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경의 맛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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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안 북부로 갈 땐 주로 한계령을 넘었다. 하지만 몇해 전부터 길 사정 에 밝은 이들은 한계령을 넘지 않는다. 그대신 홍천군 내면 창촌리를 거 쳐 구룡령을 넘는다. 지난 93년 험준하기로 이름난 구룡령 아흔아홉굽이 포장을 끝냈기 때문이다. 구룡령으로 이어지는 길은 내린천 물줄기를 따 라오르며 오대산과 계방산, 개인산과 가칠봉 등 1천5백m급 거봉들이 둘러 첩첩산중을 이룬다. 길이 뚫린 지 3년이 지났지만, 아직 오지의 신선함이 그대로 남아 있어 비경을 선사한다.
이 길 중간쯤 넓은 여울과 함께 시내가 흐르는 곳에 옹기종기 예쁜 시골 집들이 산간마을을 이룬 곳이 있다. 여울을 가로지른 큰 다리 아래로 맑 은 물이 흐르고 고운 자갈밭이 펼쳐진 곳이다. 구룡령을 넘나들며 잠시 쉬어가기에 딱 알맞다. 여울이 넓어서인지 마을 이름이 ‘광원’이다.
새로 길이 나기 전 옛 광원교가 걸쳐 있는 언덕에는 예쁜 이름의 민박집 이 있다. ‘올콩이네 민박식당’. 지금은 강원대 음대 1학년인 딸의 어릴 적 이름을 따 그렇게 지었다는데, 주인 양태환(49)씨 부부의 마음씨가 그 만큼이나 소박하고 정감있다. 흔히 강낭콩으로 불리는 올당콩의 빨갛거나 짙은 보라빛으로 맨들맨들한 모습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어 첫아이 이름 을 올콩이라 불렀다는 것이다. 올당콩을 좋아하는 부부는 식당을 열고, 가족들이 좋아하는 올당콩을 넣은 보리밥을 주식단으로 내걸었다. 그래서 정확한 이름은 ‘올콩이네 콩보리밥’이다.
그런데 이 콩보리밥은 이름이 예쁘고 새롭게 들릴 뿐, 실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늦은 여름 시골에서는 무시로 먹는 밥이다. 붉은 자주빛을 내는 강낭콩은 주로 집 근처 텃밭에 심는다. 포기가 지는 것은 포기당콩이라 하여 농가에서는 이미 수확을 끝내고 밥에 얹어 먹는다. 바로 올당콩이다 . 집 울타리나 밭 가장자리 넝쿨에 열리는 것은 추석 때나 수확해 송편 속에 넣어 먹는다. 이를 줄당콩이라 한다.
보리밥은 쌀반 보리반 섞으면 완전히 보리밥이 된다. 거기에 당콩을 듬뿍 넣으면 완전히 콩밥처럼 보인다. 그래서 보리밥을 싫어하는 어린아이들도 달콤한 콩맛에 보리밥을 마다하지 않고 잘 먹었다. 더욱이 여름날 큼직한 그릇에 콩보리밥을 수북하게 퍼놓고, 대접에 덜어내가며 시원한 냉수에 훌훌 말아먹으면 그 맛이 일품다. 보리쌀과 함께 푹 뜸이 들어 툭툭 터진 당콩은 속의 전분이 물에 풀어져 냉수를 숭늉처럼 걸죽하게 만든다. 숟가 락을 뜰 때마다 구수한 물맛이 입에 감친다. 게다가 그렇지 않아도 매끄 러운 보리밥은 물까지 말아놓았으니 씹힐 겨를없이 넘어간다.
올콩이네 콩보리밥은 바로 이런 옛날의 향수를 그대로 맛보게 해준다. 더 욱이 옥수수밭 이랑에서 연하게 자란 열무김치도 알맞게 익어 입맛을 돋 운다. 여기에 주인이 손수 뜯어다 말린 산채 묵나물과 온돌방에 겨우내 띄운다는 달콤한 날된장, 금방 따온 풋고추도 제격이다. 냇가에서 민물고 기를 잡아다 풋고추를 넣고 조림한 것까지 밑반찬으로 내고 있어 시골 정 취는 더욱 짙다.
아직 휴가를 안 떠났거나 동해안으로 갈 예정이라면, 길을 질러갈 겸 광 원계곡에서 하루쯤 묵으며 올콩이네 콩보리밥으로 옛 향수를 그려볼 만하 다. 내린천 상류 맑디맑은 물에 몸을 담그면 더위도 저만큼 물러선다.
민박하려면 미리 전화예약(0336-32-5728)을 해두는 것이 좋다. 대중교통 을 이용해 아예 광원계곡으로 피서를 떠나려면 동서울터미널에서 홍천행 직행버스를 탄다. 홍천에서 내면행 버스로 창촌에 내려 전화를 걸면 올콩 이네 세레스 트럭이 마중나온다.
보리밥 즐기는 내린천 야영
서울에서 광원으로 가는 길은 홍천에서 인제로 오르다가 춘천에서 홍천으 로 넘어오는 56번 도로와 교차하는 신내사거리로 이어진다. 여기서 우회 전해 56번 도로를 계속 따라가면 된다.
길은 서석과 율전, 창촌 순으로 이어져 광원을 거쳐 구룡령을 넘어 양양 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휴가철이나 주말은 신내사거리의 교통체증을 미리 피해가는 것이 좋다.
홍천교를 건너기 직전에 우회전해 동면을 거쳐 서석으로 우회하면 전혀 막힘이 없다. 새롭게 떠오른 피서지여서 방이 넉넉하지 못한 편이라 방이 없을 경우를 대비해 야영준비를 해가는 게 좋다. 밥만 부탁하면 경비를 절약할 수 있어 더 좋다.
© 한겨레신문사 1997년08월21일 제 17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