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1997년08월07일 제 169호

동성애를 위한 ‘완전한 사랑’

동성애자들의 결혼 합법화’, ‘일반가정과 동등한 동성애 가정에 대한 사회보장 혜택’.

지난 95년 이런 ‘혁혁한 성과’를 거뒀던 스웨덴 동성애자들은 과연 자 기들의 처지를 어떻게 평가할까? 또 그들은 사회에 존재하는 ‘동성애에 대한 편견’을 모두 부숴버린 것일까? 지난 7월 중순 스웨덴의 수도 스톡 홀롬에 위치한 ‘스웨덴 동성연애자협회’를 찾는 길은 이런 의문들로 가 득 차 있었다.

스톡홀름 시내 스베아바겐거리의 4층 건물 중 2개층을 사용하고 있는 협 회의 당당한 모습은 바로 스웨덴 동성애자들의 ‘떳떳한 법적 지위’를 웅변하는 듯했다. 1층에 있는 동성애전문서점을 거쳐 2층 사무실로 올라 가자 복도엔 각종 동성애 관련 포스터가 손님을 맞는다.

“현재 동성애자들의 결혼을 법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나라는 스웨덴과 함 께 덴마크,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등 4개국뿐입니다. 시작은 지난 89년 덴마크였죠. 내년에는 네덜란드도 이 대열에 동참할 예정입니다.”

성전환자 처우 개선, 자녀 양육도 가능

4∼5명이 바삐 움직이는 사무실에서 깔끔한 용모의 젊은 청년이 반가이 맞으며 ‘스웨덴 동성애 현황’을 설명했다. 이 협회 사무국장 마틴 안드 레아송(28)이다. 여성적인 인상을 풍기는 그는 이미 협회 사무국장을 6년 째 맡고 있는 베테랑이란다. 그는 스웨덴에서 동성애자 결혼이 인정된 지 불과 2년이지만 그 사이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털어놓는다.

“정말 많이 변했죠. 이제 성전환자의 주민등록변경도 가능해졌어요. 일 반가정과 마찬가지로 동성애 부부도 자녀를 양육할 수 있게 됐습니다. 또 정부에서 지원하는 가족수당·주택보조비 등도 일반가정과 똑같이 받게 됐어요. 더 나아가 국회 내에서도 동성애 의원모임이 정기적으로 열리고 있죠.”

스웨덴 동성애자협회가 문을 연 것은 1950년이다. 처음에는 어려움이 많 았다. 79년 이전까지만 해도 동성애자들은 병자로 분류됐기 때문이다. 정 부가 동성애를 질병으로 분류해 정부의 질병목록에 넣은 것이다. 정부 방 침이 바뀐 것은 동성애가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동성애자들의 생활 자체가 일반인과 다를 바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부터다. 그리고 이런 변화를 가능케 한 큰 힘 중 하나가 ‘협회’의 지속적인 노력이었다. 결 혼 합법화 이후 협회는 회원 5천여명, 28개 지부를 거느린 단체로 발전했 다. 이중 남성(게이)이 전체의 65%, 여성(레즈비언)이 나머지 35%를 차지 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완전한 것은 아닙니다.”

안드레아송과의 대화에 한 남자가 끼어든다. 머리가 벗겨지고 나이도 안 드레아송보다 서너살 많아 보이는 그의 이름은 보그. 역시 협회에서 일하 는 그는 안드레아송과 ‘합법적 부부관계’다.

“일반 부부와는 달리 우리에겐 금지된 게 아직도 많습니다. 우선 우리는 교회에서 결혼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자녀를 입양할 수도 없구요, 인공 수정을 통해 자녀를 가질 수도 없습니다.”

보그는 이런 ‘명백한 차별’은 스웨덴뿐 아니라 동성애자 결혼을 인정한 나머지 세 나라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지적한다. 스웨덴도 다른 유럽국가들 과 마찬가지로 기독교 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어 성경에 위배되는 동성애 자체에 근본적으로는 부정적인 시각이 팽배한 게 사실이다. 한 예로 90년 대 들어 해마다 동성애자 중 1∼2명이 무참히 살해되고 있다고 한다. 대 부분의 주검은 “동성애자를 말살해버리겠다”는 경고문과 함께 발견된다 .

자녀 입양문제도 중요한 현안이다. 이성과의 정상적인 부부생활을 하다가 동성애로 빠져든 부부의 경우 이전의 부부생활을 통해 낳은 자녀를 양육 하는 데 문제가 없다. 그러나 상당수 동성애 부부에겐 자녀 입양권이 없 는 데다 인공수정으로 자녀를 낳는 것도 금지되어 있어 많은 동성애 부부 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고 한다.

안드레아송은 물론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현행법상 동성애 부부가 자녀를 갖기 위해선 게이부부와 레즈비언부부 중 각각 1명이 만나 정상적인 성관계를 통해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낳은 방 법이 있습니다. 게이인 현 협회장도 한 레즈비언 상대자를 통해 자식을 얻었습니다.”

이럴 경우 아이들은 동성애 부모를 어떻게 부를까.

“아이들은 실제로 자신을 낳은 부모에게 아빠·엄마라고 합니다. 그리고 엄마·아빠와 같이 살고 있는 법적 부모에게는 그 사람의 이름을 그대로 부르죠. 하지만 엄마·아빠 중 누구 자식으로 올리는가 하는 것 등 문제 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국내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한 예로 스웨덴 동성애 부부 중 한 쪽이 EU지역 내로 장기출장을 갈 경우가 문제다. 출장대상국에서 동성애 부부를 부부로 인정하지 않아 가족 이주문제뿐 아니라 그 나라의 각종 사 회보장 혜택에서도 제외된다.

이에 따라 협회는 국제적으로도 자신들의 권리를 보장받기 위한 노력을 계획하고 있었다. 안드레아송은 “유럽연합(EU) 통합 이전에 EU 국가간 동성애자 권익을 상호보장하는 협정을 관철시킬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밖에도 동성애자들을 형법에 따라 사형에 처하는 이슬람국가에 대해 유엔 과 EU본부를 통해 처벌금지를 촉구하는 사업도 협회가 하는 큰일 중 하나 다.

동성애 인정은 사회 다양성 수준의 척도

점심시간 때쯤 인터뷰를 마치면서 안드레아송과 보그는 다정히 포즈를 취 했다. 그리고 둘은 아직도 여러 법률적 제약에 놓여 있는 한국 동성애자 들에 대한 걱정으로 말을 맺었다.

“현재 세계적으로 70여개국 3백여개의 동성애자협회가 활발하게 활동하 고 있는데도 한국의 동성애자들이 제대로 조직화되지 않아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동지들에게 모든 권리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결속, 조직 화를 통해 쟁취하는 것이라는 말을 꼭 전하고 싶습니다.”

최근 우리나라에도 대학가, 문화계를 중심으로 동성애자들의 인정과 권익 보호를 위한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몇년 전만 해도 드러내기조차 어려 웠던 주장들이 스스럼없이 논의되고 있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가 다양 화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스웨덴의 동성애자들을 통해 볼 때 동성 애 문제는 ‘사회 다양성’의 수준을 판단하는 잣대로 읽혔다. 과연 21세 기를 앞둔 한국은 흑백논리, 획일적인 사고에서 얼마나 벗어날 수 있을까 . 한국에서도 동성애는 어쩌면 그 잣대일 수도 있다.

스톡홀롬=송태정/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한겨레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