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만세	1997년08월07일 제 169호

화장실을 안방 삼았나?

소변을 유난히 자주 보는 아이들이 있다. 아이들은 원래 소변을 자주 본 다는 걸 감안하더라도 어떤 아이들은 심하다. 하지만 소변을 찔끔찔끔 자 주 보는 아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부모는 그리 많지 않다. 사실 아이 들은 별다른 병적인 이유가 없어도 심리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소변을 자주 보기도 한다. 유치원에 처음 간 아이가 갑자기 소변을 자주 보기도 하는데, 이런 아이는 텔레비전을 보거나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 때는 소변 보는 것도 잊는다. 또 부모의 관심을 끌기 위해 소변을 자주 보는 아이도 있다. “엄마, 나 쉬 마려워”란 아이의 말을 듣고 관심을 갖지 않을 부 모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소변을 자주 보는 아이들이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요로’라 불리는 소변길에 염증이 생기는 요로감염에 걸리면 소변을 자주 보게 되 는데, 이것은 방심할 수 없다. 조기에 발견해서 제대로 치료하지 않으면 콩팥에 심각한 후유증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아과 의사는 요로감염을 아주 심각하게 생각한다.

요로감염에 걸리면 아이는 소변을 자주 보게 되고 소변을 볼 때 아프기도 한다. 감염 부위에 따라 열이 나기도 한다. 어떤 경우는 요로감염에 걸려 도 특별한 증상이 없기 때문에, 요즘은 멀쩡한 아이들까지 정기적으로 소 변검사를 하는 사례가 많다. 아이가 요로감염이 있는지 없는지는 검사를 해야만 알 수 있다. 따라서 아이가 소변을 자주 보면 소아과를 찾는 게 좋다.

아이에게 요로감염이 있을 경우 증상을 없애는 것은 아주 간단하다. 항생 제를 며칠만 먹여도 하루에 수십번씩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던 아이가 금세 좋아진다. 그러나 증상이 좋아졌다고 병이 다 나은 게 아니니 너무 좋아 하지 마시라. 균이 다 죽을 때까지는 아직도 한참을 더 치료해야 하니 의 사가 치료를 그만해도 좋다고 할 때까지는 치료를 중단해서는 안 된다. 당장의 병 이상으로 후유증을 예방하는 게 중요한 병이 있는데, 요로감염 이 대표적인 경우다. 아이들의 경우 요로감염의 치료가 끝났다고 모든 치 료가 끝나는 게 아니다. 요로감염이 생긴 아이들 중에는 요로에 기형이 생겨 있거나, 방광요관 역류라는 병이 동반하는 경우가 있다. 원래 소변 은 신장에서 만들어져 요관을 통해 방광으로 보내져 저장됐다 일정한 양 이 모이면 요로를 따라 몸 밖으로 배출된다. 이런 과정은 반드시 일방통 행이어야 한다. 그러나 방광요관 역류가 있는 아이들은 소변을 보기 위해 힘을 줄 때 소변이 밖으로만 나오는 게 아니고, 신장쪽으로 거꾸로 흐르 기도 한다. 이를 방치하면 요로감염이 재발하기도 하고 신장에 심각한 손 상을 줄 수 있다.

요로감염이 있는 아이들은 필요한 경우 초음파나 방사선을 이용한 검사를 통해 반드시 이상 유무를 확인해야 한다. 힘들여 검사를 한 뒤에 정상이 라는 진단이 나오면 좋아하기보다 괜히 검사를 했다고 불평하는 부모가 간혹 있다. 검사상 정상으로 나오는 아이들이 훨씬 많지만 분명 이상이 있는 아이들이 있다. 그런 아이들은 나중에 엄청난 후유증이 생길 수 있 기 때문에 헛걸음을 하더라도 필요한 아이들은 모두 검사를 해야 한다. 아주 심한 경우는 수술이 필요할 때도 있다.

아직도 소변을 자주 보는 아이에게는 뭐가 좋다, 뭐를 먹으면 당장에 좋 아진다는 비법을 말하는 부모가 있다. 큰일 날 소리다. 아이들의 건강만 큼은 부실공사를 해서는 안 된다. 아무리 명의라도 요로감염은 검사를 하 지 않고는 확인할 수 없고, 요로 역류가 있는지는 더더욱 알 수 없다. 소 변을 자주 보는 아이들은 의사의 진료를 받아 요로감염이 있는지 확인하 고, 요로감염이 있으면 치료를 받고, 필요한 경우 반드시 요로감염의 원 인과 동반되는 이상이 있는가를 확인해야 한다.

하정훈/소아과 전문의 한겨레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