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정성, 큰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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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을 상대하면서 일본에 대한 인식이 더욱 나빠졌어요.” 일본인 을 상대로 한 설계전문회사 명성건축에서 통역사로 일하는 최은라(28)씨. 그에게 일본인은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이웃이었다. “설계도면을 작성해 줄 때마다 우리나라 사람들을 깔보기 일쑤였어요.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이 무너진 뒤에는 ‘도대체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할 수 있냐’고 비꼬기도 하고요. 50∼60대 일본인들의 경우 아직도 한국을 자신들의 식민지처럼 취급한다는 느낌마저 드는 때도 많아요.”
일본 고객으로부터 주문을 받고 설계도면에 일본어 표기를 도맡아 해온 그가 일 속에서 만난 일본인은 이런 부정적인 모습으로 다가왔다. 대학 때 고고미술사학을 공부하면서 가슴에 품게 된 일본에 대한 막연한 적대 감이 3년 직장생활 동안 현실로 굳어진 셈이다. 그러던 그에게 일본인을 다시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지난 96년 11월이었다.
일본 고객사의 사장을 접대하게 됐다. 언제나처럼 식사를 같이 하면서도 별로 흥이 나지 않았다. 그 역시 마음속의 일본인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함께 온 설계사 사오리는 좀 달랐다. 또래이면서 남달리 친절했고 , 무엇보다 한국을 이해하는 듯했다. 자연스럽게 서로의 취미에 대한 이 야기가 오갔다. 화가들의 삶에 관심이 있던 최씨는 무심코 “일본에는 고 흐가 동생에게 보낸 편지들을 모은 서간집이 나와 있다던데…”라며 말을 건넸다. 꼭 읽어보고 싶었지만 딱히 부탁할 처지도 아닌지라 흘러가는 말 로 내뱉은 것이었다.
그날 단 한끼 식사를 함께 한 뒤 최씨는 다시 일상에 파묻혔다. 일본인들 과 부대끼는 나날이 이어졌다. 사오리의 존재도 까맣게 잊혀졌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로 조그만 소포꾸러미 하나가 날아들었다. 꾸러미를 풀어본 그는 너무 놀랐다. 자신이 그렇게 읽고 싶어하던 <반고흐 서간전집> 5,6 권이었다. 사오리가 그날 그 말을 흘려듣지 않고 보낸 것이었다. 더욱이 “4권까지는 절판돼 구할 수 없어 미안하다”는 말도 담겨 있었다. “기 쁨보다는 놀라움이었어요. 솔직히 책을 받을 만한 관계도 아니고 우연히 한번 만난 자리에서 지나가는 말로 했을 뿐이었으니까요.”
책은 일본인에 대한 최씨의 인식을 바꾸는 전환점이 됐다. 그는 지금도 사오리와의 우정을 돈독히 하고 있다. 편지를 주고받고 가끔씩 안부전화 도 건다. 그는 올 여름 인사동을 거닐다 부채 하나를 집어들었다. 폭염 속에서 비지땀을 흘릴 사오리를 위한 것이다. “일본인들과 부대낄 때마 다 사오리가 보낸 서간집을 뒤적여요. 그러면 나쁜 기분이 말끔히 씻겨나 가죠.”
신승근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8월21일 제 17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