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
1997년07월10일 제 165호 한겨레21

김종필, ’길은 외길’

김종필 자민련 총재는 지난 6월24일 전당대회에서 자민련 대선후보로 선출됐다. 그러나 대중적 관심은 그를 비껴갔다. 세인의 눈길은 온통 신한국당의 후보경선에 쏠려 있었고 ’김종필 후보’ 에 대해서는 오히려 고개만 갸웃할 뿐이었다.

하지만 정치권의 관심은 다르다. 각 정파 대선캠프의 핵심 참모진은 김 총재의 앞으로 선택에 동원 가능한 안테나를 모두 동원하고 있다. 그것은 김 총재가 비록 대선 국면에서 상수가 되지는 못할지라도 그의 선택에 따라 선거판을 근본적으로 뒤바꿀 변수로서의 폭 발력을 갖고 있다고 보 는 것이다.


“신한국 전당대회 뒤 구상 드러날 것”

김 총재 자신도 ‘자민련호’의 선장으로서 그리고 37년 정치생활에 종지 부를 찍는 차원의 마지 막 선택을 해야 할 상황에 몰려 있다. 사실 김 총재에게는 생각할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국민회 의와 자민련의 전당대회가 이미 모두 끝난 데다 신한국당 전당대회가 7월 21일 끝나면 바로 정국 은 12월 대선국면 빨려들게 돼 있다. 단독출마인가 아니면 후보단일화인 가 혹은 제3후보 지원인 가. 김 총재는 무언가 선택해야 한다.

JP(김종필)의 최종 목적은 물론 집권이다. 내각제를 통한 연합집권을 추 구한다는 점만이 다른 주 자와 다를 뿐이다. 그는 평소 “정계를 은퇴하기 전에 내각제를 이뤄놓 는 것이 마지막 소원”이 라며 오매불망 내각제를 외쳐왔다. 하지만 내각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우선 12월 대선에서 집권 해야 한다. 그의 고민은 모두 여기에서 출발한다.

집권을 위해서는 우회할 수밖에 없다. 우회 방법은 다른 정치적 세력과 의 연대를 통해서만 가능 하다. 그가 현재 그릴 수 있는 연대의 ‘밑그림’은 보수대연합이나 야권 단일후보를 통한 공동집 권 가운데서 하나다.

JP는 겉보기에 유유자적하는 듯하지만 내심 이런 여러 가지 가능성을 놓 고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다고 한다. 자민련의 한 고위당직자는 “김 총재가 전당대회 이후 다 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자 신의 구상을 정리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신한국당 전당대회가 끝나면 그 구상의 밑그 림이 서서히 드러날 것”이라고 말했다.

JP가 일상적인 당무에서 손을 뗀 것은 최종 결심을 위한 주변정리작업의 하나다. 그는 최근 당 무를 김복동 수석 부총재에게 모두 위임했다. 연말 대선을 위한 준비에 만 전념하기 위한 조처이 다. 김 총재는 지난 6월27일 당무회의에서 “대선후보가 됐기 때문에 후 보로서의 준비와 일정에 전념해야 한다”며 “오늘부터 당무 일체를 김 수석 부총재가 도맡아서 통솔을 해주기 바란다” 고 말했다.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가 조세형 부총재를 총재권한대행으로 임명한 것과 같은 맥락이 다.

후속 당직개편과 당내 대선 수임기구인 ‘대선전략기획위원회’ 발족도 전열을 갖추기 위한 것 이다. 대선전략기획위원회는 일단 야권후보단일화와 보수대연합이라는 두 상충하는 집권프로그램 을 추진할 계획이다.


한쪽만 선택하기엔 위험부담이 크다

현 시점에서 어느 한쪽을 선택하기에는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 자민련으로선 김 총재를 중심으로 한 보수세력의 대연합이야말로 집권하는데 가장 바 람직한 방안일 수 있다. 그러나 연합의 대상들이 여권에서 저마다 후보가 되겠다고 하는 상황이니 그 현실성을 크게 기대 하지는 않는 눈치다.

그렇다고 일찌감치 그 가능성을 포기할 수는 없는 일. 때문에 일단 보수 대연합에 당력을 집중하 고 있다. 김 총재도 지난 6월24일 전당대회에서 대선후보 수락연설을 통 해 “내각제 선호세력과 안정희구세력, 미래지향세력을 결집하고 단합하는데 제가 중심에 서겠다 ”며 보수대연합을 우선 순위에 놓았다. 자민련은 이미 오래 전부터 당내 중진인사들에게 보수성 향의 여당 중진의원들을 개별적으로 만나 대연합의 가능성을 타진하도록 지침을 내려놓고 있다. 현재 8명인 부총재단을 15명으로 확대키로 한 것도 여권의 거물급 인사를 포섭하기 위한 대비책 이다. 김 총재가 그동안 신한국당 이수성 고문과 이한동 고문, 김종호 의원 등과 만난 것도 이와 무관치않다.

자민련은 여권의 경선과정에서 나타날 돌발변수에 크게 기대하는 눈치다 . 예비후보간에 화해하 기 어려울 정도의 충돌이 빚어지다 보면 전당대회 전후로 예비후보 중 일 부 인사가 탈당할 수도 있다. 실제로 이수성 고문은 이회창씨가 후보로 선출되면 ’마음이 승복 하지 않을 것’이라고 이 미 탈당 가능성을 내비췄다. 신한국당 탈당인사와 박태준 전 포철회장, 노재봉 전 총리 등이 자민 련을 중심으로 묶인다면 물론 강력한 보수대연합이 가능하다. JP로서는 대단히 행복한 상황이다.

그러나 보수대연합의 가능성이 크지 않은만큼 안될 경우에 대한 대책도 있어야 한다. 사실 보수 대연합은 대선을 앞두고 흔들리기 쉬운 당의 전열을 유지하고 또 앞으로 있을 후보단일화 협상 파트너인 국민회의쪽을 최대한 압박할 수 있는 카드로서의 효용성이 커보 인다. 그러나 자민련 내 부의 의견은 이 부분에서 크게 엇갈린다. 설령 대선에서 패배가 확실하더 라도 독자출마해야 한다 는 주장과 야권후보단일화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

독자출마론은 DJ(김대중)로 단일화되는 경우 승산이 희박한 데다 지역정 서상 DJ를 수용하기 어 렵다는 점에 근거하고 있다. 충청권 중에서 당직에 소외된 세력들과 TK( 대구·경북) 중 당직을 맡고 있는 인사들이 독자출마론의 주축이다. 수평적 정권교체보다는 당 의 존립을 최우선 판단기 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대구출신의 초선의원은 “서로 이념이나 지지기반이 다른데 야권 후보단일화가 되겠느냐”며 “더이상 국민을 속이지 말고 자민련은 독자 적으로 가야 할 것”이라 고 말했다.

이들중 일부는 여당과의 제휴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대 통령 임기중 권력구조개 편 가능성을 거론한 이수성 고문이 후보로 선출됐을 경우를 가정한 것이 다. 그러나 이 고문이 후 보가 된다 하더라도 여권의 생리상 내각제를 전제로 자민련과의 연대는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부정적인 견해가 지배적이다.


주요 당직자, ’단일화 이루어질 것’

이런 논의에 대해 자민련 중심의 보수대연합은 ‘희망사항’일 뿐 결국은 야권후보단일화 이외 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의견이 맞선다. 그리고 자민련 안에서 대세를 형성하고 있다. 자민련 이 그나마 공동집권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안은 야권후보단일화밖 에 없다고 보는 것이다. 이들은 같은 충청권인 이회창 전 대표가 신한국당 후보로 될 경우 자민 련의 유일한 지역기반인 충청지역이 크게 흔들릴 것이므로 독자출마는 그 취지와 관계없이 대선 후 자민련의 존립근거를 없앨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한다. 또 당내에서는 박준규 고문과 박철언 부총재 등이 JP가 독자출 마할 경우 탈당하겠다고 압력을 가할 정도로 반발이 심하다. JP 역시 이같은 정황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는 징후는 곳곳에서 드러난 다. 실제로 그는 <한겨 레21>과의 인터뷰에서 후보단일화를 내각제 관철의 거의 유일한 대안으로 전제했다.

그의 이런 인식은 우선 후보단일화론자인 김용환 부총재에게 대선기획의 총책을 맡기고 국민회 의와의 협상대표로도 그를 내세우고 있는 데서 엿보인다. 단일화 협상기 구인 대선전략기획위에는 김 부총재뿐 아니라 적극적 단일화론자인 박철언 부총재도 포함시켜 놓 고 있다. 김 총재 자신도 지난 6월29일 경기도 파주 서서울컨트리클럽에서 김영배 국회부의장과 이 종찬 박상규 부총재 등 국민회의 주요 당직자들과 골프회동을 하는 등 국민회의와의 관계에 세심 히 신경쓰고 있다. 이날 회동이 끝난뒤 양쪽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단일화는 반드시 이루어질 것 ’이라고 말했다.

나아가 JP가 일단 자신으로의 단일화를 추진하겠지만 DJ에게 양보하는 경 우까지 이미 상정하고 있는 징후도 곳곳에서 보인다. 물론 그 전제는 국민회의가 15대 국회임 기중 내각제 개헌을 약속 하고 집권 뒤 총리 등 권력의 주요부분을 자민련에게 할애하는 것이다. 충청도 출신의 자민련 초 선의원은 “현재 당내에 DJ로의 단일화에 거부감을 갖는 의원들이 많으 나 현실적으로 야권후보 단일화 이외에 뾰족한 집권방안이 없는 것도 사실”이라며 “국민회의가 15대 국회중 내각제 개 헌만 확실히 보장한다면 DJ로의 단일화도 수용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인제에도 밀려 쫓기는 상황

특히 신한국당에서 이회창 혹은 이인제 등 충청권 출신이 후보로 뽑힐 경 우에 대한 자민련의 우 려는 단일화 논의를 크게 압박하는 요인이다.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후 보가 되고 또 대통령까지 된다면 충청권에서도 JP와 자민련의 ‘미래’는 실종될 수 있기 때문이다 . 김 총재는 지난 6월20 일 국민회의 김인곤 의원의 고희연에 참석하기 위해 광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에게 “여당이 이회창씨로 기우는 것 같은데 잘해봅시다”고 말한 것 으로 알려졌다. JP가 고 민의 일단을 드러낸 대목이 아닐 수 없다.

한편 겉으로 드러난 것과는 달리 야당의 두김 총재가 서로에 대해 느끼 는 신뢰감도 매우 높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실 두 사람이 서로를 믿는다면 단일화는 70~80% 성사된 것이나 다름없 다. 국민회의 비주류에 속하는 김원길 정책위위장은 “두 총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가깝고 깊 이 신뢰한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단일화가 불가능하다는 것은 속단” 이라고 말했다.

JP의 선택 여부가 대선 승리를 좌우할지는 단정할 수 없다. 그러나 DJ나 JP 모두 단일화=승리 라고 확정적으로 전망하듯 JP의 선택은 대선의 향배를 결정적으로 좌우할 수 있다. JP는 그러나 자신이 독립변수가 아니라 종속변수라는 정치적 한계를 드러내지 않기 위 해서도 마지막까지도 그 속내를 드러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속내를 드러내는 시점은 ’ 불가피한 선택’이 아니 라 ’창조를 위한 선택’으로서 명분과 실리가 확보될 때이라는데 정치권 의 관측은 모아진다. 때 문에 단일화는 가능·불가능의 문제가 아니라 명분과 시간의 문제로 보는 게 적절할 것같다.

김성호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7월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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