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탐구/김윤환	1997년08월07일 제 169호

나도 한때 시인이었소

“광장에 비가 내린다.
주검을 의식하고 죽어버린 듯한 목숨이
그만치 사연을 두고 떠난 그날
주먹밥을 건네시는 어머니의 손등에서
세월의 아픔들이 실핏줄되어
깊은 강물속으로 자맥질하듯
애절한 목숨의 비가 내린다.(이하 생략)”

김윤환 고문이 20대인 경북대 영문학과 시절 문예지인 <신천지>와 <현대문학> 등에 발표한 10여편의 시 가운데 <광장에서>라는 제목 의 시 일부이다. 그는 작고한 전봉건 시인 등과 함께 <전후파>라는 시 동인활동을 하기도 했던, 문단에 정식으로 등단한 시인이었다. 60년대 초에는 시인 허만하씨와 시 전문지인 <시와 비평>을 계간지로 발행하 기도 했다. 당시 교분을 맺었던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과 서정주 시인과 는 지금도 교류를 하고 있다. 시인 조병화씨는 당시 신문월평에서 그의 시를 가리켜 ‘낭만풍의 지적(知的)인 시’라고 평했다. 그는 “요즘도 가끔 시상이 떠올라 메모를 하고 싶은 때가 있으나 마음뿐”이라고 말한 다.

김 고문은 1932년 경북 선산에서 지역 유지였던 선산약주 양조장집 8남매 가운데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선친 김동석씨는 일본 동경에 유학한 뒤 국내에서 아나키스트 운동을 했던 사상가이자, 해방후 고향 선산에 오 상학원을 세운 교육자였다. 그의 부친은 아나키스트 운동으로 일제시대 옥고를 치렀으며, 4대 국회 때 선산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됐다.

김 고문은 아버지와 형님 김규환 박사(작고·서울대 교수)의 영향을 받아 경북중고 시절 사회과학 서적을 즐겨읽던 의식화된 열혈 청년이기도 했다 . 해방이후 좌우익 대립이 심하던 때는 경북중학의 ‘운동권 학생’쪽에 속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그는 “중학 6학년 때 발발한 6·25 당 시 학도병으로 참전하면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면서 “사람의 운명 이란 참으로 묘한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