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	1997년08월07일 제 169호

여의주는 야당에도 있다

(사진/경선과정에서 급격히 가까워진 이한동 이수성 고문. 여당에서 실패한 대선출마 목표를 야권과의 다양한 손잡기를 통해 재시도 하고 있다.)

신한국당 경선에서 탈락한 이한동 이수성 고문이 행동 반경을 야당으로 확대하고 있어 정가의 관심을 끌고 있다. 두 사람은 경선이 끝난 이후 경 쟁자였던 이회창 신한국당 대표를 연말 대선에서 지원하지 않겠다는 뜻을 직간접적으로 밝히고 있다. 최근에는 한발 더 나아가 ‘보수대연합론’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는가 하면 ‘호남 대통령론’까지 제기하고 있다. 이들의 정확한 의도나 속셈이 무엇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여당에서 실 패한 대선출마 목표를 야권과의 다양한 손잡기를 통해 재시도하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가능하다. 그리고 여권이 이번 대선에서 정부 출범 이래 최대의 분열상을 보일 것이라는 점 또한 자명해 보인다.

이적행위 지적에도 박태준 후보 만나

현재 가장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사람은 이한동 고문이다. 경선에서 2위와 8표 차이로 아깝게 뒤지는 바람에 결선투표에 나가지 못한 이 고문 은 이틀 뒤인 7월23일 보궐선거가 열리고 있는 포항으로 내려가 박태준씨 를 만났다. 소속을 달리해 싸우고 있는 박태준씨를 만나는 것은 ‘이적행 위’라는 당내 지적에 아랑곳하지 않고 투표 하루 전날 박씨를 공개 방문 한 것이다. 이한동 고문은 이어 26일 오전에는 김종필 자민련 총재를 신 당동 자택으로 찾아가 아침을 함께 하면서 밀담을 나눴다. 그는 이와 함 께 경선 때 자신을 지지했던 모임 ‘비젼21 나라경영회’를 사실상 계보 모임으로 확대하고 있다. ‘비젼21 나라경영회’는 곧 공식 발기인대회를 가질 방침이다.

이한동 고문은 현재 탈당 뒤 독자출마 가능성에 대해서는 부인하고 있지 만, 주변 움직임이나 언행은 완전히 다르다. 그의 한 측근은 이와 관련해 “현재로서 결정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면서도 “모든 것을 다시 시작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야권과의 연대 가능성과 독자적인 출마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는 것이다.

이수성 고문의 행보는 그 폭만 놓고 볼 때는 이한동 고문보다 훨씬 현란 하고 파격적이다. 그는 지난 24일과 25일 평소 비판하던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와 김종필 자민련 총재를 자택으로 방문했다. 두 사람과의 만남에 대 해 그는 “말 못할 사연이 있다”고 말해 내밀한 논의를 했음을 시사했다 .

미국을 방문중인 이수성 고문은 7월27일 워싱턴 특파원들과 가진 기자간 담회에서 “지역감정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지역개발이나 인재등용의 형평 성보다 호남 사람들의 마음의 상처를 씻어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 누구든 호남 출신이 대통령이 돼야 지역감정이 해소될 수 있다”고 말했 다. 자신이 소속한 당의 후보를 제치고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를 지원할 수 있다는 뉘앙스를 짙게 풍기는 대목이다. 더구나 이 발언은 신한국당 당내 경선에서 “호남 몰표를 가진 야당 대선후보를 이기기 위해서는 영 남 출신인 내가 후보가 되어야 한다”던 자신의 주장과도 모순되는 것이 어서 그 배경에 더욱 관심이 쏠리고 있다.

두 고문의 주변에서 나오는 얘기를 종합해보면 김종필 자민련 총재와 이 한동 이수성 고문 그리고 박태준 전 포철회장간의 4자연대나 김대중 총재 까지 포함한 5자연대를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한동 고문이나 이수성 고문의 경우 비슷한 연배의 이회창 후보가 대통령이 되는 것보다 는 김대중 김종필 총재가 되는 것을 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가에서는 4자연대나 5자연대의 성사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인 시 각이 아직은 더 우세하다. 무엇보다 연대 이후의 대표주자를 누구로 할 것이냐에 대해 서로 자기가 해야 한다는 동상이몽에 빠져 있다고 보기 때 문이다. 두 고문쪽은 DJ나 JP로는 이회창 후보에게 힘들다는 여론조사가 나오는 만큼 자신을 추대해주기를 기대하는 반면, DJ나 JP는 반대로 여권 의 분열을 통한 대선 승리를 궁극적 목표로 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야권과의 연대 밑질게 없다

따라서 야당을 냥한 두 고문의 다양한 움직임은 결국 자신들의 주가를 올 리고 이회창 대표의 등장으로 위기에 처한 당내 입지 강화를 염두에 둔 포석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야권과의 연대가 자신을 중심으로 되지 않을 바에야 차후를 생각해서라도 몸값을 올려둬야 한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수성 고문은 이회창 대표에 대한 지원의 전제조 건으로 TK(대구 경북) 대표성을 놓고 경쟁중인 김윤환 고문을 뒤로 물리 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야권을 겨냥한 두 사람의 비 슷한 행보가 사전 조율을 거쳐 나온 것으로 보이지 않는 점도 이러한 분 석을 뒷받침하고 있다. 경선과정에서 ‘가슴으로 통하는 사이’로 발전했 던 두 사람이 막판 후보단일화 과정에서 적잖이 ‘실망’해 서로 토라져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탈당 여부는 두 사람도 장담할 수 없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들 이 방향을 180도 전환해 이회창 후보를 지원하기에는 감정적으로 너무 틀 어져있다는 점이다.

김종철 기자 한겨레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