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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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주류에 반기를 든 뮤지션들이 클럽밴드에서 인대밴드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 개방적 클럽 연대에서 마련한 신촌문화축제 록페스티벌.)
이정엽/대중음악 평론가
1997년 한국 록 음악의 화두는 ‘얼터너티브’에서 ‘인디’로 ‘역행’ 하고 있는 듯하다. 얼터너티브라는 말이 오랫동안 유행했음에도 그 실질 적인 기반은 이제야 서서히 만들어지고 있는 듯하다. 여러 앨범이 제작되 고, 개클련(개방적 클럽 연대)에서 주최하는 ‘땅밑 달리기’라는 공연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등. 그렇다면 새롭게 제기되고 있는 ‘인디’라는 용 어는 무엇을 시사하는가.
‘독립적’임을 의미하는 ‘인디펜던트’(independent)라는 단어에서 나 온 인디(indie)는 일차적으로 메이저 레코드사의 영향력 내에 묶여있지 않은 인디 레이블을 의미한다. 자본 대 예술. 이는 시장 경쟁과 이윤 추 구라는 자본의 논리에서 한발짝 떨어져 있고자 하는 의지를 반영한다.
한국은 영·미와는 달리 다국적 미디어 복합기업이 음악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방송사를 중심축으로 하여 음반사와 기획사가 확고 한 주류의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따라서 걸음마를 시작한 인디 레이 블의 관건은 방송에 의존하는 기존의 음악 시장에 대한 ‘대안적’ 음악 을 순환시킬 수 있는 ‘독립적인’ 제작 유통망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이다.
공동체적 기반으로 기존 유통질서 탈피
인디는 뮤지션의 예술적 자율성과도 관련된다. 자기 음악에 대한 자기 통 제. 그래서 인디라는 말은 뮤지션의 태도를 지칭하는 말이기도 하다. ‘ 인디 뮤지션은 독립군’이라는 말은 과장이지만 팬들에게 확신과 신뢰를 주는 ‘뮤지션십’이 필요하다.
결국 ‘인디’는 주류에 대한 대안을 의미하는 ‘얼터너티브’, 방송에 의존하지 않고 공동체적 기반을 갖는다는 ‘언더그라운드’와 밀접한 관 계를 갖는 것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 소개할 세 장의 앨범이 모두 인디 앨범이라는 주장에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노 클루와 델리 스파이스는 작사·작곡·편곡은 물론 프로듀싱 까지 스스로 해냈지만 음반 제작과 유통은 기존 기획사와 음반사에 의존 한다. 반면 강아지 문화예술의 컴필레이션 앨범 <원 데이 투어스>는 클럽 , 컴퓨터 통신 등을 통한 판매를 거쳐 기존 유통망에 위탁 판매하는 방식 을 택했다. 따라서 이들은 위의 인디의 두 가지 기준 중에서 후자에 초점 을 맞추고 있는 셈이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홍대 앞 클럽 사운드’의 중심인 펑크가 아니라 좀더 장인적 노력과 음악적·음향적 실험을 중시하 는 흐름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이들이 들려주는 ‘인디의 미학’이 무엇 인지 살펴보자.
노 클루는 뮤지컬 제작, 민중가요 활동, 컴퓨터 음악 강의, 드라마 음악 작곡, 세션 활동 등 다양한 음악 경력 및 ‘생업’을 가진 4명이 모여 결 성했다. 이제 갓 데뷔했지만 경력과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이라는 나이 가 말해주듯 꽤 무르익은 사운드를 들려준다. 노 클루의 미덕은 포크 감 성을 기반으로 펑크 록, 하드 록, 테크노, 인더스트리얼 등 다양한 록 음 악의 스타일을 고유의 색채로 소화해냈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칫하면 익 숙한 음색과 곡조와 스타일의 답습이라는 함정으로 추락할 듯하다가도 그 위험을 요령있게 피해가고 있다. 포크 록 분위기가 지배하는 <그녀가 말 하길>과 전자음(혹은 노이즈)의 향연인 <거짓말>은 완전히 다른 사운드와 스타일이지만 누가 들어도 같은 밴드가 하는 음악임을 알 수 있다.
한편 델리 스파이스는 홍대 앞 몇몇 클럽에서 연주하며 이미 명성을 얻은 밴드다. 특히 컴퓨터 통신의 음악 동호회 등에서 컬트의 지위에 올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타, 베이스, 키보드, 드럼으로 구성된 델리 스파 이스는 이름만큼이나 맛깔스러운 곡조와 예쁜 화음과 다양한 사운드 효과 가 아기자기하게 엮어지면서 꽉 짜인 구조를 만들어낸다. <가면>과 <너의 목소리가 들려> 같은 곡은 얼핏 들으면 평범한 곡조를 가진 ‘가요’지만 키보드 위에 아기자기한 기타와 변형된 보컬이 예쁘게 어울리는 ‘질좋은 가요’다.
인디 레이블 ‘강아지 문화예술’에서 기획한 <원 데이 투어스> 앨범에서
는 해산한 삐삐롱스타킹의 두 멤버 권병준, 박현준 그리고 신윤철 등 이
름을 날리던 프로 음악인들이 지상에서 지하로 내려오고, 옐로 키친, 아
스트로노이즈 등 클럽 신에서 지명도를 가진 젊은 밴드들이 지하에서 지
상을 바라보며 조우하고 있다. 이 앨범의 가장 큰 미덕은 주류 댄스 가요
에 대한 해독제인 ‘제대로된’ 갱스터 랩(갱톨릭, <변기 속 세상>)에서
부터, 코끝이 시큰한 신산스러움을 전해주는 블루스 풍의 힙합(기완, <라
면을 끓이며>)을 지나, 공중에 둥둥 뜬 듯한 혹은 바다 속에 잠긴 듯한
환상 체험을 선사하는 아방가르드 전자음악의 실험(옐로우 키친, <뜬 구
름을 생각한다>; 아스트로노이즈,
이상이 전부는 아니다. 강아지 문화예술의 후속 앨범 소식이 들리고, 개
클련, 클럽 드럭과 재머스에서도 인디 앨범을 제작한다고 한다. 명망있는
뮤지션들이 도시락 레이블을 통해 음반을 발표할 것이라고도 한다. 인디
는 많을수록 반갑다. 비록 부산의 몇몇 클럽처럼 ‘합법적’이지 않은 공
연 때문에 영업 정지를 당하는 상황도 감수해야 하고, 홍대앞의 블루 데
빌처럼 누적되는 적자로 문을 닫는 상황에 내몰리는 어려운 상황이지만.
한꺼번에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고 착각하지만 않는다면 인디가 내딛는
첫걸음은 무겁지만 상쾌하다. 물론 우리 주위에는 “인디 음악이 뭐야?
인도 음악 아니야?”라고 묻는 사람이 훨씬 많지만….
© 한겨레신문사 1997년08월21일 제 171호
지하에서 지상으로, 지상에서 지하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