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탐구/김윤환	1997년08월07일 제 169호

“당 우위의 정치 구현하겠다”

대담/곽병찬 편집장

역시 그는 노련했다. 그를 둘러싼 극단의 평가에 대해 그는 단순한 긍정 부정 이상의 대안을 내놓을 준비가 항상 갖추어져 있는 듯했다. 수구세력 의 상징이라는 정적들의 지적에 “문민정부를 출범시켰을 땐 '숲을 보는 정치인이라고 했던 사람이 누군데…”라는 말로 간단히 웃어 넘겼다. 모 든 권력이 집중되고 있는 이회창 후보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주군과 공신 의 관계가 아니라 ‘동반자 관계’라고 규정하는데 서슴지 않았다. 나설 때와 물러설 때를 절묘히 맞추는, 그래서 양지만 찾는다는 비난에도 수시 로 노출돼온 그를 7월24일 여의도 사무실에서 곽병찬 편집장이 만났다. -킹 메이커를 직업으로 하는 정치인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정치가란 결국 정권 창출을 목표로 움직이는 사람입니다. 정당은 그런 사람들로 조직된 기구죠. 어떤 정치인이건 스스로 킹이되든 킹메이커가 되든 선택을 하게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킹 메이커로서의 구실을 하지 말 라는 것은 정치를 하지 말라는 것이나 다름 없는 말입니다.

-그 과정에서 가장 많은 비난을 듣기도 했는데.

=세싸움을 하다보니 이런저런 이야기는 당연합니다. 그러나 정치란 솔직 히 말해 ‘세’로 하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세’란 이념과 색깔, 인 간적인 친소관계를 바탕으로 형성되는 것이죠. 이를 부정적으로 생각한다 면 정치를 할 수 없죠. 질투가 아닌지….

-일부에선 킹 메이커라기보다 대세에 잘 편승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 습니다.

=원칙없이 줄 잘 선다는 이야기 같은데 정치에서 대세란 순리를 뜻합니다 . ‘킹’은 무작정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순리와 당위가 있기 때문에 가 능합니다. 순리가 무엇인지, 당위가 무엇인지를 파악해 이를 현실 정치에 접목시키는 게 정치인의 구실이죠. 그런 의미에서 나는 순리에 따랐을 뿐 입니다.

-이회창 대표가 왜 순리이고 당위라고 생각하는지.

=사실 92년 YS가 후보로 될 때와 비교하면 부족한 게 많았죠. 그러나 현 재 민정·민주계가 대립하는 구조에서 당내 인물로는 정권재창출이 불가 능한 것 아닌가요. 95년 11월 당 대표로 있을 때 15대 총선과 관련해 대 통령에게 이렇게 보고한 적이 있었습니다. ‘당내엔 정권창출할 인물이 없다. 문민정부 3년이 지나가고 있지만 주체세력이 없다. 민정·민주계로 나뉘어 각축할 뿐이다. 민정계인 나나 이한동 의원에게 정권을 물려줄 수 있습니까. 그렇다고 민주계를 후계로 지명한다면 당이 제대로 굴러가겠습 니까. 그러니 대선후보는 당외 인사로 해야하며 이번 총선에 그런 인물을 앞세워야 한다.’ 그게 우리 당 구조의 한계죠. 이홍구 전 대표 같은 분 도 지도자가 될 수 있었지만, 노동법 사태다 김현철사건이다 해서 낙마했 으니…. 이회창 대표가 반드시 당위이고 순리라기보다는 사실 당의 구조 가 그를 요구했다고 봐야할 겁니다.

-과거에 그렇게 만드신 분들에 대한 평가를 한다면.

=노 전 대통령이나 김 대통령에게 서운한 점이 많았습니다. 특히 YS에겐 그랬죠. 현 정부 들어서 나는 김 대통령의 의논 상대가 전혀 되지 못했습 니다. 아예 배제하거나 아니면 대표가 되어서도 10개월 동안 중요한 문제 에 대해서는 의논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차남 문제만 해도 몇 차례 입을 열었지만 그때마다 얼굴빛이 달라지며 ‘그건 내게 맡기라’고 하는데 난 들 어떻게 하겠습니까. 만들 때는 옳은 정치하겠다고 한 것인데, 의논 상 대도 못됐으니…. 내가 한번이라도 자리 달라고 한 적이나 있습니까. 몹 시 서운했습니다.

-그렇다해도 만든 입장에서 결과에 책임을 져야하는 것 아닌지.

=참, 한 야당 총재도 나더러 ‘두번씩이나 만들었다가 모두 실패했으니 이번엔 나를 도와주는 게 어떠냐’고 하던데, 기자는 그게 말이나 된다고 생각합니까. 몸담고 있는 당이 정권을 재창출하는 데 가장 유력하다고 생 각되는 사람을 후보로 만들었고 그 다음엔 국민들이 그를 대통령으로 선 택했습니다. 그런 식으로 책임을 져야한다면 국민들도 져야죠. 사실 기대 했던 것만큼 일을 못했던 것에 대해 나도 몹시 서운합니다. 그러나 나로 서는 할 수 있는 데까지 다 했습니다. 그렇다고 잘못하는 것을 바로잡겠 다고 정치적으로 저항할 수 있는 입장은 못되었습니다. 비켜 서 있으라니 지켜보고만 있었을 뿐입니다.

-만약 이회창 후보도 그렇게 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지금까지 권위주의가 이 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구석구석을 이 지 경으로 흐트러놓았습니다. 이번엔 반드시 이런 권위주의적 요소를 정비해 야 할 겁니다. 그래야 21세기를 헤쳐갈 수 있는 경쟁력을 확보합니다. 이 회창 대표는 원칙과 기준을 갖고 접근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굳이 곁 길로 나간다면 어쩔 수 없지만…, 현 시점에서 나는 최선의 선택을 했다 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본인이 직접 나서지 그러셨습니까.

=애초 밝혔듯이 당내 인사가 나설 경우 당이 깨질 것이고 또 영남에서 다 시 나와서는 안 된다는 내 나름의 원칙이 있는데 어떻게 나서겠습니까. 그러나 이번엔 나도 당에서 나름대로의 목소리를 낼 겁니다. 내가 생각하 는 정치가 구현되지 않을때는 저항도 하고 행동도 할 겁니다.

-이 후보의 당내 입지가 약하다는 말로도 들리는데.

=그런 건 아니고, 그러나 사실 우리가 지원했기에 이 후보가 설 수 있었 던 것 아닙니까. 이 후보도 당내 민정계 특히 허주(김 고문의 아호)계의 지원으로 당선됐음을 인정할 겁니다.

-이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당과 후보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하고자 하 는지.

=이 후보와는 격의없는 대화가 언제나 가능한 사이입니다. 지금까지도 많 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야기의 공통점은 이제 한 사람이 모든 것을 결정할 때는 지났습니다. 권한과 책임이 분산돼야 합니다. 정치는 당 중 심으로 이뤄지고, 비록 헌법개정이 안 되더라도 대통령과 당과 내각의 권 한이 분명해져야 한다는 것 등이었습니다. 그러자면 내각을 통할하도록 되어 있는 총리도 당에서 나와 책임정치를 구현할 수 있도록 하고 또 정 치의 중심으로서 당대표의 권한도 늘려야 할 겁니다. 특히 당내의 인사권 은 대표에게 주고, 당을 2년이나 몇년간 책임지고 이끌도록 해야할 겁니 다. 또 관료사회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각 부처의 차관에 대한 인사도 장관이 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런 3권분립에 의한 민주정치의 제도 화 문제에 대해 이 후보와는 일정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되고 나면 모두 마음이 달라지던데….

=이 후보는 법과 원칙에 따라 문제를 풀어갈 겁니다. 본인도 거듭해서 그 렇게 하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사실상 내각제 형태로 운영하자는 것 같은데, 이 후보는 내각제보다 대 통령 중임제를 선호하지 않습니까.

=사실 내각제 개헌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 아닙니까. 그건 당내에 반 대세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제1야당의 반대 때문입니다. 91년 내각제파동 이 났을 때 내가 개헌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YS가 반대해서가 아니라 제1야당 총재인 김대중씨가 반대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김대 중씨가 하겠다고 했으면 나도 YS를 끌고 갔을 겁니다. 지금도 내각제로 갔으면 하는 생각이지만 김대중씨가 애매한 입장이고 내각제와 대통령제 를 반반씩 섞은 형태를 생각하고 있으니 어려울 것 같습니다.

-내각제를 포기했다는 말씀인지.

=그렇지는 않습니다. 15대 대통령 임기가 끝나는 2003년 초에는 내각제 출범이 가능하지 않을까 전망합니다. 이때는 16대 국회의원들의 임기가 3 년이 지났기 때문에 내각제를 하더라도 1년만 단축되기 때문에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물론 개헌작업은 2002년부터 이뤄져야겠죠. 이 때 대통령 중임제로 할지 아니면 내각제로 할지 국민여론조사를 실시해서 그 결과에 따라 헌법을 개정하는 거죠.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그때가면 내각제를 바 라는 시대적 요구가 생길 것이라고 봅니다. 그렇다면 그때는 내각제 개헌 을 한번 열심히 추진할 생각입니다. 그때까지는 현행 헌법의 정신을 살려 분권적 책임정치를 해나가면 됩니다.

-영남후보론의 불씨가 꺼지지 않고 있습니다.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영남을 업지 않고서는 불가능할 겁니다. 제가 말하는 영남불가론은 영남 출신의 개인이 나선다면 지역감정 등 국가적으 로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인식이지 영남사람이 정권을 담당 해선 안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영남사람들이 이런 문제를 해결할 사람을 적극적으로 밀어 진정한 영남정권을 만들자는 겁니다.

-이번 대선에서도 어김없이 색깔론이 기승을 부릴 것 같습니다. 이른바 황장엽 파일은 어떻게 처리돼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그거 특별한 내용이 없는 것 아닙니까. 물론 내용이 있건 없건 공개는 돼야 합니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형태로 공개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정치는 통치가 아니라 상대가 있는 게임입니다. 서로 공정한 입장에서 이뤄져야 아름다운 결과를 낳게 됩니다.

-여당은 매번 선거 때마다 색깔 문제를 제기했고 95년 서울시장선거 때도 조순 후보의 고교시절 이념서클 가입문제를 들고 나왔는데.

=어디 해방 직후 공부 좀 한 사람치고 좌익서적 안 읽은 사람 있으면 한 번 나와보라고 하십시오. 그래선 안 됩니다. 공로명 전 외무장관을 6·25 때 경력 문제로 경질했는데 진짜 큰 실수 한 겁니다.

-한 월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정치적으로 정점에 서면 깨끗이 물러나겠다 ’고 했는데 정점이란 무엇이고 언제쯤이나 가능할지.

=정점이란 자리가 아닙니다. 제가 생각하는 민주정치가 제도적으로 완결 될 때를 말합니다. 2002년에 내각제를 추진하고 나면 그때가 되지 않을까 …. 그래서 총리라도 되면 좋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