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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 |
1997년07월10일 제 16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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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했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쓸모 있게 만들지 않으면 가치가 없다는 말이다. 그대로 모아두기만 해도 역사가 된다는 <한겨레21>, 하지만 그는 만족할 수 없었다.
책장을 화려하게 수놓은 역사를 다시 쓰게로 한 것이다. 창간호부터 차곡차곡 모은 1백60여권의 <한겨레21>에 칼을 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손때묻은 역사가 만들어졌다.
20여년을 유아교육자로 지낸 송명진(45)씨. 얼마 전 그는 어린이를 위한 `꿈터'를 직접 세우기 위해 몇해째 이어오던 위탁원장 자리에서 벗어났다. 유치원 개원 준비를 하면서도 시간을 쪼개 쓸 수밖에 없었다. 어린이들이 국악을 가까이 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장구를 배운다. 거기에다 독서문화운동 단체의 글쓰기 강좌를 들어야 하고, 유치원 원장들로 이뤄진 합창단 활동도 소홀히 할 수 없다.
주말에는 지난해부터 떨어져 지내는 남편이 부산서 올라온다. 이래저래 시간을 빼앗기다보니 막상 무슨 일에 덤벼드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동안 <한겨레21>의 새로운 역사는 미뤄질 수밖에 없었어요. 그러던 끝에 드디어 기회가 찾아 왔어요. 현충일 연휴에 남편이 올라오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3일동안 <한겨레21>과 일대격돌을 벌이기로 했죠."
곧바로 그는 문방구로 달려갔다. 거금을 들여 기사를 담을 1백장짜리 스크랩파일 10권과 화보를 넣을 두배 크기의 파일 3권을 따로 준비했다. 책을 뜯고 분리하는 데 꼬박 이틀을 보냈다. 나머지 하루는 기사를 주제별로 구분해 파일에 넣었다. 그래서 모두 끝낼 수는 없었다. 파일별로 제목을 붙이고 기사 목록을 정리하기까지는 며칠을 더 투자해야 했다. 그런데 164호부터 기사의 표제가 한글로 바뀌어 다시 만들어야 한다.
팔과 손목, 어깨가 성할리 없었다. 목이 뻣뻣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한겨레21>의 역사를 새로 만들었다는 보람은 그 모든 고통을 씻고도 남았다. "일주일여의 작업 동안 두딸들의 격려와 남편의 전화가 커다란 힘이 되었어요.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것은 버릴 게 없는 <한겨레21> 자체였습니다." 버린것은 광고면과 시의성에 맞춘 기사들이었을 뿐이다. <한겨레21>이 꽂혀 있던 자리를 13권의 파일이 당당하게 줄 서 있다. 유치원에서 가르치던 아이들보다 더 사랑스런 `늦둥이'같은 느낌마저 든다고 한다. "<한겨레21>이 CD-ROM에 담겨 있어 누구든 편하게 기사를 찾아볼 수 있다지만 우리집 책장 안의 `가보'에는 비길 수 없죠. 집에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가장 먼저 자랑하고 싶어요. 이젠 책을 본 다음에 매주 스크랩할 생각입니다. 주변에 자료가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기꺼이 보여드릴 것이구요." 스크랩을 하며 한 가지 아쉬운 것도 있었다. 교육문제에 대한 관심이 남달라 따로 스크랩하려 했지만 분량이 너무 작았던 것이다. 그는 또 사회구조적인 사안에 디한 문제제기와 함께 국민들의 의식을 바꿀 수 있는 의제를 설정해 꾸준히 다루었으면 한다는 바람도 빼놓지 않았다.
김수병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7월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