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야기/하야시 게이코	1997년08월07일 제 169호

왜 일본에 고개를 숙여요?

“일본인들은 한국에 대해 너무 모릅니다. 반면 한국인들은 일본에 대해 너무 많이 아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 같아요.”

재일동포 하야시 게이코(47)는 한국과 일본 두 나라 사람들의 생각을 이 렇게 나눈다. 일본에서 태어나 44년을 살았고, 한국에서 3년을 지낸 사람 의 말이라 가볍게 들리지 않는다. 그가 이국의 설움에서 자유롭지 않은 시절을 보냈기에 더욱 그렇다. “어렸을 때 일본 아이들한테서 ‘죠센’( 조선사람)이라는 놀림을 많이 받았어요. 하지만 부끄럽거나 부모를 원망 한 적은 한번도 없습니다. 아버지께선 항상 ‘네가 부끄러운 짓을 아니한 이상 얼굴을 들고 살아라’라고 가르치셨죠.”

죠센이라는 말은 그의 마음 속에 ‘조국은 어떤 곳일까’ 하는 의문을 불 러일으켰다. 그건 마치 선생님이 내준 숙제 같은 거였다. 불혹이 되도록 숙제를 못한 아이의 마음으로 살았단다. 그러다 기회가 찾아왔다. 그가 살던 동네에 한글시민강좌가 개설된 것이다. 그때 비로소 모국의 말을 배 웠다. 그리고 내친 김에 유학까지 감행했다. “대학 3학년이던 딸과 치과 의사인 일본인 남편을 설득하는 게 쉽지는 않았어요. 그래도 막 고집을 피웠죠.”

그는 올해도 바쁜 여름을 보냈다. 지난 7월25∼27일 서울 기독교백주년기 념관에서 열린 한·일합동교육연구회 때문이었다. 한국과 일본의 교사들 이 두 나라의 교과서를 분석해가며, 역사인식의 거리를 좁히는 연구회에 서 그는 한국 교사들의 보고서를 일일이 일본어로 옮기고 자료집을 내는 일을 맡았다. 지난 96년 첫 모임이 있을 때부터 힘을 보태왔건만 하면 할 수록 긴장된단다. 역사해석이란 게 조금만 삐끗해도 천길 낭떠러지로 떨 어지기 때문이다.

그는 “한·일 두 나라 정부나 전문가들이 모여서 하는 거창한 사업보다 오히려 민간차원의 다양한 교류가 서로를 이해하는 데 보탬이 된다”고 믿는다. 이 때문에 그는 돌아가는 대로 일본의 보통 사람들한테 한국 문 화와 생활을 알리는 모임을 만들 작정이다. 그는 올해 연세어학당을 졸업 하고, 지금은 경기대 국제대학원 연구생으로 있다. 멀고도 가까운 이웃을 화해시키려는 그의 목소리가 밝다. “한국이 일본에 부끄러운 짓을 하지 않았으니 얼굴을 들고 살아요.”

김창금 기자/ 한겨레 문화부 한겨레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