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정성	1997년08월07일 제 169호

현금을 잃고 감동 얻었다

신상아(30)씨는 얼마전 서울 강남역 지하상가에서 지갑을 잃어버리는 낭 패를 당했다. 월급을 받은 지 얼마 안 돼 주머니 사정이 넉넉한데다 퇴근 길에 기분전환도 할 겸 쇼핑을 한 것이 화근이었다. 그러나 그가 지갑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안 것은 집에 돌아와 잠자리에 막 들려고 하던 밤 1 1시께였다.

갑자기 대학선배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선배는 다짜고짜 지갑을 잃어버 리지 않았느냐고 묻는 거였다. 처음에는 “밤에 전화걸어 왜 실없이 농담 하냐”며 오히려 짜증을 냈다. 하지만 선배는 분명히 지갑을 잃어버렸을 거라며 가방을 한번 뒤져보라고 했다. “불길한 생각이 스쳤습니다. 아니 나 다를까. 가방 속에 분명히 있어야 할 지갑이 보이지 않더군요.” 그 선배는 어떤 아주머니한테 호출이 왔는데 곧바로 연락을 해보라며 전화번 호를 알려줬다.

급한 마음에 늦은 시간임에도 당장 전화를 했다. 상대방은 양품점을 하는 아주머니였다. 옆집에 사는 할머니가 지갑을 주웠는데 주인을 찾아주라고 부탁했다는 것이다. 다음날 아침 물어물어 찾아간 곳은 관악구 봉천동 달 동네에 있는 허름한 양품점이었다. 양품점 아주머니가 건네주는 지갑에는 현금 10만원과 신용카드는 보이지 않고 주민등록증 하나만 달랑 남아 있 었다.

마음은 아렸지만 어쨌든 할머니를 만나뵙고 작은 보답이라도 하고 싶었다 . 하지만 할머니는 집에 계시지 않았다. “단칸방에서 가족들 없이 혼자 세를 살고 있는데 밥벌이를 위해 매일 강남역에서 청소를 한다는 거예요. 그런데 강남역 여자화장실에는 안에 있는 현금만 가져가고 버려진 지갑들 이 수두룩하데요. 할머니는 매일 주인없는 지갑을 집으로 갖고와 일일이 찾아준다고 합니다. 노인이라 호출을 할줄 모르니까 친자식 같은 양품점 아주머니한테 연락을 맡기고요.”

지갑을 잃어버려 속은 상했지만 양품점 아주머니의 말을 듣고 나니 막힌 속이 다소 뚫리는 것 같았다. 할머니의 한결 같은 정성이 따뜻하게 느껴 졌다. 할머니가 좋아하신다는 담배 한보루를 사서 아주머니에게 꼭 전해 달라고 부탁했다. 가게문을 나서는데 아주머니의 푸념이 귀에 따갑게 다 가왔다. “그래도 아가씨는 사람이 됐구먼. 할머니가 그렇게 애써서 찾아 주는데도 고맙다는 인사 한마디 없이 당연하다는 듯 지갑을 찾아가는 사 람이 더 많아. 그래서 뭘 그렇게까지 하냐고 할머니한테 짜증을 부리곤 하지.”

이용인 기자 한겨레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