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야기	1997년08월07일 제 169호

개그맨 노정렬의 외침 “말만 하지 말고 손도 씁시다”

“군대요? 살을 덜 빼서 1년6개월 갔다 왔습니다.”

최근 시사개그칼럼 <말하면 뭐해 속만 상하지>(둥지)를 펴낸 행시출 신 개그맨 노정렬(27)씨에게 ‘군문제’를 묻자 그가 즉각 답한 말이다. 신한국당 이회창 대표의 두 아들 문제를 소재로 한 개구(開口)다. <말 하면…>에는 이 밖에도 ‘진흙탕 정치에서부터 부패한 사회’까지 노씨 가 지난 1년 “개그맨의 눈으로 뒤집어보고 비틀어본” 우리 사회의 단면 들이 죽 등장한다. 지난 96년 여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문화방송 ‘황인 용의 FM모닝쇼’ 시사칼럼에서 방송했던 내용을 다시 손본 것들이다.

“사실 투박한 내용도 좀 있습니다. 그러나 ‘다소 어설프지만 신선하다 ’는 출판사 직원들의 끈질긴 ‘유혹’에 넘어갔죠.”

노씨는 96년 몇몇 출판사가 권유한 출판 제의를 모두 거절했다. 이유는 “같잖아서”다. 출판사들이 모두 행시 출신자에서 개그맨으로 변신한 데 대한 자전적 에세이류를 내자고 제의했기 때문이다. 물론 쓸 말은 많았다 . 그러나 그는 쓴다면 주제는 ‘신변잡기’가 아닌 ‘개그’여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그는 개그맨이니까 말이다. 그래서 <말하면…>의 출판 제의에는 “사실 기뻐 흥분할 지경”이었다고 한다.

“저는 아직 햇병아리 개그맨입니다. 그래서 아직은 말없이 지나가는 단 역도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배워야 할 처지죠. 그러나 30대 중후반이 되 면 자신의 캐릭터를 확실히 갖추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 책도 그 다양한 노력의 하나로 이해받고 싶습니다.”

하지만 ‘정녀리(정열이) 개그’는 이미 이 책에서도 그 특색의 몇몇 단 초를 선보이고 있다. 우선 그의 정치개그에는 ‘정치인이 산신령을 만났 다’라는 등의 가상상황이 등장하지 않는다. 모두 실명 정치인의 실제 행 동을 대상으로 삼고 있다. 그리고 날카로운 시각으로 이를 풍자하는 것으 로 끝을 맺는다. 그러면 조금 재미가 덜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는 “‘재 미만을 강조하는 개그’는 ‘정녀리 개그’가 아니다”고 강조한다.

“그동안 우리의 정치개그는 공익과 관련없이 무조건적인 개인비판이나 양비론적 자세를 취한 게 많았습니다. 하지만 단지 웃음을 위해 개그마저 도 정치적 비관론이나 무관심을 조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

그래서 노씨는 책제목 ‘말하면 뭐해 속만 상하지’도 참뜻은 ‘말만 하 면 뭐해 속만 상하지’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그는 이 책이 던지는 메 시지가 “그러니 말하지 말자”가 아니라 “그러니 말만 하지 말고 손도 쓰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김보근 기자 한겨레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