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1997년08월07일 제 169호

후지모리, 스타의 추락

(사진/"인질사건 진압 때의 인기는 어디가고..." 후지모리 정권의 권위주의적 통치에 대한 페루 국민들의 불만이 폭발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 4월 일본대사관 인질사건 무력진압으로 ‘상한가’의 인기를 누리던 알베르토 후지모리 페루 대통령이 최근 ‘출생지 논쟁’을 겪으면서 하야 위기에 몰렸다. 지난 7월24일 주간지 <카레타스>의 “후지모리의 출 생지는 일본”이라는 보도가 후지모리의 언론탄압 및 ‘3선 도전’ 시도 와 맞물리면서 큰 파장을 몰고온 것이다. 페루 헌법 제110조는 대통령 출 마자격을 “35세 이상의 페루에서 출생한 자”로 못박고 있다.

“후지모리는 일본태생” 서류 제시

<카레타스>는 7월24일 “후지모리는 일본태생”이라면서 그 증거로 후지모리의 어머니 마쓰에 후지모리가 지난 34년 일본에서 페루로 이주해 올 당시의 입국 서류를 제시했다. 이 서류에는 마쓰에가 아이 두명을 데 리고 왔다고 기록돼 있다. <카레타스>는 “따라서 이는 다섯자녀 중 둘째인 후지모리가 그의 누나와 함께 일본에서 태어났다는 명확한 증거가 된다”고 주장했다.

그동안 후지모리가 1938년 7월28일 페루의 수도 리마에서 태어났다고 주 장해온 정부쪽은 이를 즉시 부인하고 나섰다. 7월25일 후지모리쪽 변호사 는 “후지모리 어머니가 1934년 두 자녀와 함께 페루에 입국했다는 주장 은 정확하지 않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진술은 페루 이민 6년 뒤에 이뤄진 것으로 정확한 기억에 의존한 것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야당쪽 공세는 갈수록 거세진다. 야당의원인 세사르 수르마에타는 “이는 국정조사위원회를 구성할 만큼 중대한 사안”이라며 “이게 사실 이라면 후지모리는 사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야당 지도자 인 루드레스 플로레스도 “필요하다면 일본에 가 진실을 밝히겠다”고 적 극적인 조사의지를 드러냈다. 야당쪽 변호사인 호세 바르바는 ‘위협’의 수위를 한층 더 높였다. 그는 “대통령의 출생지 의혹은 군 내부의 분열 을 가져와 쿠데타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경고했다.

페루 야당들이 대통령의 출생지 문제에 이렇게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그 동안 억눌렸던 후지모리의 권위주의적 통치에 대한 반발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폭발했기 때문이다. 우선 후지모리는 지난 7월13일 ‘군대의 고문 ·도청·부패’ 기사를 물증과 함께 보도한 <제2텔레비전> 사주의 시 민권을 박탈했다. <제2텔레비전> 주식의 54%를 소유한 유대인 바럭 이브체르가 지난 84년 시민권을 얻으면서 이스라엘 국적을 포기하지 않았 다는 게 그 이유다. 현재 미국에 머물고 있는 이브체르는 “당시 확실히 이스라엘 국적을 포기했다”면서 “이번 조처는 비판적 언론에 재갈을 물 리려는 술책”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뿐 아니라 많은 언론은 올 들어 잇따라 벌어진 ‘언론인 테러’의 배후에 정보기관이 도사리고 있다고 주 장하는 등 후지모리의 ‘언론자유 압살’ 시도를 고발해왔다.

페루의 반정부단체들은 이런 언론탄압이 2000년 ‘3선출마’를 위한 사전 정지작업의 하나로 보고 있다. 지난 90년 ‘경제회복’을 내세워 대통령 에 당선된 후지모리는 92년 의회를 해산하고 총선을 치른 뒤 ‘대통령 중 임허용’ 개헌을 실시했다. 후지모리는 이어 지난 95년 재선에 성공했지 만, 첫 당선은 개헌 이전에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2000년 출마가 ‘두 번째 도전’이라고 주장해왔다. 후지모리는 지난 5월29일 ‘2000년 출마 ’가 불법이라고 주장한 헌법재판소 판사 3명을 해임했고, 그 다음날 대 법원장이 이에 항의해 사임하는 사태를 겪기도 했다.

따라서 페루의 정치평론가들은 이런 상황에서 터져나온 ‘출생지 논쟁’ 은 후지모리에게 커다란 대가를 요구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분석가 들은 그 분기점을 ‘미주언론협회’(IAPA)가 ‘페루 언론상황 보고서’를 내놓을 7월 말로 보고 있다. 남북미의 언론인 1천3백명이 가입하고 있는 미주언론협회는 7월24일 “페루의 언론자유가 위기에 처해 있다”며 < 제2텔레비전> 사주 시민권 박탈문제와 언론인테러사건을 조사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70%대 인기, 20%대까지 떨어져

그러나 후지모리가 넘어야 할 더 큰 산은 민심이반이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 이미 지난 4월 70%까지 치솟았던 후지모리의 인기가 현재 20%대까지 떨어진 것으로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7월25일 여론조사전문기관 인 ‘데이텀인터내셔널’은 ‘출생지논쟁’과 관련해 국민의 85.2%가 “ 후지모리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믿는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2000 년 대선 출마를 위해 ‘70년대 통치방식’을 사용한 후지모리에게 이들 민중이 어떤 행동으로 답할지 주목된다.

김보근 기자 한겨레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