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초점

스포츠신문 화났다

(사진/여론호도인가 표현자유 투쟁인가. 스포츠신문 `만화가 절필' 논란을 보는 시선은 냉소와 동정으로 나뉘어 있다.)

<째마리>, <기타맨>, <신이라 불리운 사나이>, 그리고 <밤 사쿠라>. 스포 츠신문의 연재만화들이다. <천일마화>, <피와 꽃>, <새야 새야>, <대침몰 > 등의 만화들과 함께 꽤 많은 지면을 차지한 인기물들이다. 한데 이들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달호의 우스꽝스런 모습이 있어야 할 지면엔 대신 이런 글귀가 적혀 있다. “본 면은 연재만화 강철수 글·그림 <밤 사쿠라>를 게재하는 면이나 만화탄압 사태에 따른 작가의 절필선언으로 게제를 중단합니다.”


젊은 만화가들도 ‘절필’논의

스포츠신문 연재만화 작가들의 절필선언은 이보다 이틀 앞선다. 지난 8월 6일 만화가협회 사무실은 자못 비장한 분위기였다. 이두호, 강철수, 조운 학, 임동재씨 등 스포츠신문 연재만화가들은 기자회견을 갖고 앞으로 무 기한 붓을 놓겠다고 선언했다. “비통한 심정으로 이현세씨에 대한 검찰 의 소환조사와 스포츠신문 연재만화 작가들에 대한 무더기 사법처리에 절 필로 항의한다”는 거였다. 만화가들이 스스로 밥줄을 끊은 것이다.

만화가들의 항의는 절필로 그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을 미성년자보호 법 위반 혐의로 집단고발한 ‘음란폭력성 조장 매체 공동대책협의회’(음 대협·공동의장 손봉호)를 명예훼손 혐의로 맞고소하고 손해배상을 청구 키로 결의했다. 거리에서 일백만명 서명운동을 벌여 누명을 벗겠다고도 했다. 강철수씨는 “달호로 30년간 독자를 웃긴 죄밖에 없다. 작가에게 참을 수 없는 치욕감을 안겨준 작금의 사태에 정면으로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이들의 절필선언으로 젊은 만화가들도 동요하고 있다. <영 점프>, <화이 트>, <밍크> 같은 청소년 대상 만화잡지에 작품을 그려온 작가들은 지난 8월8일 ‘젊은 만화작가 모임’ 임시총회를 열고 집단 절필선언을 논의했 다. 격론 끝에 결론을 미뤘지만, 이들이 절필을 결정할 경우 사실상 우리 나라 모든 만화잡지가 정간될 수 밖에 없다. 이들은 일단 자신들의 작품 에 ‘검은 리본’을 그리는 것으로 마음을 다잡고 있다. 이 모임의 회원 이재석(31)씨는 “젊은 만화가들이 일단 집단적인 절필선언을 유보했지만 , 분위기 자체는 매우 격앙돼 있다”고 전한다.

만화가들이 왜 이처럼 격앙돼 있는 것일까. 만화가들은 자신들이 “빨간 마후라의 희생양”이라고 푸념한다. 청소년들의 성행위를 담은 비디오에 놀란 검찰이 애꿎은 자신들을 표적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음대협이 자신 들을 고발한 것은 지난 4월인데도 검찰이 최근에야 기소한 게 그 증거라 고 주장한다. 음란의 혐의에 대해선 더욱 분개한다. 애초 미성년자보호법 의 음란물 기준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만화가는 “스포츠신문 만화는 모두 성인만화다. 법 적용부터가 잘못이다”고 강변한다.

스포츠신문은 이들을 대대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절필선언 이후 매일같이 지면을 통해 지원사격을 퍼붓는다. ‘만화 사법처리 후유증’이란 제목의 연재기사를 싣는가 하면, 컴퓨터통신의 목소리를 “만화탄압에 대한 시민 들의 항의”라는 제목으로 크게 보도하고 있다. 이러다간 우리나라 만화 산업이 절단날 것이라는 분석기사에서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각계 인사 의 의견기사까지 총동원 태세다. 스포츠신문 편집진들도 음대협에 의해 고발된 상태니 남의 일만은 아닐 것이다.


“만화는 고발대상의 일부일 뿐”

그러나 정작 그들을 고발한 음대협은 시큰둥하다. 스포츠신문 만화가들이 자신들의 참뜻을 오해하고 있고, 사안을 확대해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음 대협의 김성경(28) 간사는 “애초 음대협이 문제삼은 것은 스포츠신문의 만화만이 아니다. 기사와 광고, 사진, 연재소설 등 신문의 전체적인 편집 방향을 지적했던 것이다. 만화는 그 가운데 일부일 뿐이다”고 말한다. 음대협은 내심 만화가들의 절필선언 이후 집중되고 있는 스포츠신문의 지 원사격이 여론을 호도하기 위한 측면이 강하다고 분석한다. 그리고 만화 가들도 표현의 자유 운운하며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전에 솔직한 자기비 판이 있었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씨는 “스포츠신문도 만화가도 반성하는 기색이 없다”고 말했다.

유강문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8월21일 제 17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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