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문화

홍철욱씨의 문화기획자 예찬론

홍철욱(36·문화방송 문화사업팀)씨는 8월3일 끝난 ‘제1회 서울 애니메 이션 엑스포’ 사무차장으로 뛰며 ‘문화기획자의 세계란 낮도 밤도 없구 나’란 사실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새벽에 퇴근했어도 아침 6시30분이면 총알같이 튀어나가야 하던 나날, 행사 4개월 전부터 밤 12시 이전에 귀가 한 적이 없는 중노동에 시달리고 난 그는 “좋아하지 않으면 하기 힘든 일”이라고 자신의 직업을 소개했다.

“한마디로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공연이나 이벤트를 꾸미는 일꾼입니다. 자기가 기획한 공연장에 사람들이 꽉 찼을 때, 관객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즐거워할 때, 온 몸을 치고 가는 짜릿함은 비할 데가 없지요. 이 바닥만 큼 할 일도 많고 개발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곳도 없을 겁니다. 문화를 좋 아하고 사랑하는 젊은이, 특히 엉뚱한 상상력과 창조적 힘이 넘치는 청년 들이 도전할 만한 미개척 분야죠.”

홍씨는 대학에서 금속공학을 전공한 공학도다. 학과 공부보다 연극반과 문학회 활동 등 문화 동아리에 더 빠졌던 경력이 오늘의 그를 있게 했다. 문화방송 아나운서로 출발했지만 적성이 아님을 발견하곤 자원해서 문화 사업팀으로 옮겼고, 지난 8년 세월이 어떻게 지나갔는 지 모를 만큼 행복 했다.

“끊임없이 공부하며 연구해야하는 것도 문화기획자의 고충이자 기쁨입니 다. 국내엔 이 분야에 대한 관련서적이나 시스템 개발이 거의 없는 백지 상태죠. 이번에 애니메이션 엑스포를 진행하면서 수십권의 책과 비디오를 보고 혼자 공부했습니다. 외국에 가보니 문화기획에 관한 전문서가 엄청 나요. 연극쪽의 예를 들면 예산이나 인력 규모에 따라 어떻게 극단을 경 영해야 하는가를 다룬 실무서가 수십종 있을 만큼 전문화되고 세분화돼 있었죠.”

홍씨는 단국대 경영대학원에서 예술경영학을 전공했고, 지금도 틈만 나면 새로운 정보와 지식을 찾아 달려가는 학구파다. 문화기획자협의회 출판기 획 위원장을 맡고 있는 그는 요즈음 회원 10여명과 함께 도서출판 부키에 서 펴낼 <공연기획이란 무엇인가>(가제) 원고 마무리에 매달려 있다.

“아마도 이 분야에서 처음 나오는 토종 실용서일 겁니다. 글쓰는 이들이 전부 현장에서 뛰고 있는 각 분야의 공연기획자들이기 때문에 철저하게 한국적 상황에서의 공연 전반을 생생한 자료와 체험으로 기록합니다. 또 공연장 대관은 어떻게 누구에게 전화해야 하는지 등의, 당장 써먹을 수 있는 정보를 집약한 부록이 붙어있습니다.” 지금 그의 머리 속에서 부글 거리고 있는 계획은 수십가지다. 어린이들을 위한 마당놀이 창작, 국악의 원형을 다치지 않으면서도 현대인이 재미있게 볼 수 있는 공연형식 마련, 직장과 공장을 찾아가는 좀더 ‘작은 공연기획’… 아이디어가 끝없이 꼬 리를 문다.

“이 직업의 최고 장점은 어느 공연장이나 무료입장할 수 있는 무한대 보 너스죠. 관심있는 공연은 대개 다 가봅니다. 거기서 다시 새 아이템의 에 너지를 얻죠.”

정재숙 기자/ 한겨레 문화부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8월21일 제 17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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