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1997년08월07일 제 169호

한총련 째깍째깍…

벼랑 끝에 몰린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은 끝내 무너지는가. 공안 당국이 정한 한총련 탈퇴시한인 7월31일을 전후로 공안당국의 한총련에 대한 대대적인 공세가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다수 학생운동권은 탈퇴 거 부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어, 대결상황은 장기화할 것으로 보인다.

대학 구내서 권총 발사도

학교와 공안당국의 집계에 따르면, 7월 말까지 전국 2백6개(전문대 포함) 한총련 가입 대학 가운데 한총련을 공식 탈퇴한 대학은 90여개에 이른다. 학생회 간부를 포함해 개인 자격으로 탈퇴한 학생도 1백여명이다. 그러나 90여개 대학에는 전문대와 지방대가 다수 포함돼 있고 학생운동에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대학 총학생회들이 빠져 있어 ‘탈퇴를 통한 와해’라는 애초 공안당국의 의도는 실현되지 못했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 해 “2백6개 대학 중앙조직원 2천여명 가운데 남아 있는 1천여명의 중앙 조직원을 국가보안법상 이적단체 구성, 가입 혐의로 무더기 입건하는 사 태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밝혔다.

공안당국의 강력한 대응은 이미 오래 전에 시작된 것이다. 지난 4월24일 대검찰청 공안부가 황장엽 망명 사건을 계기로 각계에 침투한 좌익세력 전반에 대해 수사한다며 노동부, 문화체육부, 공보처 관계자들까지 참여 시켜 ‘좌익사범합동수사본부’를 확대 개편한 것이 직접적인 출발이었다 . 이어 한총련 출범식 사태 이후, 수사본부는 6월10일 2차 실무회의를 통 해 “제5기 한총련 산하 대의원대회를 비롯한 중앙조직 전체를 국가보안 법의 이적단체로 규정해 관련자들을 전원 형사처벌하겠다”고 밝혀 학생 운동권과의 일대 결전에 들어갔다. 실제 대검 공안부는 지난 7월20일 한 총련의 탈퇴시한을 7월31일로 못박고 “한총련을 탈퇴하지 않는 중앙조직 구성원 전원을 8월1일부터 국가보안법상 이적단체 구성 및 가입 혐의로 입건 수배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때부터 한총련 중앙조직에 남아 있 는 각 대학 총학생회장과 총학생회 간부, 단과대 학생회장, 동아리연합회 장 등 1천3백여명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배자가 된 것이다.

한마디로 ‘학생운동 씨말리기’라는 표현이 지나치지 않다. 당국의 탄압 은 한총련 노선을 따르든 따르지 않든, 주류이든 비주류이든, 정권에 타 협적이든 비타협적이든지를 가리지 않는다. 학생회 체계를 구성하는 모든 학생들을 대상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체포와 연행과정에서 일어나는 인권침해 사례도 심각하다. 구속영장을 제 시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미란다원칙’을 제시하지도 않는다. 수업받던 학생을 학생처로 유인해 체포하는가 하면, 교수연구실의 문을 부수고 시 험을 치르던 학생회 간부를 체포하기도 한다. 경찰이 대학구내에 상주하 며 체포하는 경우도 있다. 유신시대를 연상시키는 상황이다. 부산 동아대 에서는 보안수사대 형사들이 등산객으로 가장하고 있다가 학생회관에 들 어가 학생회 간부를 연행했다. 권총으로 위협하면서 경찰서로 끌고 가는 경우는 흔하다. 실제로 지난 7월13일 단국대에서는 공안요원이 학생들을 향해 권총을 발사하기도 했다.

서울대 총학 “아직 탈퇴결정 못한다”

물리적인 연행과 구속보다 더욱 심각한 것은 학생자치권에 대한 심각한 침해다. 정부는 최근 한총련을 탈퇴하지 않는 대학에는 재정지원을 삭감 한다는 방안을 내놓았다. 대학당국이 대신 탈퇴를 강압하도록 하는 것이 다. 학교쪽은 이에 따라 학생회에 대해 한총련을 탈퇴하지 않으면 학생회 에 대한 모든 재정 행정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학생회 간 부들은 제적 무기정학 등 중징계를 받고 있다. 또 학장 등 교수들은 탈퇴 를 종용하는 특별지도를 실시하고 있다. 단국대의 경우 학교교직원이 학 생회 간부를 체포하는 데 긴밀히 협조한 증거가 발견되기도 했다.

이에 따라 학생 구속자가 급증하고 있다.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에 따 르면, 한총련 출범식 이후 6월 한달 동안 학생을 포함해 시국관련 구속자 수가 하루에 평균 13.7명꼴(4백13명)이다. 7월은 아직 통계가 나오지 않 았지만 비슷한 추세다. 서울지역 대학 40여개 총학생회장 가운데 10여명 이 구속됐다. 한총련 출범식을 빌미로 각종 조직사건도 늘어나 현재 전국 39개 구치소와 교도소의 시국관련 양심수는 9백여명을 넘었다. 1천명을 넘어서는 것은 시간문제다. 민가협 남규선 총무는 “지금 대학에서 벌어 지는 연행구속을 통한 인권유린은 계엄령하에서나 가능한 것”이라며 “ 군사독재 치하에서나 가능했던 경찰의 대학 상주가 다시 벌어지는 있는 것에 대해 대학사회나 학생들이 무감각하게 반응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 라고 말했다.

비이성적인 강경 탄압은 한총련의 개혁이나 혁신을 가로막는 결과로 나타 나고 있다. 공안당국의 대응에 대해서는 한총련 주류의 학생운동뿐만 아 니라 한총련 주류 노선에 반기를 드는 학생운동쪽에서도 극히 비판적이다 . 주류노선에 반대하고 있는 서울대 총학생회의 한 간부는 “탈퇴 시한을 정해놓고 탈퇴냐 아니냐를 강요하는 것으로 학생운동의 문제를 풀려고 해 서는 아무 것도 이뤄지는 것이 없다”고 전제한 뒤 “검찰이나 외부의 결 정에 떠밀려 한총련 문제를 다뤄서는 안 되며 학생들 스스로가 토론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서울대 총학생회는 “여 름방학 기간인 8월 말까지는 탈퇴를 결정하기가 불가능하다”고 못박았다 . 물리적인 시간도 부족할 뿐만 아니라 전체 학생의 의견을 묻는 절차를 생략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다른 대학에서도 정치노선의 차이와는 관계 없이 자주적인 대중조직인 학생회를 이적단체로 규정하고 강제적으로 압 살하려는 공안당국의 의도에 동의할 수 없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한총 련의 한 간부는 “정부가 진정으로 건강한 학생운동을 바란다면 학생운동 의 정당성과 효용성에 대해 전체 학생들이 평가할 자리를 마련해줘야 한 다”고 주장했다.

학생운동 ‘통 큰 사업’이 필요하다

공안당국의 태도가 변하지 않는 한 한총련을 중심으로 한 학생운동의 개 혁·혁신도 힘들어 보인다. 한총련은 지난 7월18일 임시대의원대회를 열 어 출범식 사태와 관련한 한총련 지도부의 책임문제 등 현안을 전반적으 로 검토하는 자리를 마련하려고 했지만, 당국의 원천봉쇄로 이뤄지지 못 했다. 임시대의원회대회를 통해 현안을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자세를 보 였던 강위원 의장이 연행 구속되었지만, 아직 한총련은 권한대행도 내세 우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총련 개혁을 요구하는 학생운동 내부의 목소리는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이들은 한총련 중앙집행부의 전원사퇴와 한총련 혁신을 위한 비상대책기구의 결성, 범청학련의 해체 등 구체적인 요구를 내걸고 있지만, 한총련 주류는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게다 가 한총련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자주대오 계열 내부마저도 출범식 사태 에 대한 책임문제와 대의원대회 개최 등을 둘러싸고 심각한 이견 대립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한총련 개혁은 현재 ‘산 넘어 산’이다.

한편 오는 8월15일 자주평화통일민족대회를 둘러싸고 한총련이 다시 한번 정권과 물리적 충돌을 벌인다면 돌이킬 수 없는 역량의 손실을 가져올 것 으로 보인다. 한총련은 이미 쿠바의 세계청년학생축전에 대표단을 파견해 충돌이 예상되고 있다. 전체 민족민주진영과의 협력과 합의 아래 통일운 동을 벌인다는 한총련의 통일운동이 범민족대회와 범청학련 행사를 둘러 싸고 또다시 빗나간다면 소외와 고립은 되돌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런 식의 고립과 소외로 나간다면 이제는 정말 정권이나 공안당국에 의 해서가 아니라 학생대중의 외면에 의해 한총련이 와해되는 상황이 올지 모른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커져가고 있다. 연말에 치러지는 내년도 총학 생회 선거에서 학생운동권 전체가 공멸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학우와 민중들과의 결합력을 높여 한총련의 신뢰를 되찾을 것입니다.” 한총련 출범선언대회에서 강위원 한총련 의장 이 한 말이다. 사면초가(四面楚歌)에 몰린 학생운동이 정말 국민대중의 신뢰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인가. 학생운동의 백년대계를 생각하는 ‘통 큰 사업’은 이럴 때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김창석 기자 한겨레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