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1997년08월07일 제 169호 한겨레21

만화가 이현세씨 인터뷰

검찰소환 이틀 뒤인 7월26일 토요일 오후 서울 강남구 포이동 이현세(43) 씨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지금 심경은.

=20년 동안 만화를 그려오면서 국수주의라는 말은 들어본 적 있지만 음란 시비에 휘말린 적은 한번도 없었다. 내 작품을 사회가 수용하지 못한다면 그만두어야지, 내가 창작의 자유만을 외치는 사람은 아니다. 만화가에겐 ‘창작의 자유’라는 단어 자체가 익숙지 않고, 쓸 때도 두렵다. 무혐의 가 된다 하더라도 개인적으로 이미지 손상은 돌이킬 수 없게 됐다.

-검찰에선 <천국의 신화>를 포르노를 목적(주제)으로 선사시대를 끌 어들인 것(소재)으로 봤다.

=<천국의 신화>를 그리기 위해 10년 이상 광범위한 소재를 수집했다. 역사, 신화 내용뿐 아니라 당시의 복식, 화장, 활모양, 토기, 식생 등. 옥수수 하나를 그리는데도 옥수수가 언제부터 있었을까를 고민했다. 그리 고 2001년까지 1백권에 이르는 <천국의 신화>에 전념하기 위해 다른 연재물을 마무리 지었다. 포르노를 그리기 위해 이런 투자를 한다면 그 사람은 정신병자다.

-이번 검찰 소환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매년 5월이면 만화단속이 실시됐다. 그땐 누가 직업을 물으면 ‘페인트 칠합니다’라고 말하는 만화가들이 많았다. 작가로서의 자부심은 고사하 고 상처를 위로받을 때도 없었다. 최고 인기작가라는 나부터 타깃으로 삼 았다는 건 당국이 인식하는, 그리고 우리 만화의 현주소다.

-그렇지만 이번 사건이 만화계 전체로 봤을 때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 도 있지 않을까.

=나 하나 빼고 만화계는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나의 소환에 대해 언론 이 이렇게까지 관심을 갖는 것에 대해 꿈 속을 걷는 것처럼 놀랐고, 정말 감사하다. 만화계가 공동위기감 때문에 빨리 뭉쳤고, 뭉쳤을 때 힘이 된 다는 것을 알게 된 것 같다.

-세종대 강의는 어떻게 할건가.

=상처받은 짐승이 뭘 가르치나? 학교도 2학기 때부턴 그만둘까 한다.

-앞으로 계획은.

=독자가 그려달라고 하는 한 그릴 것이다. 그러나 만일 단돈 1만원의 벌 금형(구형이 아닌 선고에서)이라도 받는다면 그만둘 것이다. 위협을 하는 게 아니다. 나는 양심에 전혀 부끄럼이 없는데 이 사회와 나의 갭이 그렇 게 심하다면 더이상 그릴 이유가 없다.

-검찰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나는 만화계의 정신적 지주가 될 만한 사람은 아니다. 만화의 대중화, 보편화가 내 역량이고 관심이다. 그런데 이번 검찰 조치로 전국의 많은 서점에서 만화 진열장을 아예 치워버린 곳이 많다고 들었다. 가장 걱정되 는 건 앞으로 만화를 그리는 데 내 정신이나 손이 영향을 받지 않을까 하 는 점이다. ‘에이 또 문제가 될 텐데, 그만 요만큼은 지워버릴까’ 하는 것 말이다. 나도 30년 동안 ‘강요된 틀’에 길들여져 왔기 때문에 <천 국의 신화>가 더 강렬하고, 원색적이지 못한 채 그냥 스케치에 그쳤던 것일거다.

권태호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8월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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