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쌍용차, 벤츠 업고 씽씽

(사진/93년 9월 쌍용과 벤츠사간의 5% 자본합작 계약을 체결할 당시의 모습. 이번 합의에선 주식지분을 최고 49%까지 허용할 수 있도록 했다.)

쌍용이 벤츠와 손잡고 아시아 자동차시장 공략에 본격 나선다.

쌍용자동차와 독일의 세계적인 자동차메이커 벤츠는 쌍용차에 대한 벤츠 의 주식지분 참여폭을 대폭 늘리기로 합의하고 지분확대 범위와 쌍용차의 주식평가 등을 놓고 막바지 협의중이다. 벤츠의 지분확대는 상법상 제3자 할당에 의한 증자 방식을 택할 것으로 알려졌다. 장기택 쌍용그룹 자동차 담당 부사장은 “이미 벤츠와 원칙적 합의가 이루어졌고 이르면 9월중에 협상을 끝내고 10월께는 실행에 들어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기술이전 폭도 커질 듯

8월 초 현재 벤츠의 쌍용차 지분은 3.42%. 쌍용차는 지난 3월 정관을 변 경해 외국인 지분을 최고 49%까지 허용할 수 있도록 했다. 쌍용은 가능한 정관이 허용하는 최대 범위까지 벤츠의 지분을 늘린다는 방침이어서 벤츠 의 지분은 적어도 40%를 넘을 전망이다. 쌍용 관계자는 “그룹의 쌍용차 지분은 현재 53% 정도인데 앞으로 벤츠의 지분율이 높아지더라도 최대주 주로 경영권을 행사해온 쌍용의 지위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

현재 쌍용차의 주가는 5천원선으로 액면가 수준에 머물러 있지만 프리미 엄이 붙게 돼 벤츠의 지분확대에 따른 신규자본 유입액은 많을 경우 3천 억원선에 이를 전망이다. 쌍용도 “벤츠의 증자규모가 최소 2천억원을 넘 을 것”이라고 말했다. 쌍용은 벤츠와의 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됨에 따라 그동안 가능성을 타진해 왔던 GM과 화교로부터의 자본유입 문제는 일단 벤츠와의 협상타결 이후로 미루기로 했다. 장 부사장은 “GM이나 화교자 본 도입 문제는 쌍용과 벤츠의 이해관계가 상충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차 후 논의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벤츠로부터 대규모 신규 자본금이 유입될 경우 쌍용차는 현금 흐름에 숨 통이 트이면서 자금난 해소에 큰 도움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또 쌍용차 가 올 들어 대규모 증자와 자산매각, 부채상환 등을 통해 벌여온 자구노 력 효과도 더욱 커질 것으로 기대된다. 쌍용차는 지난 2월과 6월 두 차례 에 걸쳐 쌍용 계열사가 매입했던 쌍용차 전환사채(CB) 1천1백69억원어치 를 주식으로 전환한 데 이어 8월중으로 다시 8백56억원어치를 주식으로 바꿔 자기자본 규모를 2천3백80억원으로 늘릴 계획이다(쌍용차의 납입자 본금은 원래 2천2백36억원이지만 적자누적으로 자본금의 상당 부분을 까 먹었다). 또 올 상반기중 회사채 등 보유 유가증권 1천8백억원어치, 자동 차할부채권 2천7백억원어치를 각각 판 데 이어 9월까지 7백억원어치의 자 동차할부채권을 추가매각한다. 서울 도곡동 기술연구소 등 보유 부동산 매각으로도 5백50억원을 확보했다. 쌍용그룹 종합조종실 재무팀장인 최명 호 이사는 “올 들어 7월까지 6천억원 규모의 자구노력을 폈고 하반기에 는 4천억원 정도를 추가 이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쌍용차는 이를 통 해 지난해 말까지 1만%를 넘던 부채비율을 올해 말에는 1,000∼2,000%로 떨어뜨리고 내년 말까지는 700% 밑으로 개선할 계획이다.

중대형 승용차 ‘체어맨’ 큰 역할

벤츠의 지분참여 확대는 쌍용차와 공동으로 아시아시장을 공략하겠다는 벤츠의 새로운 아시아전략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벤츠는 그동안 쌍용 차와 자본참여, 기술이전 등의 제휴를 맺어왔다. 또 기술제휴로 생산하는 소형승합차 이스타나의 해외 판매권을 보유해, 동남아에 벤츠 MB-100이라 는 이름으로 수출해왔다.

그러나 벤츠와 쌍용차의 제휴관계는 다분히 제한적이었다. 벤츠는 그동안 중국과 말레이시아 등을 대상으로 아시아시장을 공략할 수있는 생산기지 를 물색해왔다. 이런 벤츠가 아시아시장의 파트너로 쌍용을 최종선택한 것은 중국과 동남아의 경우 자동차산업에 꼭 필요한 부품업체 등 관련 인 프라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벤츠가 쌍용차에 대한 지분확대를 결정한 데는 쌍용이 오는 10월 선보일 중대형승용차 체어맨도 큰 역할을 했다. 쌍용의 첫 승용차 모델로, 벤츠 엔진을 탑재한 체어맨은 벤츠의 동급모델인 벤츠 S클라스 3.2와 미쓰비시 렉서스, BMW 7시리즈를 벤치마킹해 만들었다. 벤츠는 체어맨이 동급 벤츠 모델보다 가격은 훨씬 싸면서도 성능이 우수한 것에 놀라 쌍용차의 저력 을 다시 평가하게 됐다고 한다.

벤츠의 지분확대를 계기로 쌍용차에 대한 기술이전 폭도 전보다 더욱 확 대될 전망이다. 벤츠는 그동안 이스타나와 체어맨 등을 통해 기술이전을 했지만 상당히 인색하다는 느낌을 주어왔다.

쌍용그룹으로서는 항간에 끊임없이 나돌았던 쌍용차 포기설이나 다른 그 룹으로의 매각설은 물론 이스타나 생산설비의 벤츠 매각 소문도 불식시키 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장 부사장은 “쌍용이 자동차사업을 포기한다면 벤츠가 지분을 확대하겠느냐”면서 “벤츠의 자본참여 확대와 이스타나 생산설비 매입도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쌍용은 또 소문이 무성했던 쌍용제지 매각설도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말했 다. 그동안 금융권에서는 쌍용이 그룹 전체의 재무구조 개선 차원에서 쌍 용제지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쌍용의 한 임원은 “항간 에 쌍용제지 매각대금이 4천억원대라는 등 온갖 소문이 돌고 있는 것으로 알지만 공장이 3개나 되는데 쌍용제지의 가격이 그것밖에 안 되겠느냐” 면서 “그것만 봐도 헛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잘라 말했다.

자동차판매회사도 별도 설립

쌍용은 자동차 판매부문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연내에 자동차판매회사 도 별도 설립할 계획이다. 쌍용차의 현 판매조직으로는 체어맨의 성공적 판매가 어렵다는 판단 때문이다. 쌍용은 체어맨 출시시기를 애초 10월로 잡았다가 판매확대를 위해 9월 초로 앞당긴다는 내부방침을 세웠으나 판 매망 확대가 여의치 않아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쌍용은 자동차 판매전문회사를 설립하고 판매영업점을 확대하는 데 적지 않은 자금이 필요해 자판설립에도 벤츠가 지분참여를 하는 방안을 협의중 이다. 쌍용차의 한 관계자는 “서울시의 경우 60평짜리 영업점을 하나 내 는 데만 20억∼30억원이, 지방은 10억원 이상이 필요하다”면서 “서울에 3곳, 지방에 20곳만 점포를 새로 마련하는 데만도 3백억원 이상이 소요된 다”고 말했다. 중소형차를 중심으로 한국시장 진출을 노리고 있는 GM도 쌍용의 자판회사 합작에 관심을 보이고 있어 벤츠, GM과의 동시합작 가능 성도 배제할 수 없다.

쌍용이 벤츠의 지분참여 확대와 자동차판매회사 설립으로 회생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잡은 것은 분명하지만 지금부터가 시작이라고 보는 것이 정 확한 표현일 듯하다. 쌍용차 회생의 열쇠는 결국 경영 정상화가 얼마나 앞당겨지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2천억원을 넘긴 쌍용차의 적 자는 올 상반기중에도 1천억원 선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에서는 벤츠의 지분 확대가 이뤄진 뒤에도 쌍용차의 경영이 나아지지 않으면 경 영권이 아예 벤츠로 넘어가는 것 아니냐고 우려하기도 한다.

곽정수 기자 한겨레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