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진단

경제수역, 논리싸움이다

(사진/앞으로 열릴 배타적 경제수역 회담에서도 일본은 독도를 자신의 수역에 포함시키는 억지논리를 펼칠 것으로 보인다.)

8·15를 이틀 앞둔 8월13일 도쿄에선 한국 외무부 대표와 일본 외무성 대 표간 제4차 한-일 어업실무자회담이 열렸다. 일본이 올 1월1일 독자적인 배타적 경제수역(EEZ)을 선포하고 우리 어선을 잇따라 납치하면서 중단됐 던 어업협정이 재개된 것이다.


일본의 주도면밀한 전략

이번 한-일 어업협정 실무자회담은 지난 65년 한-일간에 맺은 어업협정의 틀을 근본적으로 바꿀 것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이번 협상에 내놓은 두 나라 실무자의 개정방안은 독도문제 등에서 큰 의견차이를 보이는 게 사 실이다. 그러나 이미 양국은 △상대방 영해에서 조업하는 어선에 대한 조 사권을 연안국이 갖고 △상호 입어를 허용한 뒤 총가능어획량제도를 도입 한다는 등 몇가지 사안에 대해 의견접근이 이뤄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것만으로도 △영해를 12해리로 하고 △상대방 전관수역에는 다른 나라 어선이 못들어가며 △불법어로에 대한 조사를 그 선박 소속국으로 한다는 현재의 한-일 어업협정을 크게 바꾸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회담이 의미하는 것은 단순히 어업협정 변화만이 아니다. 전 문가들은 오히려 한-일 어업회담의 중단과 재개가 보여주는 것은 한국과 일본을 둘러싼 주변환경이 변했다는 사실이라고 지적한다. 전문가들은 이 에 따라 당연히 한국도 일본과의 협상에 임할 때 ‘민족감정’에서 한걸 음 더 나아가 주변환경에 대한 연구에 더욱 박차를 가할 때라고 강조한다 .

현재 한-일간에 분쟁원인이 되고 있는 일본의 직선기선과 배타적 경제수 역문제는 이런 변화된 상황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예다. 일본은 올 1월1 일부터 발효시킨 직선기선과 배타적 경제수역으로 ‘바다영토’를 엄청나 게 넓혔다. 영해 면적은 5만㎢나 늘었고, 배타적 경제수역도 무려 87만㎢ 가 늘어났다. 배타적 경제수역은 어족자원·해양자원·환경보호·과학조 사 등을 위한 권리를 해당국이 갖는 바다를 뜻한다.

일본은 이런 조처가 지난 96년 한국과 일본이 동시가입한 국제해양법에 근거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이런 일본의 주장엔 모순점이 많다 . 왜냐하면 이런 일방적 직선기선 설정은 현재의 한-일 어업협정에 어긋 나기 때문이다. 두 나라간 특별법에 해당하는 한-일 어업협정은 “양국 합의가 없는 영해설정은 무효”라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일본의 행위 는 특별법 우선의 원칙에 따라 위법이 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일본이 한-일 어업협정이 존재하는 상황인데도 신해양법을 만들어 영해를 넓히고 그 정당성을 강변할 정도로 국제적인 환경이 급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번 한-일 어업회담과 관련해 더 중요한 것은 최근 잇따른 어선 납치 등 이 일본의 주도면밀한 전략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일본은 지난 96년 6월 국내법인 신해양법을 제정하고, 또 내부적으로 지난 7월20일까 지 어업협정 문제를 해결한다고 결의해놓았다. 신해양법이 발효된 올해 들어서는 일본 어민들을 조직해 한국어선의 ‘영해침입’에 대한 항의시 위를 벌이는 등 국내 여론조성에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지난 6 월부터 한국어선에 대한 납치를 시작한 것이다.

6월부터 5차례나 잇따라 터진 이 납치사건들은 한-일 양국의 국민감정을 자극해 어업협정을 무력화시키려는 주도면밀한 의도가 숨어 있다는 게 이 방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가령 한국민들이 이 문제를 감정적으로 대응 해 “우리 어선을 납치하는 일본놈들과 무슨 어업협상이냐”라는 여론이 형성된다면 그야말로 일본이 바라던 바라는 것이다. 감정만을 앞세워 어 업협정이 파기되기라도 하면 일본은 그야말로 족쇄에서 해방되기 때문이 다. 어업협정은 일본 신해양법을 제어하는 특별법 구실을 해왔다.


억지논리 어떻게 물리칠 것인가

전문가들은 따라서 앞으로 일본과의 협상에서는 국제적 환경에 대한 명확 한 대응방안 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앞으로 치러질 배타적 경제수역 회담만 해도 그렇다. 일본은 2백해리 배타적 경제수역이 국제해 양법이 보장하는 권리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한국과 일본 사 이 바다가 4백해리가 안 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한국과 일본은 협상을 통해 경제수역을 설정해야 한다. 일본은 본토를 기준으로 그 가운데로 경 제수역을 긋자고 주장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독도가 일본의 경제수역에 들어간다. 명백히 우리땅인 독도가 일본 경제수역으로 편입되는 억지논리 를 우리로서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 이에 따라 우리쪽은 을릉도와 일 본의 최서단 유인도의 중간점을 경계선으로 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이는 우리땅인 독도가 우리 경제수역에 포함되는 방안이다.

문제는 앞으로의 회담에서도 일본이 세계 각국의 경제수역 사례를 연구하 고 억지논리를 만들 것이라는 데 있다. 따라서 우리의 대응도 이런 논리 싸움에서도 지지 않는 것이어야 한다. 만일 우리쪽이 국제환경에 대한 연 구를 게을리하면 마이크로소프트에서 만든 세계지도에 독도가 일본땅으로 표기된 것과 같은 어처구니없는 일을 다시 겪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런 일들이 겹치면 일본은 그것을 국제적 관례라고 주장할지도 모를 일 이다.

우리는 일본을 투명한 유리알과 같은 심정으로 ‘차갑게’ 대해야 할 시 점을 맞고 있다.

김보근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8월21일 제 17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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