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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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남한과 일본은 북한과의 협력 아래 북한에 경수로 건설을 진행하고 있다. 21세기 한반도-일본 관계 해결의 실마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반일감정’과 ‘염한감정’사이
그러나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더이상 손댈 수 없는 지경에 이르기 전에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 한국과 일본 간의 현안에는 크게 역사적인 것 과 경제적인 것 두 가지가 있다. 역사적으로는 일본의 불성실한 과거청산 으로 때만 되면 분출하는 한국의 반일감정과 이에 대한 일본쪽의 ‘염한 감정’이다. 종군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보상문제도 크게는 이 범주에 들 어 간다. 일본의 자세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한국 국민의 대일 감 정은 한국이 성장하면 할수록 더욱 커지면 커졌지 앞으로도 결코 사그라 들지는 않을 것이다.
또 하나는 날로 증가해 가는 무역역조 문제다. 한-일 무역역조 문제는 일 본의 자금을 원천으로 한 60년대 한국의 경제발전 전략에서 이미 비롯되 었는지도 모른다. 이는 한국경제의 체질적인 약점에 기인하는 구조적인 문제이며 역사적인 과거 청산문제와는 달리 일본의 잘못만을 따질 문제는 결코 아니다. 하지만 인접하는 두 나라 사이의 경제관계가 이렇게 불균형 한 상태를 유지·확대시켜 간다는 것은 위험스런 일이다.
이러한 한-일관계는 표면적으로만 보면 한국과 일본 둘 사이의 관계이다. 그러나 크게 보면 한-일 관계의 여러 문제는, 한반도 전체와 일본이 아니 라 한반도의 일부와 일본이 관계를 맺는다는 ‘불완전성’에서 비롯된 것 이 아닐까. 일본의 과거 역사 청산의 불충분함이 과연 통일된 한반도와의 관계에서도 유지될 수 있을까. 또는 남북한이 힘을 합쳐 대응할 수 있었 더라면 일본의 자세는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해 보면 오늘날의 불 편한 한-일관계는 한반도 분단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한편 한-일간의 무역역조 문제도 남북한 경제의 유기적 관계가 절단된 데서 비롯된 남한 경제의‘기형성’에 그 근원적인 이유는 없지 않나 하고 물을 수 있다. 물론 통일이 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통일지상주의나 모든 악 의 근원은 분단에 있다는 분단제악근원설에 빠져서는 안 될 것이지만 말 이다.
현실적으로 한반도 전체로 보면 일본과 한반도와의 관계는 냉혹한 동아시 아 국제질서에 규정되는 절반만의 관계이다. 전세계적인 탈냉전의 도래에 도 북한은 아직 일본과 국교를 맺지 못하고 있으며 기본적으로는 적대관 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은 김일성 사후에도 여전히 항일유격대의 나라다. ‘생산도 학습도 생활도 항일유격대식으로!’라는 구호는 80년대 이후 김정일이 창안했다고 알려지고 있다. 일본의 입장에서 보면 식민지 시대의 역사적인 과거 청산은 반쪽에 대해서만 그것도 불완전하게 이루어 진 것이며 다른 반쪽에 대해서는 백지 상태에 있다.
북한 붕괴 가능성, 큰 변수
북한 붕괴가 불러올지도 모르는 한반도 정세의 군사화는 동아시아에서 군 사적 역할의 확대와 관련해 일본의 앞으로의 방향을 가름하는 변수가 되 고 있다. 혹시 북한이 붕괴한다면 한반도 전체와 일본과의 관계를 새롭게 가져갈 수 있는 기회를 남북한은 물론이고 일본도 놓치게 된다. 냉전시대 에는 남북한 대립으로 인해 북한이 격렬하게 반대하는 가운데 남한과 일 본만이 관계정상화를 이루었다. 탈냉전시대에는 북한이 남북한 관계를 제 쳐두고 남한이 반대하는 가운데 일본과의 관계정상화를 이루려 하고 있다 . 그러나 남한쪽의 동의 없이 현실적으로 일본이 북한과 국교수립에 나서 기는 어렵다. 또한 남한쪽의 협력 없이 일본 내의 반북한 정서를 극복하 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다.
다만 해결의 실마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비록 미국이 주도하고 중 개한 것이기는 하지만 이미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방식을 통해 남 한과 일본은 북한쪽과의 협력 아래 북한에 경수로 건설을 진행하고 있다. 장차 21세기의 한-일관계, 한반도와 일본관계는 남한과 북한, 일본의 3자 관계를 어떻게 풀어 갈 것인가에 달려 있다.
서동만/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 한겨레신문사 1997년08월21일 제 17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