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독자/교보문고 출판과 김현정씨	1997년08월07일 제 169호

"`한겨레21'로 사랑싸움도 해요"

열심히들 읽고 있다.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의 시사주간지 코너. 수십명이 저마다 선 채로 한권 씩 뽑아들고 있다. 제목만 대충 보는 게 아니라 기사도 꼼꼼히 읽는 듯하 다.

이번에는 판매현장에서 ‘이주의 독자’를 만나기로 했다. 처음으로 < 한겨레21>을 사는 독자를 주인공으로.

그러나 30여분을 기다려야 했다. 진지한 눈길로 수십분간 탐독하던 이들 은 대부분 <한겨레21>을 버리고(?) 갔다. 다른 시사주간지도 마찬가 지였다. 그나마 <한겨레21>이 처음으로 계산대 위에 올랐다.

김현정(27)씨. 그런데 그는 교보문고 직원이었다. 교보문고 출판과 디자 이너인 그는 매장에 와 책을 집어들자마자 계산대로 향했다. “저희 회 사에서 <한겨레21>을 산 건 오늘이 처음인데…. 항상 지하철 가판대 였거든요. 사실 여기선 2천2백원에 살 수 있는 혜택이 있지요.”

그는 거의 매주 <한겨레21>을 구입하는 편이다. 회사 언니가 먼저 샀 다거나 할 땐 빌려보는 걸로 대신하기도 한다. 다른 시사주간지는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다. 언제부터인가 자연스럽게 <한겨레21>에 중독됐단 다. “시사SF를 즐겨보지요. 썰렁할 때도 가끔 있지만 뭔가 생각하게 해 주잖아요.”

대학에선 정치외교학을 전공했지만, 그는 딴길을 걷고 있다. 미대입시 실 패의 미련을 대학 재학중에도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3, 4학년 때 맘을 단단히 먹고 디자인 학원을 다녔다고 한다. “가장 힘든 게 표지디자인이 에요. 저는 현란하기보다는 깔끔한 걸 좋아하는 스타일이죠. 심심하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그는 요즘 신혼이다. 6년 동안 사귀었던 대학 동기와 두달 전 의정부에 신접살림을 차렸다. 그러나 깨소금만 있어야 할 생활에 부부싸움이 가끔 벌어지니, 바로 <한겨레21> 탓이다. “함께 읽고 자주 이야기를 하거 든요. 그런데 얼마 전 ‘황장엽 파일’에 관해 의견을 나누다 막 싸웠어 요. 그이가 굉장히 열받았지요. 등까지 돌리고 잤으니까요.” 남편이 좀 보수적인 편이란다. 직업은 군인. 기갑장교 대위다.

그러나 남편도 어쩔 수 없다. 시사주간지를 사올 땐 꼭 <한겨레21>이 란다. “또 무슨 꼬투리를 잡으려고…” 쏘아붙이면서도 밉지가 않다.

김현정씨는 아직 2세계획이 없다. 남편이 99년 초 제대하면 함께 미국으 로 2년쯤 유학을 갈 생각이다. “2002년 월드컵 개막과 함께 첫 아이가 나올 것 같다”는 그의 얼굴은 일 욕심으로 똘똘 뭉쳐 있다.

고경태 기자 한겨레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