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1997년08월07일 제 169호

진귀한 곤충은 다 모였다

(사진/교미중인 꽃하늘소 암수 한쌍.)

유인등을 켠 지 1시간 남짓. 곤충을 모으기 어렵다는 달 밝은 밤인데도 진동계곡의 온갖 곤충들이 쉴새없이 유인등을 들이받고 있었다.

물푸레나무와 들메나무만 먹고 사는 홍다리사슴벌레, 대규모 참나무 군락 이 형성된 지역에서만 나타나는 다우리아사슴벌레, 동물의 썩은 시체만 먹는 수중다리송장벌레가 먼저 모습을 드러냈다. 나방들은 종류를 헤아리 는 게 애시당초 불가능했다. 쥐똥나무와 라일락을 먹는 왕물결나방, 머루 만 먹는 머루박각시, 살구와 복숭아를 먹는 녹색박각시, 산목련만 먹는 자나방, 그리고 나방에 기생하는 맵시벌…. 도대체 얼마나 많이 몰려드는 지 하늘이 새까맣다.

달 밝은 밤 유인등 켜자 새까맣게 몰려

(사진/꽃등에를 잡아먹는 파리매.)

함께 생태조사에 나선 광릉수목원 곤충분류연구실 원갑재(49) 실장은 “ 광릉수목원 등 최고의 임상을 자랑하는 지역에서나 볼 수 있는 곤충들 대 부분이 이렇게 짧은 시간에 모여들고 있다”며 “최고의 곤충생태를 간직 했다”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더욱이 다른 지역과는 달리 육서곤충 과 거의 비슷한 개체수의 수서곤충들이 몰려들어 물 또한 원시의 건강함 을 증명하고 있었다. 새벽에 눈을 뜬 취재진은 다시 한번 놀랐다. 하룻밤 채집된 나방만도 모두 19개과 1백43종에 이르렀고 희귀종으로 채집이 어 렵다는 긴날개밤나방도 모습을 드러냈다. “임상이 잘 발달된 곳에서 채 집 적기인 그믐밤을 이용해도 1백여종 정도 모여드는 것과 비교하면 숲이 얼마나 건강한지 잘 알 수 있다”는 게 원 실장의 설명이었다. 밤새 설치 해 놓은 덫에도 두꺼비딱정벌레, 앙코스키, 스텐베르브 등 날개가 퇴화된 10여종의 보행곤충들이 걸려들었다.

(사진/갓 부화한 깽깽매미가 힘겨운 모습으로 가지에 매달려 있다.)

한낮 햇볕이 따갑게 내리쬐는 들판 또한 진귀한 곤충들의 삶이 펼쳐지고 있었다. 황오색나비 조흰뱀눈나비 암먹부전나비…. 한여름에 볼 수 있는 모든 종류의 나비들이 날고 삼거리 부근 풀숲에서는 분홍빛 날개를 자랑 하는 암고운부전나비가 채집됐다. 돌복숭아와 매화나무를 먹고 사는 이 나비는 과거 중부지방에서 주로 서식했지만 현재는 거의 사라진 희귀종이 다. 또 단목령 고갯길 한켠에 펼쳐진 망초밭에서는 희귀종인 꽃하늘소 한 쌍이 짝짓기를 하고 있었다. 취재진은 고산지대 높은 나무에서만 서식하 고 인가로 접근하지 않아 표본조차 구하기 힘들다는 깽깽매미가 우화하는 생생한 모습을 관찰하는 행운을 갖기도 했다. 귀둥나무에서 1cm 크기의 파리매가 꽃등애의 등에 빨대 같은 입을 꽂고 내용물을 빨아먹는 진귀한 장면도 목격할 수 있었다. 풀섶 밑에서는 이미 이야기 책 속에나 나오는 여치와 베짱이, 검은등메뚜기가 저마다의 생존공간을 꾸려가고 있었다. 그러나 저 먹고 살기에 바쁜 탓인지 사람들은 이곳의 생태에 대해 제대로 된 조사 한번 하지 않았다.

종자전쟁 대비 안 하나

(사진/멸종위기에 몰린 암고운부전나비.)

“진동계곡이 더 망가지기 전에 얼마나 많은 종이 살고 있는지 표본조사 라도 해야 한다는 책임을 느꼈다”는 원 실장은 이렇게 말한다. “곤충은 태어난 먹이풀 주변에서 살다가 그곳의 환경이 무너지면 함께 멸종한다. 외국은 연구목적의 곤충종 하나도 반출 못하도록 막고 있다. 종자전쟁이 시작되면 한종한종이 모두 돈이다. 그들은 생명에 대한 기초적 지식을 제 공하기 때문이다.” 남쪽 하늘 아래 남은 이들의 마지막 생존공간인지도 모를 진동계곡을 위협해 들어오는 사람들에 대한 경고처럼 들린다.

신승근 기자 한겨레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