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1997년08월07일 제 169호

공지영 “여성소설 테두리 벗어난다”

(사진/공지영씨는 파리의 문학강연회에서 청소년 문제 역사 등 새로운 문학적 관심을 밝혔다. 파리의 독자들에게 책 사인을 하고 있다.)

“나를 페미니즘 작가로 한정하지 말아달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착한 여자> 등을 통해 한국에 페 미니즘 문학 논쟁을 불러일으켜온 작가 공지영씨는 지난 7월22일 프랑스 파리 한불교육문화센터에서 열린 문학강연회에서 페미니즘 작가라는 자신 의 ‘레테르’를 거부했다.

80년대라는 격변기에 대학을 다니면서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문제의식에 눈을 뜬 것이 자신의 문학적 출발이며, 한국 여성이 처한 가부장적 억압 의 굴레에 주목하게 된 것도 이런 인간 존엄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된 것 이라는 설명이다. 광주사태로 대변되는 집단적 폭력이나 인간 이하의 환 경에서 생존을 연명하는 노동자들의 현실 등을 보고 “인간이 다른 인간 에 대해 저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 변혁운동에 발을 들여놓았 다고 밝힌 공씨는 자신의 관심은 경제·사회구조라는 것이 인간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는가에 있다고 설명했다.

‘선택’의 여지없는 여성의 근본적 한계

그러나 이런 항변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에게 비친 그는 여전히 페미니즘 작가의 대표적 존재였다. 한불교육문화센터 강연장을 메운 상당수가 여성 이었고 그들의 질문은 작가가 비켜가려는 여성문제에 집중됐다. 최근 화 제를 몰고 온 이문열씨의 <선택>을 둘러싼 논쟁의 귀결점과 한국의 페미 니즘 문학이 한국사회에 어떤 변화를 몰고 올 것인가 등에 대한 예민한 관심을 드러냈다. 공씨는 여성에게는 선택할 여지가 주어지지 않았는데 무엇을 선택하라는 말이냐고 물음으로써 이씨 주장의 비현실성을 지적했 다.

프랑스 생활이 10년 넘었다는 한 40대 주부는 공지영씨의 작품을 통해 자 신이 떠나온 ‘고향’의 여성들은 아직도 숨겨진 형태의 일상적 억압 속 에 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하고, 페미니즘 문학이 실제 여성 들의 삶을 개선하는 것으로 이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작가와의 대화는 이 대목에서 한국이 여성문제의 현실과 그를 어떻게 개선할 수 있 느냐는 토론으로 확대됐다. 여성에게 억압 기제로 작용하는 가부장제 아 래서 남성 역시 소외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은 여성문제의 해결이 궁극적 으로는 남성을 포함한 인간해방의 길이라는 발언들로 이어졌다.

이런 발언은 최근 출간된 <착한 여자>의 착함에 대한 질문을 낳았다. 작품 제목을 ‘착한 여자’로 한 이유에 대해 공씨는 우선 자신이 착해지 려고 노력해온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는 여성은 예쁘거나 착하 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는 것이 남성위주의 사회의 현실이라고 지적하 고 예쁘지 않은 여성이 택할 수 있는 유일한 생존수단은 착해지는 길밖에 없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러나 <착한 여자>의 주인공 오정인의 경우는 그 착함을 단순히 한 여성의 생존수단을 넘어 이웃과 연대하는 삶 을 가꿔나가는 힘으로 바꿈으로써 착함의 진정성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일반론으로서의 ‘착한 여자’와 오정인의 착함은 다르다는 것이 그의 설 명이다.

착해야 살아남는 남성위주의 사회 현실

작가에 따르면 <착한 여자>는 여성문제가 단순히 지식인 여성만 겪는 문제가 아니라 여성이면 누구나 겪는 공통의 문제임을 드러내 보임으로써 <무소의 뿔처럼…>과 한짝을 이뤄내려는 뜻에서 구상됐다. <무소의 뿔처럼…>에 대해 많은 평론가들은 스스로 똑똑하다고 자부하는 배운 여성들만을 등장시킴으로써 여성문제를 지식인 전유의 것인 양 그렸다는 점을 비판했다.

공씨가 작품에서 자살이라는 극단적 방식을 되풀이 사용하고 있는 점이라 든가 여성문제라는 것의 제시방식이 낡은 것에 머물러 있지 않는가 하는 점도 참석한 독자들에 의해 제기됐다. 이에 대해 작가 공씨는 작품에 자 살이 되풀이 등장하는 까닭을 자신의 젊음 탓으로 돌리면서도 문제제기 방식이 ‘구식’일 수밖에 없는 것은 아직도 우리 삶의 방식이 낡은 상태 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작가로서의 자신의 인기 비결을 “우연히도 시대의 관심과 나의 관 심이 일치했기 때문”이라고 본다면서 앞으로는 청소년문제나 역사 등의 문제를 다뤄보겠다는 의욕을 피력했다.

파리=권태선 특파원 한겨레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