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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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극한 스포츠이 대명사 스카이 서핑. 서핑보도를 신고 공중에서 낙하하며 온갖 고공묘기를 선보인다.)
“셋, 둘, 하나, 번지!” 구령에 맞춰 눈을 질끈 감고 뛰어내린다. 떨어 지는 속도에 점점 가속이 붙는다. 시속 1백km. 까마득한 현기증으로 머리 가 핑핑 돌 지경이다. 발목을 묶은 로프가 나의 생명을 지켜줄 수 있을까 . 심장이 멎을 듯한 공포감에 휩싸인다. 로프의 반동으로 허공을 몇번 오 르락내리락 하면 등줄기는 식은 땀으로 흥건하다.
번지점프는 대중화된 극한 레포츠 가운데 비교적 덜 ‘극한적’인 것에 속한다. 떨어질 때의 짜릿한 공포감, 아찔한 낙하속도가 주는 스릴과 쾌 감은 다른 레포츠에 비할 바가 못 된다. 하지만 극한 스포츠(extreme spo rts) 동호인들은 번지점프가 모험적이라는 말에 코방귀를 뀐다. 번지점프 는 편의점에서 커피를 사 마시는 것만큼이나 손쉽고 위험성이 적은 레포 츠라는 것이다.
번지점프는 위험성 없는 레포츠일 뿐
극한 스포츠란 목숨을 내놓고 즐기는 위험천만한 스포츠를 말한다. 평범 한 것을 거부하는 모험광들이 좀더 강한 자극과 스릴에 탐닉하기 위해 생 명을 담보로 한 새로운 스포츠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 를 넘나드는 만큼, 극한 스포츠에는 늘 죽음의 위험이 따라다닌다.
현재 극한 스포츠라고 불릴 만한 것에는 스카이서핑, 스트리트 루지, 베 이스 점프 따위가 있다. 우리에게는 낯설기만 하지만, 외국에서는 90년대 를 전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미국에서는 극한 스포츠의 ‘올림 픽게임’이라고 불리는 X-게임이 3년 전부터 열리고 있을 정도다. 21세기 가 되면 야구는 마이너 스포츠로 전락하고, 극한 스포츠가 메이저 스포츠 로 등장할 거라는 성급한 전망마저 나오고 있다.
번지점프도 초기에는 극한 스포츠의 반열에 올랐다. 번지점프를 만든 모 험광들이 빌딩이나 다리난간 따위의 높은 곳이라면 아무 곳이나 로프를 매달고 뛰어내릴 때는 적어도 ‘극한적’이라고 분류할 만했다. 로프의 강도가 정확하게 검증되지 않았기 때문에 생명에 대한 위협은 ‘현실’이 었다. 하지만 번지점프가 대중화되고 안전성이 보강된 지금은 극한 스포 츠의 자리를 내주고 있다.
극한 스포츠의 대명사로 꼽히는 것이 스카이 서핑(sky surfing)이다. 항 공 레포츠인 스카이 다이빙과 수상 레포츠인 윈드 서핑을 합친 것이다. 우선 3∼4km의 창공에서 널빤지 같은 서핑보드를 신은 채 뛰어내린다. 항 공기에서 이탈하면 갑작스럽게 가속이 붙으면서 초고속으로 떨어진다. 그 러나 12초 정도가 지나면 공기의 저항으로 부력이 생기고, 시속 1백80km 정도로 일정하게 낙하한다.
이렇게 일정한 속도에 달하면 마치 물위에서 윈드서핑을 타는 것처럼 하 늘을 전후좌우로 헤치며 서핑을 시작한다. 기타를 치기도 하고, 드럼을 치기도 하며, 몇바퀴 회전을 하기도 한다. 보드에 부딪히는 기류를 이용 해 다양한 고공묘기를 선보이는 것이다. 고공 서커스를 펼치는 시간은 60 여초. 지상 7백m높이에 이르면 낙하산을 펼치고 천천히 착륙을 시도한다. 항공기에서 뛰어내릴 때 바람을 가르는 초고속의 속도감, 상공의 급박한 기류를 파도처럼 이용해 묘기를 선보이는 스릴, 낙하산 펼칠 때의 순간적 인 정지감과 안도감, 사뿐한 지상착륙, 이 모든 것이 스카이 서핑의 매력 이다.
서핑보드 의지해 창공에서 낙하한다
(사진/유리벽의 틈을 이용해 건물에 오르고 있다. )
스카이 서핑은 10여년 전 스카이 다이빙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은 모험광 들이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처음 시도한 것으로 알려진다. 현재 미국의 스 카이 서핑 동호인 수는 수천명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추산된다. 상당한 수준의 고공낙하 실력이 있어야만 묘기까지 부릴 수 있기 때문에 배우기 가 만만치 않은 것이다. 하지만 90년에는 세계기구까지 만들어져 첫 국제 대회가 열렸고, 최근에 ‘어렵다’는 매력 하나만으로 스카이 서핑을 배 우기 위한 강습생들이 줄을 잇고 있다고 한다. 스카이 서핑 붐이 일고 있 는 것이다.
극한적인 것 가운데서도 가장 극한적인 것으로 치는 것이 베이스 점프다. 베이스 점프(BASE jump)는 각각 빌딩(Building) 안테나(Antenna) 다리(Sp an) 절벽(Earth)의 앞글자를 따서 만든 말이다. 스카이 서핑보다 훨씬 낮 은 1백∼3백m 안팎의 건물이나 다리, 송전탑이나 절벽 등 높은 곳이라면 어디에서든 뛰어내리는 스포츠다.
베이스 점프 애호가들은 “우리에게 부상이란 없다. 사느냐, 죽느냐만 있 을 뿐이다”이라고 자랑스럽게 외친다. 실제로 위험도만 놓고 보면 베이 스 점프는 스카이 서핑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 스카이 서핑은 항상 보조 낙하산을 갖고 뛰어내린다. 주낙하산이 펴지지 않을 때를 대비하기 위해 서다. 하지만 베이스 점프는 낮은 데서 뛰어내리기 때문에 보조 낙하산을 펼 시간적 여유가 없다. 아예 보조 낙하산이 없는 것이다. 주낙하산이 펴 지지 않으면 그대로 황천행이다. 지금까지 개발된 극한 스포츠 가운데 가 장 사망률이 높은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베이스 점프는 그 위험성 때문에 외국에서조차 대부분 불법으로 간주된다 . 기껏해야 1년에 한번 정도 경찰의 입회하에 공식적인 시범기회가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베이스 점프는 은밀히 그 세력을 넓혀가고 있다고 한다 . 경찰의 눈을 피해 야심한 밤에 다리 난간 위에 올라가 뛰어내리는 일이 다반사라는 것이다. 혼자 낙하산을 매고 절벽에 올라가 뛰어내리기도 한 다. 심지어 송전탑에서 뛰어내리기 위해 전력회사에 위장취업을 하는 경 우도 있다. 미국의 작은 마을에서 갑자기 전기가 나가면 십중팔구는 베이 스 점프광들의 ‘장난’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송전탑에 올라가기 위해 전원 스위치를 내린 것이다.
불법을 피해 은밀히 즐겨야 하는 사정으로 사망자에 대한 정확한 집계는 없다. 7∼8년 전 프랑스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이후 3백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것으로 대략 추산할 따름이다. 심지어 동호인 숫자도 제대로 파악 되고 있지 않은 실정이다.
은밀한 도전에 사망자 집계도 없어
얼음이 없는 곳에서도 봅슬레이를 즐길 수는 없을까. 이런 고민이 스트리 트 루지(street luge)라는 극한 스포츠를 탄생시켰다. 루지는 1인승 썰매 를 말한다. 말 그대로 하면 스트리트 루지는 길에서 타는 썰매다. 하지만 스트리트 루지는 어감이 주는 느낌보다 훨씬 더 위험한 종목에 속한다. 우선 바퀴달린 보드 위에 반드시 누운 채로 온몸을 꽁꽁 묶는다. 그리고 는 언덕 위에서 출발해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 내려오는 것이다. 언덕의 경사도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대략 최고시속 1백km 안팎의 속도를 낸다. 속도감을 맛보는 것에 대한 대가는 혹독하다. 보드가 돌에 걸려 뒤집히기 도 하고, 바위에 부딪혀 머리가 터지기도 한다. 얼굴 전체를 감싸는 헬멧 과 온몸을 보호해주는 가죽이 있긴 하지만, 부상을 막아 주기에는 역부족 이다. 언덕 위에서 한번 내려오면 온몸이 만신창이가 된다. 70년대 캘리 포니아에서 시작된 스트리트 루지는 93년에는 전용경기장이 만들어질 정 도로 대중적인 극한 스포츠가 되고 있다.
번지점프가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는 거라면, 번지점프와는 반대로 땅을 박차고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 슬링샷(sling shot)이다. 몸을 지상에 고정 시킨 채 허리와 크레인을 탄력있는 고무줄로 연결한다. 그다음 고무줄이 팽팽해질 때까지 크레인을 올린다. 크레인이 일정한 높이에 올라갔을 때 고정돼 있던 사람의 몸을 풀어놓으면, 몸이 하늘로 치솟는다. 어릴 때 새 총을 쏘던 기억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새총의 총알인 돌멩이 가 사람의 몸으로 바뀐 것이다. 슬링샷은 5년 전 한국인 조상근(34)씨에 의해 개발돼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유행하고 있다.
극한 스포츠의 강도는 갈수록 높아지며 새롭게 바뀐다. 70년대에 개발된 행글라이딩도 처음에는 목숨을 건 레포츠였다. 당시만 해도 내로라 하는 담력을 가진 사람만 즐길 수 있었던 것이다. 74년만 해도 40명이 죽을 정 도로 처음 몇년간은 수십명의 사람이 ‘극한’을 즐기다 숨졌다. 하지만 현재 행글라이딩은 애들 장난감 다루는 것처럼 쉬운 레포츠가 돼버렸다. 대신 스카이 서핑이나 베이스 점프 같은 훨씬 더 위험한 스포츠들이 극한 스포츠의 왕위를 차지하고 있다. 모험광들은 스카이 서핑이나 베이스 점 프조차도 ‘시시해지면’ 좀더 자극적이고 강렬한 또다른 무엇을 찾아낼 것이다.
위험 추구하는 피학성 자극해 중독
그러면 한계에 도전하겠다는 인간의 욕구가 현대문명에서 더 극성을 부리 는 이유는 무엇일까. 학자들은 영국과 프랑스, 미국, 오스트레일리아처럼 국민소득이 1인당 2만달러 이상인, 경제적으로 고도로 발달한 선진국에서 극한 스포츠가 발달한 데 주목한다. 자본주의라는 상당한 위험이 수반되 는 모험에 길들여져 있다가 자본주의 체제의 안정과 이에 따른 사회환경 이 점차 안정되면서 새로운 모험을 갈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학자 들은 극한 스포츠를 즐기는 것이 마약과 범죄단체에 빠져드는 것과 똑같 은 심리에서 출발한다고 진단한다. 다만 극한 스포츠는 새로운 흥분을 찾 는 사람들에게 사회적으로 용납될 수 있는 탈출구를 제공한다는 점만 다 르다는 것이다. 결국 역설적이게도 위험이 없어진 사회환경이 이전의 유 사한 위험을 다시 체험하도록 충동하는 셈이다.
누구든지 인간의 무의식 속에는 위험을 추구하는 본능이 잠재해 있다고 분석하는 시각도 있다. 죽음에 대한 체험 욕구는 자기를 학대함으로써 그 반대급부로 쾌감을 얻는 극단적인 피학성(마조히즘)의 일종이라는 것이다 . 극한 스포츠광들은 죽음의 문턱에 넘나들 정도로 자기를 학대한 뒤 살 아 있다는 안도감과 일상생활에서의 자신감을 대가로 얻는다. 반대급부로 주어지는 쾌감과 보상 때문에 위험을 즐기는 모험광들은 극한 스포츠에 맛을 들이면 마약처럼 중독되고 계속해서 좀더 강렬한 것만을 찾게 되는 것이다. 결국 극단 스포츠는 인간의 무의식 속에 숨어 있는 피학성을 먹 이삼아 계속 뻗어나갈 거라는 얘기다.
이용인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8월21일 제 17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