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표지이야기

정비, 느긋하게 못한다

(사진/국내 항공사 정비의 문제점은 항공산업의 미성숙이라는 구조적 요소에 기인하는 바 크다.)

지난 8월6일 새벽 추락한 대한항공 801편은 전날일 5일 ‘바쁜 하루’를 보냈다. 이 비행기는 5일 오후 4시14분에 서울을 출발해 오후 5시26분 제 주에 도착했다. 그리고 40분 만에 다시 제주를 출발해 저녁 7시27분 서울 에 착륙했다. 또 55분 만인 8시22분 괌으로 떠났다.


비행기도 피곤하다

이런 빡빡한 일정에 ‘피로감’을 느끼는 것은 조종사만이 아니다. 기계 인 비행기도 역시 ‘피로감’을 느낀다. 그렇다면 항공사 정비진은 비행 기의 피로감을 제대로 씻어주고 있는 것일까.

사고기도 8월5일 두차례 지상에 착륙해 있던 40분·55분이 정비를 할 수 있는 기회였다. “과연 충분히 정비했을까”라는 논란은 그래서 가능하다 . 사고기가 이날 서울과 제주에서 받은 정비는 ‘트랜싯 체크’다. 트랜 싯 체크는 랜딩 기어, 엔진, 연료 등 30여가지에 대해 점검하는 것으로 보통 2시간이 걸린다. 그런데 주어진 시간은 채 1시간이 않됐다.

이에 대해 대한항공 정비부문의 한 간부는 “2시간이란 기준은 한 사람이 정비를 담당했을 경우”라면서 “체류기간이 짧아지면 그만큼 많은 인원 을 투입하기 때문에 시간이 짧다고 정비가 불량해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또 사고기는 3백50 비행시간마다 받는 육안검사인 ‘A’검사와 정밀진단인 감항검사를 각각 지난 7월12일과 7월4∼7일 무사히 통과했다 고 한다.

문제는 이런 검사증명서가 안전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A검사와 감항검사를 통과한 사고기는 지난 7월30일 모스크바에서 서울로 오던 중 자동착륙 장치 3개 중 하나가 오작동을 일으켰다. 사고기는 또 지난 6월1 1일 김포공항을 출발해 모스크바로 가다 기체 이상으로 몽골상공에서 되 돌아왔다.

물론 이런 ‘과거사’에 근거해 “추락사고의 원인을 정비불량”에 직결 시킬 수는 없다. 한-미 연합조사팀도 사고원인 조사에서 조종사의 실수나 관제 잘못쪽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균열이 많아지면 다리가 무 너진다”는 단순한 진리에 비춰볼 때, 국적기의 높은 사고율은 이런 작은 정비실수들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국내 정비인력 너무 얇아

특히 여름철 성수기가 되면 정비문제는 크게 부각된다. 성수기를 맞아 국 내 항공사들이 ‘항공노선 증편경쟁’을 벌이기 때문이다. 대한항공은 올 성수기를 맞아 국제선에 무려 1백30편을 추가로 늘렸고, 아시아나항공도 이 기간 동안 정기편 외에 38회의 임시편을 만들었다. 문제는 정비능력이 이런 증편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점이다. 최근 부산지방항공청의 발표는 이와 관련해 상당한 우려를 낳게 한다. 부산지방항공청은 관내 10개 지방 공항의 상반기 결항·지연운항 건수가 1백7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72 건보다 49% 늘었다고 밝혔다. 이는 국내 항공기들이 정비시간에 쫓기는 비율이 그만큼 높아졌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이렇게 정비와 관련된 불안감이 늘고 있는 것은 우선 국내 정비인력이 적 다는 데 기인한다. 국내 항공사들이 정비인력을 뽑는 통로는 크게 3가지 로 나뉜다. 군출신, 자체 훈련학교, 항공관련 이공계통 출신자들이다. 4 천명의 정비인력을 보유한 대한항공쪽은 “이중 특히 2년과정의 자체 훈 련소를 통해 정비사를 뽑는다는 사실은 우리나라 정비인력층의 두께를 그 대로 보여준다”고 말한다. 미국의 경우는 항공산업 발달로 이미 두터운 정비인력이 확보돼 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 는 크게 보아 항공산업 규모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긴 하다. 그러나 대 한항공의 한 관계자는 “삼성 등 재벌기업들도 항공사업에 뛰어들려고는 하지만 인력양성을 위해서는 힘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며 관련기관들의 ‘의지부족’을 비판했다.

우리나라 항공정비가 ‘매뉴얼방식’에 의존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국내 항공사들은 새 기종이 들어오면 단기연수와 함께 ‘매뉴얼’에 의존해 정 비를 한다. 그러나 교통개발연구원 김종석 실장은 “항공정비는 항공기생 산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전제하고, “따라서 항공기를 직접 만드는 미국 등은 그 기술이 정비에까지 자연스럽게 연결돼 효율이 높다”고 지 적한다.


‘위촉감정사 제도’폐지 논란

정부 정책도 마찬가지로 안전은 뒷전이다. 대표적 사례가 ‘위촉감정사제 도’다. 정부는 지난 95년부터 그동안 건교부가 맡아오던 감항검사를 대 한항공과 아시아나에서 직접 할 수 있도록 바꿨다. 현 규정에 따르면 3년 중 1년만 건교부가 감항검사를 하고 나머지 2년은 각 항공사에서 담당한 다. 건교부는 이런 조처를 취하게 된 이유로 항공사의 규제완화 요구와 인력난을 들고 있다(쪽기사 참고). 그러나 항공전문가들은 부실 감사의 우려가 높은 만큼 ‘위촉감정사제도’를 폐지할 것을 정부에 권고해왔다. 건교부는 이에 대해 “이것이 외국에서도 확산되는 추세인 만큼 앞으로 폐지는 고려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건교부는 하지만 현재 대한항공과 아시아나를 통틀어 90명 정도인 이들 ‘위촉감정사’들이 “자사 이익을 위해 부실검사를 할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을 받아들여 그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보근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8월21일 제 17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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