 세상에 저항해 산 으로 숨어든 동학군들과 빨치산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러나 백두대간이 무작정 사람에게 호된 것만은 아니다. 거기에는 붉은 바다처럼 펼쳐지는 노을이 있고, 세속을 품지 않은 구름이 행렬을 지어 흐르기도 한다. 자욱한 안개 사이로 언뜻 드러나는 산봉우리는 신비롭고, 산줄기 곳곳에 숨은 산마을의 인심은 푸근하다. 비록 군사용 참호와 송전 탑, 도로, 광산, 목장 따위로 상처투성이지만 다짜고짜 성깔을 부리지도 않는다. 백두대간은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제자리에서 묵묵하다.
대개 백두대간 종주는 지리산 천왕봉에서 시작해 고성 진부령에서 끝을 맺는다. 진부령 이후 향로봉까지는 군사통제지역이고, 그 너머는 휴전선 이 가로막고 있다. 남에서 북을 향해 가다가 분단의 장벽에 막혀 걸음이 멈추어질 때의 감회가 남다르다. 휴전선 너머 백두대간은 아직 가볼 길이 없다. 태어난 이래 한번도 스스로 끊긴 적이 없건만 사람들이 길을 막았 다. 그리고 총과 대포로 금을 그었다. 산새와 바람만이 그 단절로부터 자 유로울 뿐이다. 그래서 달리고 싶은 것은 철마만이 아니다. 백두대간은 철마보다 더 빨리 백두산까지 내달리고 싶은지 모른다. 아! 그 소리없는 아우성.
유강문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8월21일 제 17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