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1997년08월07일 제 169호

불타는 북녘, 두배의 고통

(사진/압록강변에서 바라본 양강도 혜산의 다락밭. 대대적 산림파괴는 강수량의 변화에 따라 홍수나 가뭄 피해가 반복되는 악순환 구조를 만들었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북한주민들 사이에 요즘 이런 한탄이 절로 나올 법하다.

지난 95, 96년 이태 동안 계속된 ‘큰물’(홍수)피해로 극심한 굶주림에 시달려온 북한주민들이 올해는 정반대로 6월 이후 두달째 이어지는 ‘왕 가물’(큰가뭄)과 ‘이상고온 현상’에 허덕이고 있다. 더욱이 그동안 홍 수로 유실된 농경지와 수리시설에 대한 복구가 완전히 끝나지 않은 상황 에서 닥친 이번 가뭄은 가뜩이나 곤경에 처한 북한을 더 큰 고통의 나락 으로 몰아넣고 있다.

3∼5도 이상 높은 고온현상까지

최근 통일원 등 관계당국의 분석과 <조선중앙방송> 등 북한 보도기관 에 따르면 현재 북한지역의 가뭄피해는 그야말로 심각하다. 평안남·북도 와 함경남·북도, 강원도, 황해북도 등 황해남도를 제외한 전 지역에 지 난 6월 이후 60여일째 비가 내리지 않아 주요 저수지와 강이 바닥을 드러 냈고 논과 밭의 농작물도 바싹바싹 타들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북한 전역의 강우량은 올 들어 평년보다 훨씬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 기상청에 따르면 북한에서는 지난 5월에는 평년보다 60mm 정도 많은 평 균 1백35mm의 비가 내렸지만, 6월 들어 평년보다 70mm가 적은 39.8mm를 기록했고, 7월 중순까지도 50mm가 적은 47mm에 그쳤다는 것이다. 통일원 정보분석실이 지난 6월 초순부터 7월 중순까지 지역별 평균강수량을 조사 한 결과에서도 지난 6월 황해북도 사리원과 신계군, 개성직할시 등 극히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전 지역에 걸쳐 평균치를 훨씬 밑도는 양의 비가 내린 것으로 나타났다. 7월1일부터 15일까지의 강수량도 평안북도 자강도 황해남도 지역을 제외하고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훨씬 적은 것으로 분 석됐다.

기상청은 이번 가뭄의 원인이 “매년 장마 말기에는 고온다습한 북태평양 고기압의 가장자리에 들어 비가 많았던 북한 전역이 올해는 이 고기압 한 가운데 놓이는 이상현상을 보이면서 전선대가 안정돼 비가 적게 오고 있 다”고 분석했다. 더욱이 “이 고기압의 영향으로 평년보다 3∼5도 이상 높은 고온현상까지 겹쳐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북한 전역은 불볕 더위와 가뭄으로 농작물이 말라죽고 강과 호 수 저수지들이 바닥을 드러내는 등 피해가 잇따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다. 아직 정확한 피해규모가 집계되지는 않았지만 <조선중앙방송> 등 북한 매체의 보도를 통해 그 심각성을 엿볼 수 있다. 이번 가뭄으로 인한 피해를 이례적으로 상세하게 전하고 있는 <조선중앙방송>은 지난 7월 25일 “6월에 이어 7월에도 함경남·북도 등 대부분 지방에서 비가 내리 지 않고 갠 날씨가 계속돼 많은 면적의 논판이 갈라터지고 강냉이들이 마 르는 등 농작물 피해가 심해지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지난 6월2일 이후 비가 내리지 않고 일평균 3∼5도 이상 높은 고온현상이 지속되고 있 는 함경남도에서는 1백여개 저수지의 밑바닥이 드러나고 성천강 금야강 덕지강 등 강과 하천의 물마저 거의 말랐다”고 밝혔다.

천재지변… 그러나 인재였다

통일원 등 관계당국도 그 심각성을 인정하고 있다. 황해남도를 제외한 북 한 농촌 전역이 가뭄 피해를 입고 있으며 이미 수십만 정보의 농작물이 타들어갔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 것이다. 통일원 정보분석실은 “함경남 북도 양강도 평안남도 강원도 지역의 농작물 피해가 우려된다”고 전망했 다. 농업전문가들은 이번 가뭄이 연이은 홍수로 유실된 농경지 등에 대한 피해복구가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닥친 것이라 가뭄이 계속될 경우 식량난은 심각한 수준으로 번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북한최대의 곡창 지대인 황해북도와 평안남·북도의 가뭄은 논농사에 타격을 가해 쌀 생산 량이 감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함경남북도 지역의 가뭄은 북한의 주 식인 옥수수 생산량을 현저하게 떨어뜨릴 것이라는 지적이다.

북한은 현재 가뭄을 이겨내기 위해 나름의 안간힘을 쓰고 있다. ‘왕가물 을 이겨나가자’라는 구호 아래 인력과 장비를 총동원한 전 군중적 해갈 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 관계당국에 따르면 양수기와 강우기(물뿌 리는 기계)를 동원하는 것은 물론, 일부지역에서는 소달구지까지 이용해 물을 퍼나르는 지경이라는 것이다.

평안남도 개천시에서는 도당위원회의 지도 아래 매일 평균 6백50여명의 인원이 동원돼 하루 평균 40정보의 밭에 물을 주고 있고, 1백56대의 소달 구지를 이용해 강냉이 밭에 물을 주고 있다. 순천시에는 각 협동농장별로 가뭄피해를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농민뿐 아니라 아니라 노동자 사 무원 가두인민반원까지 모두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이 현재 겪는 가뭄은 분명 천재지변에 해당한다. 하지만 가뭄피해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데는 북한농업이 갖는 구조적 원인도 한몫하고 있 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농촌경제연구원 김운근 연구원은 “아직 분석이 끝나지 않아 정확한 평가가 여렵다”면서도 “자연재해라고는 하 지만 무분별한 산림황폐화 등 자연파괴가 가뭄피해를 더욱 확대시키고 있 다”고 진단한다.

연료사정이 나쁜 북한은 그동안 나무를 연료로 사용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산림을 파괴해왔고 이런 파괴는 초목이 물을 흡수했다 내뿜는 기능을 정 지시켰다는 것이다. 여기에 악화된 식량사정을 이겨내기 위해 그동안 ‘ 다락밭’ ‘다락논’ 만들기 운동을 펼치면서 그나마 남은 구릉지의 초목 마저 모두 파괴했다. 북한이 연간 필요로 하는 곡물량이 6백70만∼7백만t 인데 연간 생산되는 양은 4백만t 남짓으로 2백만t 이상의 곡물이 부족해 한뼘의 농지라도 넓혀야 하는 절박함이 있기는 했지만, 이런 대대적 산림 파괴는 강수량의 변화에 따라 홍수나 가뭄피해가 반복되는 악순환 구조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8월 중순까지만이라도 내려준다면…

더욱이 산악의 구릉지를 깎아 테라스 형식으로 만든 이들 다락밭과 논은 쉽게 물이 마를 뿐 아니라 요즘 같은 가뭄이 닥칠 경우 물을 공급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다. 부족한 관개시설 또한 가뭄피해를 확대하는 주요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북한은 3차 7개년 계획기간(87∼93년)동안 모두 1만4천km의 수로와 양수장 1만2천여개, 저수지 1백97개를 건설해 수리화 는 이미 완성단계에 이르렀다고 그동안 주장해왔다. 그런데도 북한은 농 사철만 되면 “흐르는 물은 모조리 잡자”며 물부족 해결을 호소해 수리 시설의 부족을 드러냈다. 그나마 이들 시설들이 2년 물난리로 상당히 파 괴된 상태라 이번 가뭄은 어느 때보다 북한당국을 괴롭히고 있다. 홍수피 해 방지에만 주력해온 북한당국이 가뭄에 대한 대비를 소홀히 했다는 것 도 피해를 확대시키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물론 현재까지의 피해를 가지고 북한의 올 농사가 완전히 흉작으로 이어 지리라고 속단하기는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평가다. 농촌경제 연구원 김운근 연구원은 “북한의 경우 농작물의 생육시기가 늦어 8월 중 순까지만 비가 내려준다면 얼마든지 회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기상청 도 “북한은 대체로 7월 말에서 8월 초에 비가 많아 해갈 가능성은 충분 하다”고 전망한다.

하지만 만약 8월까지도 비가 충분히 내리지 않는다면 북한주민들은 또한 번의 큰 재앙에 맞닥뜨릴 것이다. 북한주민들에게 하늘은 유달리 무심하 다.

신승근 기자 한겨레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