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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1997년08월07일 제 16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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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관상용으로 주목받는 토종 쉬리.)
원시림이 뿌리속 깊숙이 머금었다 천천히 뱉어내는 맑고 차가운 물은 너 른리골 단목령 북암령 골짜기를 따라 서서히 흐르다 마침내 삼거리에 이 르면 한데 어우러져 제법 큰 물줄기를 이룬다. 바로 진동계곡이 품고 있 는 또 하나의 생태보고, 천연기념물인 열목어의 서식지로 세상에 널리 알 려진 진동천이 시작되는 곳이다. 진동천은 강선리골 벌막골 방태산 물줄 기를 받아들이며 진동2리∼설피밭∼진동1리∼방동리를 거쳐 인제군 기린 면 현리까지 약 90리(35km)를 내달려 오대산에서 흘러드는 게방천과 합류 해 내린천을 이룰 때까지 계곡을 속속들이 적시는 계곡의 동맥이다.
동족 잡아먹는 포악한 둑중개
그 동맥 또한 희귀 어류의 표본실 구실을 톡톡히 하고 있다. 강선리골의 거친 물줄기를 역류해 해발 9백고지에 오르면 물고기를 찾기는 어렵지만 지리산과 덕유산 등 인적이 없는 깊은 산속에만 드물게 사는 것으로 알려 진 꼬리치레도룡뇽이 노닐고 멸종위기에 몰린 희귀종인 물두꺼비의 모습 을 확인할 수 있다.
먹이가 풍부하고 물맑은 진동천 속에서는 과연 어떤 생태계가 펼쳐지고 있을까. 취재진이 이틀 동안 충남대 생물학과 송호복 박사(담수어류)와 함께 진동천 물속을 뒤진 결과는 생명의 풍부함에 대한 감격이었다.
먼저 진동천 상류인 750고지의 삼거리 부근에서 투망을 던지고 족대질을 시작했다. 맨처음 취재진을 반긴 것은 아랫배에 주황색 휘장을 걸친 금강 모치였다. 금강상류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강원도 깊은 골짜기에서만 볼 수 있는 한국 특산종으로 진동천에서 가장 많은 개체수를 자랑하는 우점 종이다. 물살 센 여울목에 족대를 대고 돌을 들출 때마다 사나운 모습을 드러낸 것은 육식성 어류인 둑중개. 여울목 바위 밑에 붙어 날도래 등 수 서곤충과 작은 물고기를 잡아먹는 상류의 포식자다. 실제 채집한 물고기 들을 담아둔 어항 속에서 자신보다 몸집이 작은 둑중개를 잡아먹는 포악 함을 보이는가 하면 낚시바늘만 담가도 끌려 올라오는 어리숙한 면도 있 다.
삼거리에서 3km 정도 내려온 설피밭. 전나무와 낙엽송이 하늘을 찌르는 산자락을 돌아들던 진동천은 이곳에서 벌막골 지류와 합쳐 제법 큰 물줄 기를 이룬다. 곳곳에 펼져진 짙푸른 소(沼)에서 취재진은 배에 검은 반점 을 간직한 천연기념물 열목어가 팔뚝만한 몸뚱아리를 부드럽게 유영하는 모습을 목격하고 투망을 던졌다. 하지만 큰 놈들은 걸려들지 않는다. 바 위틈으로 잽싸게 몸을 숨겼고 15cm 정도 자란 열목어 4마리만이 걸렸다. 2∼3년 정도 자란 것들이다. 투망을 거둬들인 송 박사는 “열목어는 한여 름에도 수온이 20℃를 넘지 않도록 햇빛을 차단할 수 있는 무성한 나무 그늘과 팔뚝만한 몸뚱아리를 숨길 수 있는 깊은 소가 있는 장소에서나 주 로 서식한다. 열목어가 산다는 것은 그만큼 훌륭한 식생을 간직하고 있다 는 증거”라고 말했다.
화려하게 춤추는 새미
(사진/산란기를 맞아 화려한 혼인색을 땐 새미.)
열목어와 함께 이곳에서 취재진의 눈길을 사로잡는 화려한 물고기가 또 있었다. 특산종은 아니지만 한강의 최상류 일부 지역과 삼척의 오십천에 서만 가끔씩 잡힌다는 희귀종 새미였다. 때마침 산란기를 맞은 수놈들은 머리에 흰 돌기의 왕관이 생겨나고 가슴지느러미가 노랗고 빨간 혼인색으 로 물들어 화려함의 극치를 보이며 암놈이 낳은 알에 정충을 내보내기 위 해 몸을 곧추세우며 힘겹고 화려한 춤을 추고 있었다. “어류학자들조차 이렇게 화려한 혼인색을 띤 새미를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다”며 송 박사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설피밭을 지나 다시 4km 정도를 내려온 진동천 물길은 드넓은 고원분지인 바람불이(쇠나들이)를 지나며 숨을 고른다. 폭은 넓지만 아주 얕은 천을 이루며 흐름이 완만하다. 이곳에는 혼인색으로 치장한 새미가 대부분이었 고 가끔 열목어가 눈에 띌 뿐이었다. 더이상 최상류에서 잡혔던 둑중개나 금강모치는 보이지 않는다. 이로 보아 최상류와는 다른 생태계가 시작되 고 지점인 것이다.
바람불이에서 한숨 돌린 진동천은 이제 사람이 쉽사리 접근할 수없는 거 센 물살로 굽이치며 협곡을 내닫는다. 승용차로 20분을 내리 달려서야 성 난 물살이 조금 잦아진다.
인제군 기린면 방동리 갈터초등학교 근처. 방태산 물줄기가 점봉산 물줄 기와 만나는 지점으로 수량이 훨씬 많아졌고 강폭 또한 상류보다 3배 가 까이 넓어진다. 평지처럼 노출된 곳과 센 물살 지역, 깊은 수심을 유지한 채 유유히 흐르는 지역이 동시에 형성된 이곳에서는 금강모치나 둑중개 열목어 새미 등 냉수어류는 더이상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참종개와 돌고 기 가는돌고기 새코미꾸리는 물론 수중의 무법자인 꺽지와 퉁가리까지 희 귀어종이 무려 6종이나 채집됐다. 이 가운데 돌고기를 제외한 5종 모두 한국에서만 서식하는 특산 희귀종들로 진동천의 가치를 단박에 보여준다. 특히 술꾼처럼 코가 빨간 새코미꾸리는 기름종개과에 속하는 것으로 그 개채수가 많지 않아 학술적으로도 중요시되는 것으로 2시간 동안 단 한마 리만 잡을 수 있었다.
몇차례 채집을 계속하며 진동천이 끝나는 현리 부근에 이르자 물줄기는 더욱 거대해진다. 오대산에서 내려오는 게방천과 합류해 내린천을 이룰 준비에 부산한 이곳은 수심이 깊고 폭이 너무 넓어 발을 들이기조차 위험 스러웠다. 이곳에서도 나름의 생태계를 이루며 살아가는 쉬리와 돌상어 모래무지 갈겨니 등 모두 4종을 채집할 수 있었다. 이 가운데 쉬리는 등 지느러미와 꼬리지느러미에 화살무늬를 하고 측면의 노랑 파랑 보랏빛 줄 무늬와 반짝이는 비늘을 자랑하며 떼지어 다니는 특성 때문에 한국 특산 종 가운데 관상어로 이용 가치가 가장 큰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사람이 떠내려갈만큼 물살이 센 돌밑에 붙어 서식하는 돌상어 또한 희귀 특산종. 이제 진동천은 내린천으로 흘러들며 마무리 된다. 송 박사는 “내린천으 로 흘러들면 어름치 정도가 더 추가된다”고 설명했다.
“어류 67%가 한국 특산종”
(사진/물속의 부끄럼쟁이 참종개.)
취재진은 모두 14종을 채집했고 그 가운데 금강모치 참종개 가는돌고기 세코미꾸리 꺾지 퉁가리 쉬리 돌상어 등 한국 특산종을 확인했다. 하지만 이틀동안의 채집으로 진동천의 전체 생태계를 알기에는 부족함이 많다. 진동천과 내린천 일대의 어류생태를 3차례 조사한 바 있는 송 박사는 “ 묵납자루 배가사리 돌마자 미유기 등의 특산종이 더 살고 있다”고 설명 한다. 그는 지금까지 “진동천에서 모두 7과 18종의 물고기가 채집했으며 이가운데 무려 67%인 12종이 한국 특산종이었다”고 덧붙였다. 보통 우리 나라의 하천 생태계가 20% 정도의 토종물고기를 품고 있는 것에 비춰본다 면 토종의 천국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큼의 가치를 지녔다는 것이다. 여기에 채집이 어려운 야행성과 주민들이 잡았다는 어류까지 포함한다면 적어도 25종 정도가 서식하리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그러나 진동천의 가치는 종의 다양성과 특산종의 천국이라는 데만 있는 게 아니다. 송 박사는 “한반도에서 진동천처럼 상류부터 하류까지 계단 식으로 물고기 서식지가 정확히 구분되는 곳은 없다”고 말한다. 해발고 도 1천m 이상에서 발원해 약 3백m 지점인 현리까지 35km를 내리 흐르면서 어류의 수직적인 분포상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곳은 진동천뿐이라는 것이다.
그는 “진동천만은 후세들을 위한 생태적 표본으로라도 남겨둬야 한다” 고 거듭 강조한다. 아직 서식 어류의 생태적 습성조차 밝혀지지 않은 상 황에서 이들이 종적 가치를 섣불리 평가하거나 눈앞의 이익을 위해 진동 천을 파괴하는 실수를 저질러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신승근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8월0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