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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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8월7일 청와대에서 신임 긴태정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주는 김 대통령. 임기말 권력누수 방지와 퇴임 뒤 안전판 마련을 위한 인사였다는 시각이 절대적이다.)
신한국당 대통령 후보 경선이 점차 열기를 더해갈 때였다.
전직 검찰 고위간부 하나가 대통령의 부름을 받고 청와대로 들어갔다. 온 국민의 눈길이 ‘용들의 전쟁’에 쏠려있던 때인 만큼 으레 경선과 관련 한 자문쯤으로 생각하고 “심려가 크시겠습니다”라고 여쭈었다.
“장관 20명하고도 안 바꿔”
대통령은 “음”이라고 짤막하게 대답하고는 엉뚱하게도 “다음 검찰총장 은 누가 좋겠어”라고 묻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내내 검찰총장 이야기였 다. 이때 대통령이 했다는 말은 이렇게 전해진다. “검찰총장은 장관 20 명하고도 안 바꿔.”
95년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를 앞둔 시점이었다. “이제 지방자치제가 실시 되면 권력이 분점되고 대통령의 절대권한도 약화되겠죠”라는 질문에 한 검찰간부는 이렇게 대답했다”
“마오쩌둥이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군부가 나설 수 없 는 지금에 와서 통치권의 요체는 검찰과 경찰이다. 수사권만 장악한다면 어떤 흔들림도 없다.”
검찰의 막강한 힘은 수사지휘권과 함께 인신구속에 대한 전권을 독점하고 있는 데서 비롯된다. 특히 민주화라는 큰 흐름 속에 군부는 발목이 잡히 고 안기부의 위세는 예전만 못해, 그 권력의 공백상태를 국가의 형벌권으 로 메우고 있다는 점에서 검찰의 정치적 구실은 더욱 확대되고 있다.
지난 4년 반 동안 줄곧 개혁과 사정을 내세워 왔던 김영삼 대통령인 만큼 “권력은 검찰의 칼 끝에서 나온다”는 점을 누구보다도 실감했을 법하다 . 이에 따라 김 대통령은 그동안 검찰총장들을 철저히 ‘자기 사람’으로 앉혔다.
임기를 엇비슷하게 시작한 박종철 총장은 TK(대구·경북)였기에 취임 6개 월 만에 도중하차할 수밖에 없었다. “같은 영남 출신이지만 생리적으로 호흡이 맞지 않아 퇴진을 유도했다”는 것이 검찰 내 정설이다. 이후 검 찰 내 최고 재력가라는 흠이 있는데도 김도언 대검차장이, 사시 1회의 선 두주자 송종의 대검차장을 제치고 사시 2회의 김기수 서울고검장이 잇따 라 총장에 오른다. 각각 동래고와 경남고 출신으로 둘다 ‘부산내기’인 것은 물론이다.
지난 7일 임명된 김태정 신임 검찰총장도 이런 맥락에 닿아 있다는 데 검 찰 내 별 이견이 없다.
물론 김 신임 총장을 부산사람으로 보기는 어렵다. 부산에서 태어나 초등 학교 4학년까지 자라났으나, 부친이 호남인 데다 전남 여수와 광주에서 중·고교를 다녀 오히려 ‘호남인맥의 대부’로 꼽혀왔다.‘지리적 고향 ’은 전라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정치적 고향’을 묻는다면 이야기 가 달라진다.
김태정과 최영광의 경합
김 총장은 특유의 호방한 인품과 끈끈한 친화력으로 평소 정치권과의 교 류가 잦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중에서도 PK(부산·경남)를 기반으로 한 신한국당 민주계 정치인들과는 오랫동안 교분을 맺어와 막역한 사이라 는 것이다.
특히 “김영삼 대통령이 집권하기 전부터 알고 지내던 유일한 검사가 바 로 김 총장”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대통령으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받 아왔다는 것이 검찰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이와 관련해 한 검찰 관계자는 “김 총장은 남들이 부탁을 해오면 거절을 못하는 성미다. 대통령이 야당시절 어려울 때 김 총장을 통해 크고 작은 민원을 해결했다. 이렇게 몇번 신세를 지면서부터 신뢰관계가 싹튼 것으 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김 총장은 현 정부 들어서서도 대검 중수부장과 부산 지검장, 법무부 차 관 등 민주계 실세들과 계속 의사소통이 필요한 자리에 앉아 유대의 끈이 점점 강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특수관계에 비쳐보면 ‘김태정 검찰총장’이 당연한 결과로 보이지 만 발표 전날까지만 해도 검찰 내부에서는 후임 총장에 대한 예상이 크게 빗나갔던 것도 사실이다.
판단이 흐려진 것은 이회창 신한국당 대표가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면서부 터다. 새 검찰총장은 2년 임기중 현 대통령과 같이 할 수 있는 기간이 6 개월 남짓에 불과하고 나머지 1년 반을 새로운 대통령과 함께 해야 한다. 때문에 임명권자는 김 대통령이지만 이 대표의 뜻에 더 무게가 실리지 않 겠느냐는, 어떻게 보면 지극히 상식적인 관측이 대두됐다.
이때 주목받은 인물이 최영광 법무연수원장이었다. 최 원장은 이 대표의 경기고 6년 후배로 검찰 안에서는 경기고 인맥의 상징이다. 또 이 대표와 아주 가까운 사이로 알려져 있는 김두희 전 법무부 장관과는 경기고 동기 동창으로, 김 전 장관이 이 대표에게 강력히 천거했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
여기에 또다른 동기동창인 문종수 청와대 민정수석의 드러나지 않는 지원 까지 가세해, 총장 임명이 발표되기 하루 전인 6일에는 법무부쪽에서 “ 최영광으로 확정됐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예측은 빗나갔고 검찰 안에서는 “그러면 그렇지 대통령이 어떤 사람인데”라는 수근거림이 들렸다.
김 총장의 한 측근은 이런 최 원장과의 ‘경합’과정에 대해 “이제와서 하는 말이지만 김 총장은 발표 3일 전 이미 자신의 거취는 물론 장관 경 질 내용까지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3일 전이라면 8월4일인데 이때는 최상엽 법무부 장관도 자신이 바뀌리라는 것을 몰랐던 것으로 전해져, 대 통령의 김 총장에 대한 신임도가 어느 수준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최상엽-김기수 체제엔 서운한 감정
김 대통령이 검찰총장 자리에 자기 사람을 앉히는데 이토록 집착하는 것 은 “임기말 권력누수 현상을 막는 것은 물론 퇴임뒤의 안전판을 마련하 자는 뜻”이라는 분석에 검찰 관계자들의 의견이 대체로 접근하고 있다. 대통령 선거기간이 다가오면 올수록 권력의 추는 급격하게 후보쪽으로 쏠 릴 것이 분명하지만, 김 대통령은 ‘불법선거운동 수사’라는 검찰권으로 정국의 주도권을 계속해서 쥘 수 있다. 또 자리를 물러난 뒤 닥쳐올지도 모를 위험에 대해서도 자신에 충실한 검찰이라면 최소한의 버팀목으로 작 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질 수 있다.
그렇지만 검찰총장에 대한 대통령의 믿음이 언제까지 계속될 수 있을 지 는 미지수이다.
자신의 둘째아들을 감옥에 집어넣은 것은 그토록 믿었던 최상엽 장관-김 기수 총장 체제가 아니던가. 김 대통령은 부임한 지 채 5개월도 되지 않 는 최 장관과 임기가 40여일밖에 남지 않은 김 총장을 물러나도록 했다. 명분은 선거관리 내각 구성이었지만 최소한 이 둘에 대해서는 서운한 감 정이 우선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기수 전임 총장은 지난 5일 자신의 후배인 김종구 서울고검장이 장관으 로 임명되자 그날 바로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사의를 표명했다. 이때 전화 저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사표를 내려면 내일 내라”는 지극히 사무적인 말뿐이었다고 한다.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과 현직 대 통령의 아들을 구속하는 등 역대 검찰총장 가운데 가장 고생이 심했지만 위로의 말 한마디 없었다고 한다.
권력의 서슬이 퍼렇게 살아있는 현직일 때도 맘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검 찰인데 퇴임 뒤에는 어떨지 지켜볼 일이다.
김의겸 기자/ 한겨레 사회1부
© 한겨레신문사 1997년08월21일 제 17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