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1997년08월07일 제 169호

배트맨 앤 로빈

올 여름에도 어김없이 할리우드 대작들이 찾아왔다. <배트맨 앤 로빈>은 배트맨 시리즈 4번째에 해당되는 작품. 1, 2편은 팀 버튼이 감독을 맡았고, 3편부터는 조엘 슈마허가 메가폰을 잡고 점점 더 화려한 배역과 화면으로 관객들을 사로잡는다.

이번 작품에는 조지 클루니와 같은 20대 주인공들 외에도 10대 아이돌 스 타 알리시아 실버스톤이 배트걸로 출연했으며 영원한 근육질 사나이 아놀 드 슈워제네거가 악당 아이스맨을 연기한다. 신진세력과 구세력이 포진된 이 영화는 일종의 캐릭터 영화인 셈이다. 그런데 이 판타지가 펼치는 선 악 대비는 다소 모호하다. 아이스맨이 괴로워하는 이유는 자신의 아내를 살리기 위해서고, 배트걸은 불량소녀이며, 배트맨과 로빈은 여자문제로 경쟁한다. 그렇다면 영화가 선과 악의 이분법을 넘어선 새로운 대안을 제 시하는 것인가.

악당이나 영웅이나 자신의 가족을 구하고 싶은 마음은 동일해 보인다. 의 도적 장치이긴 하나 아이스맨의 아내가 걸린 병과 배트맨을 돌보는 집사 가 똑같은 불치병에 걸렸다. 그것은 인물간의 동질성을 느끼게도 한다. 또한 제목 <배트맨 앤 로빈>에서 암시하듯 이제는 배트맨 혼자 싸우 는 게 아니라 동료들과 연대해 악을 응징한다. 배트맨은 사고뭉치 로빈에 게 말한다. “너를 믿는다.” 새삼스럽게 영화는 가족의 중요성을 강조한 다.

하지만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이야기를 위한 위선일까. 배트맨 과 아이스맨의 싸움 때문에 무수한 사람들이 양념거리로 죽고, 졸개 악당 들은 이름도 남기지 못한 채 영웅들의 노리개가 되는데. 혹시 이 영화는 교묘하게 자신들만을 돌보는 가족이기주의를 꼬집은 게 아닐까. 그러나 영화는 이런 문제들을 근심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최첨단 그래픽 기 술과 화려한 불꽃놀이 화면은 이전 배트맨 시리즈와 확실히 구별되는 스 펙터클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니까 중요한 건 악은 응징되고, 배트맨 로 고는 고담시(소돔과 고모라의 합성어) 하늘의 성좌처럼 영원한 우상으로 남는다는 것. 거기에 3편에서 등장한 로빈은 4편에서 확실한 동반자로 자 리잡았고, 4편에서 등장한 배트걸은 5편에서 자신의 영역을 구축할 것 같 다. 다음 배트맨 시리즈는 <배트맨과 배트걸>? 만일 신세대 배우들이 지배한다면 <로빈과 로빈걸>이 될지도 모르겠다. 새로운 악당도 계속 등장하겠지. 악이야말로 영원한 것이며 영웅은 악을 벌하기 위해 악써야 하니까.

이상용/ 영화평론가

이상용:72년생·중앙대 문예창작과 졸업, 중앙대 영화학과 대학원 재학· 97년 <씨네21> 신인영화평론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