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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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반기 한국영화 중 <나쁜 영화>의 위치는 참으로 기묘하다. 이 영화가 얽혀있는 맥락이 복잡다기하기 때문이다. 10대 문제아가 그들의 실제 삶 을 직접 재현한다는 것. 이것이 영화의 기본틀이다. 그러나 정부가 학원 폭력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공륜 가위질까지 가세하는 바람에 이 영화는 영화로서의 평가 이전에 여러 맥락들의 관계에 의해 이미 사지절단이 나 버렸다. 더군다나 정해진 것 없다는 감독의 원칙 아닌 원칙은 관객들과의 소통에서 혼란만을 가중시킨다. 이러한 혼돈 속에서 <나쁜 영화>는 몸부 림친다. 그 출발은 카메라를 들고 직접 거리로 나서는 것. 서울이라는 거 대한 공간에서 배제된 부류인 가출 청소년과 행려들에게 초점이 모아진다 . 그러한 설정은 영화에 동조하지 않더라도 무심히 지나쳤던 ‘서울역’ 의 구석진 공간들을 다시 한번 보게 만든다. 감독의 애정이 비록 진부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나쁜 영화>가 휩쓸고 간 자리는 분명 우리의 치부이 기 때문이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발생한다. 감독은 이 상처를 어찌하려고 드러낸 것일 까. 영화 속에는 지하철 개찰구를 통과하는 십대들의 모습이 반복된다. 가로막이 튀어나오기 전에 재빨리 통과하는 모습은 영화적 야유이자 조롱 이다. 그것은 기성세대에 대한 불만과 연결된다. 하지만 이러한 몸짓 뒤 에 놓여진 것들은 여전히 혼란스럽다. 역설적인 예를 들자면 영화에서 삭 제된 ‘윤간장면’은 차라리 영화의 격을 유지해줬다고나 할까. 야유도 지나치면 심한 모욕감을 느끼는 법이니까.
<나쁜 영화>는 너무나 유혹이 컸던 영화다. 이러한 유혹은 감독의 의욕과 관객들의 기대치에 강박관념을 만들었다. 이것은 카메라를 들고 거리를 나섰음에도 영화가 현실과 맞부닥치는 것이 아니라 서울에 관한 ‘우화’ 를 만들어 버린 이유다. 영화는 기존의 장선우가 보여준 의미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 <경마장 가는 길>에서 현실과 비현실적 서사의 혼돈, < 너에게 나를 보낸다>에서 시작된 애니메이션은 신선함을 유발함에도 우화 를 만드는 데 일조한다. 우화란 교묘히 현실의 그물을 빠져나간다. 그런 점에서 나쁜 영화의 진짜 나쁜 점은 감독이 아직도 자신의 선택을 과감히 보여주지 못하는 데 있다. 그는 어떠한 것을 선택하기보다는 ‘짬뽕’이 라는 말로 모든 것을 대변한다. 그러나 영화가 짬뽕(종합)예술일지는 몰 라도 영화가 짬뽕(종합)인 것은 결코 아니다.
이상용/ 영화평론가
© 한겨레신문사 1997년08월21일 제 17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