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	1997년08월07일 제 169호

격동하는 야권 제3후보가 뜬다

충남 예산과 경북 포항 재·보궐선거 결과가 여권의 분열조짐과 맞물리면 서 대선구도에 난기류를 몰고 오고 있다. 예산 재선거는 야권 공동집권의 중요한 축으로 여겨져 왔던 김종필 자민련 총재에게 적잖은 정치적 타격 을 가져다 주었다. 그리고 박태준 전 포철회장의 부상은 이른바 무주공산 의 영남지역 중심의 새로운 정치적 축의 형성 가능성을 읽게하는 것이다. 게다가 여권의 이수성, 이한동 고문의 탈당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고 재 야민주진영은 국민후보론을 확정, 인물선정 작업에 들어가고 있어 기존의 이회창, 김대중, 김종필 중심의 대선 구도는 근본적인 변화를 피할 수 없 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통추,조순대통령후보 추대위 준비

최근 야권 일부에서 ‘DJP연합’의 틈새를 뚫고 그동안 잠재돼 있던 ‘DJ P 대안론’들이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은 대선구도의 변화를 선도하는 요인이다. 민주당에서 갈라져 나온 ‘국민통합추진회의’(통추) 에서는 이미 조순 서울시장을 야권의 제3후보로 추대하기 위한 작업에 들 어갔다. 조 시장은 민주진영의 국민후보 대상자에도 포함돼 있다. 이들은 대부분 예산 선거의 패배를 DJP연합의 한계를 보여준 사례로 규정한다. 정권교체를 위해서는 DJP 이외의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민련 일부에서도 DJP의 대안으로 보수대연합을 우선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이 이번 선거를 계기로 더욱 힘을 얻어가고 있다. JP에다 박태준 당 선자와 신한국당 대선후보 낙선자들인 이한동, 이수성 고문을 묶는 4인연 대 구상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밖에 TK(대구·경북) 일부 인사들을 중심 으로 박태준씨가 보수성향의 TK신당을 만들어 대선에 독자출마할 가능성 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이런 새로운 움직임들이 구체적으로 결실을 맺을 것인지는 속단할 수 없 다. 그러나 현실화될 경우 여야 모두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은 자명해 보인다. 현재 대선구도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야권의 움직임은 크게 다섯 갈래로 전개되고 있다. 우선 그 중심에는 국민회의와 자민련 주류가 추진하는 DJP연대를 통한 공동집권 구상이 자리잡고 있다. 여기에 자민련 일부의 보수대연합 추진과 통추의 조순 시장 추대, 재야세력의 진보적 독 자후보 선출, TK후보 출마논의 등이 DJP연대를 위협하고 있다.

야권에서 DJP연대에 회의론을 제기하며 가장 먼저 반기를 들고 나온 세력 은 이기택 민주당 대표 체제에서 갈라져나온 국민통합추진회의(대표 김원 기)이다. 통추는 그동안 연대의 제1순위로 상정했던 신한국당 이수성 고 문이 경선에서 탈락하자 조순 서울시장을 야권의 제3후보로 추대하는 움 직임을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대선출마에 대해 애매모호한 입장을 보여온 조 시장도 최근 대선출마에 강한 의욕을 보이는 등 예사롭지 않은 태도를 나타내고 있다. 지난 7월24일 서울시장 관사에서 조찬을 함께 한 통추의 제정구 의원은 “조 시장이 대선에 출마한다는 결심을 이미 굳힌 것으로 안다”며 “조 시장을 만난 것은 대선출마를 위한 절차를 논의하 기 위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통추는 8월20일께 ‘조순 대통령후보 추대 위’를 발족하고 조 시장은 8월 말께 서울시장을 사퇴한다는 시나리오를 이미 짜놓고 있다.

반 DJP 모두 모이면 필승?

통추는 DJP의 양보 여부와 상관없이 일단 조순 시장을 야권의 대선후보로 추대한 뒤 민주당과 민주노총 등 진보정당추진세력을 제외한 일반 시민단 체를 일차로 추대위에 끌어들인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나아가 국민회의 비주류와 박태준씨도 합류시킨 다음 신한국당의 일부세력도 포섭한다면 신한국당 이회창 후보나 야권의 DJP연합후보와 싸워도 대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있다고 자신하고 있다. 조 시장이 대선출마를 위해 공직을 사퇴 하면 12월18일 대선 때까지 조 시장을 다양한 목적의 ‘와일드카드’로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현행법상 공직자 사퇴시한은 9월19일 이다. 통추는 일단 조 시장의 출마선언을 DJP에 대한 양보를 강제하는 압 박용으로 쓸 수 있는 데다 만약 DJP가 양보하지 않을 경우에는 DJP 이외 의 야권 전체의 연대를 통해 3자대결구도로 몰고가는 카드로 활용할 계획 이다.

조 시장이 DJP의 대안이 되거나 최소한 DJ의 대안이 되는 경우는 통추쪽 에서 기대하는 가장 바람직한 상황이다. 그러나 그것이 현실화될 것인지 는 가능성보다 불가능성이 높은 게 현실이다. 국민회의와 자민련 주류는 DJP연대를 최후의 카드로 추진한다는 방침이고 DJ의 경우 단일화가 안되 더라도 단독출마할 생각인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조 시장이 출마할 경우 야권은 일단 DJP연합후보와 통추+민주당의 조순 후보, 재야세력의 국민후보 등 3자 대결구도나 DJ, 보수대연합 후보 , 조순, 재야의 국민후보 등 4자 대결구도로 갈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도 변수가 있다. 통추와 민주당의 감정적 갈등 때문에 민주당이 조직적으로 통추의 ‘조순 후보 만들기’에 합류할지도 의문이다.

한때 조순 시장을 DJ의 대안으로 생각했던 국민회의 비주류도 조 시장이 국민회의 전당대회 때 후보경선에 합류하지 않음으로써 지원 가능성은 물 건너갔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상현 고문과 김근태 부총재는 “전당대회를 통해 야권후보가 결정된 마당에 제3후보를 거론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 는다”며 통추와의 공조가능성을 일축했다. 최악의 경우에 조순 시장은 D JP를 대신한 야권 제3후보가 아니라 야권의 또다른 제4후보 또는 제5후보 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민주노총과 전국연합 중심을 추진되는 민주진영의 독자출마론은 진보세력 의 정치세력화를 목표로 한 것이기 때문에 다른 제도권 정당들과의 연대 는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인다. 이들은 99년초까지는 진보정당을 창당한다 는 구상이다.

자민련 일부에서 구상하고 있는 새로운 대선구도는 ‘JP+박태준+이수성+ 이한동’ 등 4인연대다. 자민련 일부에서는 최근 신한국당 대선후보 낙선 자들인 이한동 이수성 고문 등이 JP를 방문한 것에 특히 주목하고 있다. 자민련의 한 고위당직자는 “김종필 총재는 마지막으로 박태준씨와 이한 동 이수성 고문 등 보수안정희구세력들을 한데 모으는 시도를 할 것으로 보인다”며 “보수대연합이라는 큰 그물에 이들을 넣고 한꺼번에 건져올 리는 방안을 모색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경우 충청권과 대구·경북, 경기도 등 중부권을 묶는 최대의 지역연합이 가능하기 때문에 신한국당 이회창 후보나 DJ를 능가할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하고 있다.

TK 세력 박태준 앞세워 재집결도 가능

TK 일부 인사들은 DJP단일화가 안 되거나 JP중심의 보수대연합이 여의치 않을 경우 자민련 내 TK세력들이 탈당해 박태준씨를 영남권후보로 밀 가 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자민련의 한 대구출신 의원은 “만약 박 태준씨가 대선출마를 선언할 경우 다음 총선을 위해 TK의원 중 일부가 이 탈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한편 신한국당 후보경선에서 차점 낙선한 이인제 경기도지사가 국민정당 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등 탈당과 독자출마 가능성을 시사해 야권의 사정 은 더욱 복잡해질 전망이다. 이런 복잡성은 여권내에 상존하는 이회창 후 보에 대한 뿌리깊은 반대정서, 그리고 야권에선 DJP단일화로도 정권교체 가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여전히 힘을 얻고 있다는 현실에서 비롯된다. 일 부 세력들은 이번에도 야권의 패배를 전제로 98년 지자체선거나 99년 16 대총선에 나설 교두보 마련 차원에서 연말 대선에 접근하기도 한다. 패배 주의적인 혼란이냐 아니면 새로운 질서 창출을 위한 창조적 혼란인지는 8 월말까지 지켜봐야 할 것같다.

김성호 기자 한겨레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