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문화

미래산업 최전선의 문화기획자

(사진/공연예술 선진화의 디딤돌 노릇을 하는 문화기획자협의회의 정기 모임. 사진 가운데가 초대 회장을 맡은 조경환씨.)

서울국제가족영화제, 춘천만화축제, 서울애니메이션엑스포, 서울국제만화 페스티벌, 아시아연극인페스티벌, 춘천국제인형극제, 97세계연극제 서울/ 경기, 광주비엔날레,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97세계음악제, 동아·엘지 국제만화페스티벌, 부산국제영화제… 숨차다! 지난 7월 말부터 오는 11월 말까지 불과 넉달 사이에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국제적인 이벤트가 무려 1 2개다. 이들은 영화·만화·연극·미술·음악 5개 문화 영역에 집중돼 있 고, 그 가운데서도 만화와 영화는 각각 4개와 3개 행사가 잇따라 열린다. 춘천인형극제처럼 10돌을 바라보는 ‘고참’도 있지만 대개는 올해 창설 됐거나 지난해, 또는 격년제라 2년 전에 깃발을 올린 축제들이다. 서울을 비롯해 부산, 춘천, 광주, 과천, 부천 등 6개 도시에서 각기 지역민들이 힘을 모아 만든 점도 눈에 띈다. 소나기 내리듯 쏟아지는 이 이벤트들은 누가 다 꾸려가나.


문화의 시대 예비하며 협회도 결성

‘문화기획자’란 이름으로 불리는 사람들이 뛰고 있다. 1∼2년새 이 분 야에 뛰어드는 젊은 인재들이 늘었다. 문화산업이 미래전쟁의 중심이 될 걸 알아차린 이들, 우리도 ‘문화의 시대’를 준비해야겠다고 나선 실무 자들이 머리를 맞댄 모임도 생겼다. 지난 2월22일 한국광고연구원에서 창 립 총회를 열고 출범한 ‘문화기획자협의회’(이하 문기협·02-765-0291) 는 발족 6개월 만에 회원수가 90명이 넘었다.

“현장에서 일하다 의기투합한 몇사람이 제대로 된 공연기획, 문화이벤트 를 해보자고 뜻을 모았죠. 술이나 먹고 헤어지는 친목회 대신 우리의 체 험을 공유하고, 정보를 나누고, 기록을 남기고, 인맥 그물을 만들어 후배 들을 끌어줄 수 있는 디딤돌이 되자고 손을 잡았습니다.”

문기협의 초대 회장을 맡은 조경환(연강홀 극장장)씨는 공연과 이벤트 각 분야에 폭넓게 흩어져 있는 회원들의 현장경험이 문기협이 갖고 있는 가 장 큰 자산이라고 자랑했다. 앞으로 각종 백서나 출판물 간행, 문화사랑 방과 차세대 문화기획자 양성과정 운영 등을 통해 회원들이 쌓아온 노하 우를 질높은 문화생산을 위한 거름으로 뿌리겠다는 것이다.

문기협이 8월16·17일 1박2일 일정으로 춘천 두산리조트에서 주최하는 세 미나도 이런 활동 중 하나다. ‘지방자치시대에 있어 지역문화축제 활성 화 방안’을 주제로 한 이번 세미나에는 국내 공연기획의 개척자라 할 수 있는 강준혁(스튜디오 메타 대표)씨를 강사로 초빙해 ‘보편적 특수성을 갖는 예술축제’란 강의를 듣고, 그가 10년 전부터 일궈온 춘천인형극제 를 관람할 예정이다. 회원들의 재교육을 위한 현장학습인 셈이다.

문기협이 태어난 배경에는 지난 95년 12월 중앙일보 문화센터가 국내에서 처음 개설했던 ‘공연기획의 세계’ 강좌가 큰 구실을 했다. 이 강좌의 1 기 과정을 이수한 사람들이 오늘날 문기협의 주춧돌을 놓은 이들이다. 이 강좌를 기획한 이가 중앙일보사 문화사업국 출신의 공연기획자 정재옥(크 레디아 대표)씨였다. 20대말에서 30대 중반이 주축이 된 문기협이 신세대 라면, 이에 비해 구세대 공연기획자들의 모임이라 할 수 있는 ‘한국공연 예술매니저협회’(회장 김용현)의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이다. 말하자면 정씨가 신·구 모임의 중간다리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국내 문화기획 자들의 단체는 이렇게 크게 두개로 나뉘어 있다고 보면 된다.

“매니저협회 분들은 주로 클래식 공연계에서 뼈가 굵으신 음악애호가들 이 많으신 편이죠. 그만큼 진정으로 문화를 사랑하는 애정파들이세요. 우 리들이 뭘 기획할 때 우선 돈 얘기부터 시작한다면, 그분들은 데려올 연 주자들의 예술성을 논하고 음악성을 따지시니까요.”

문기협의 부회장인 박영미(케이에스마케팅)씨는 문기협이 대중문화 영역 까지를 다 수용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할 일이 더 많다고 했다.


활동 영역 무궁무진… 부가가치 창조 등 과제

(사진/문화기획자들은 고전·대중문화를 아우르며 활동한다. 부산 이바하 페스티벌도 문화기획자의 준비로 이루어졌다. )

비교적 국내파인 이들 신·구세대 외에 일찌감치 외국 대학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이선철(사물놀이 한울림 기획실장)씨, 예음공연부에서 일하다 예 술행정분야의 해외 유학 지원프로그램인 삼성 멤피스트1기로 선발돼 미국 유학을 떠난 송희영씨 등 유학파가 있다. 현재 국내에서 문화기획을 공부 할 수 있는 학교는 성균관대 공연예술학과, 단국대 경영대학원 예술경영 학 전공, 중앙대 예술행정대학원 3개가 전부다. 이씨나 송씨처럼 예술행 정학이 발달한 영국이나 미국, 캐나다 등지로 일찌감치 유학을 떠나는 학 생들이 늘고 있어 21세기를 맞는 2000년대에는 이 분야의 전문인력이 상 당수 축적될 전망이다.

“문화기획자들이 해야 할 일의 범위가 워낙 넓어지고 빠른 속도로 변하 고 있기 때문에 현장에 있는 사람들로서는 일복이 터진 셈입니다. 특히 부가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 각종 견본시장과 캐릭터 개발 등 돈벌이가 되는 연계 사업 연구, 나날이 필요성이 커지는 지역축제의 적절한 창조 등 돌아보면 숙제가 너무 많아 행복한 비명을 지르게 됩니다.”

조경환 회장은 이런 원대한 ‘꿈의 창조자’인 문화기획자의 세계로 좀더 많은 동지들이 찾아와 주기를 기다린다고 했다.

정재숙 기자/ 한겨레 문화부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8월21일 제 17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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