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1997년07월10일 제 165호 한겨레21

중국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동거… 홍콩과의 1국2체제는 어디로

(사진/홍콩반환식장에 나란히 걸린 유니언잭과 오성홍기. 전세계가 주목한 가운데 유니언잭은 홍콩에서 마지막 밤을 맞고 있다.)

“한 영국 관리의 병든 자존심을 복수하기 위해 치욕적인 만행으로 평화 로운 땅에 불, 칼, 황폐 및 죽음을 가져다 주었다.” -카를 마르크스, 제2차 아편전쟁에 대해 1857년 1월23일 <뉴욕데일리트 리뷴>에 기고한 글에 서.

1997년 7월1일 0시. 홍콩반환식이 열리는 홍콩컨벤션센터에서는 영국국기 유니언잭과 홍콩정청기 가 중국의 오성홍기와 새로 제작된 홍콩특별행정구기에 자리를 내주고 있 었다. 지난 1842년 아편 전쟁에서 승리한 영국이 난징(南京)조약으로 홍콩섬을 영구할양받은 지 1백55년 만에 남부 중국 의 ‘가난한 섬’ 홍콩이 ‘아시아의 진주’가 되어 중국에 돌아가는 역 사적 순간이었다.


20자 원칙따라 50년동안 현 체제 유지

이날의 반환행사는 찰스 영국 왕세자와 장쩌민 중국 주석을 비롯한 4천 여명의 귀빈이 행사장을 가득 메운 채 진행됐으며, 역사적 현장을 취재하려는 8천여명의 취재진 에 의해 전세계에 중계됐 다. 반환식에 대한 이런 높은 관심은 물론 홍콩반환이 “평화로운 땅에 불·칼을 들이댄” 제국 주의 시대가 마침내 끝났음을 상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날 게양된 오성홍기와 홍콩특별행정구기가 단지 ‘식민시기의 종말’만을 상징하는 것 은 아니다. 이는 또한 ‘사회주의 중국’과 ‘자본주의 홍콩’의 동거라 는 또다른 역사적 실험의 출발을 알리는 깃발이기 때문이다. 반환식 이후 홍콩은 영국 식민지에서 중국 특별행정구로 ‘국 적’을 바꿨다. 그러나 홍콩은 앞으로 50년간 자본주의체제를 유지한다. 이는 지난 84년 영-중 합 의에 따른 것으로, 중국은 반환협상 때 ‘주권 회수, 특구 설립, 항인치 항(港人治港·홍콩인에 의 한 홍콩 통치), 제도 불변, 번영 유지’라는 ‘20자 원칙’을 제시했었다 . 따라서 7월1일 반환식은 ‘사회주의-자본주의 동거’라는 소위 ‘1국2체제’ 실험의 선언식이었다 . 홍콩반환식에 쏠린 세 계의 관심 중 상당 부분은 바로 이 역사상 최초의 1국2체제 실험에 관련 된 것이기도 했다.

“아니, 한 나라 안에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동시에 존재한다니. 이런 모순된 개념이 어디 있는 가.” 제국주의의 홍콩 침략을 강도높게 비판했던 마르크스가 중국과 홍콩이 ‘ 1국2체제’ 방식으로 통 일했다는 소식을 들었다면 아마 이런 의문을 제기했을지 모른다. 그에게 ‘자본가의 착취로 운영 되는 자본주의’란 ‘노동에 따라 분배받는 사회주의’에 의해 대체돼야 할 적대적 모순 관계의 체제이기 때문이다.

이런 정통마르크스류의 시각이 아니더라도 ‘1국2체제’ 실험에 대한 평 가는 매우 다양하다. 이 를 “중국-홍콩뿐 아니라 나아가 중국-대만의 통일을 이룰 수 있는 독창 적인 개념”이라고 평가 하는 중국쪽 찬사가 그 한쪽 끝을 대변한다면, “1국2체제는 단지 홍콩 을 돌려받기 위한 중국의 정치적 술수일 뿐”이라는 중국 반체제인사의 우려는 그 반대쪽 극단에 위치한다.

중국대륙은 축제의 물결이 넘실거린다. 주권을 인수받는 7월1일까지 사 흘간을 공휴일로 정한 중 국에선 대륙 전체가 이 ’위대한’ 실험에 대한 찬양으로 온통 북새통이 다.


1국 2체제는 조국통일 향한 위대한 실험

베이징스판(師範)대학의 카오리핑은 “1국2체제의 구상이 우선은 홍콩에 서 시행되지만, 이는 조국 의 평화통일을 실현하는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라면서 “이는 마카 오 문제, 특히 대만 문제 의 해결에 하나의 생생한 본보기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더 나아가 “1국2체제는 세 계 여러 나라의 국제적·국내적 분쟁해결에 훌륭한 귀감이 될 것”이라고 적극적인 의의를 부여 했다. 베이징대학 대표 천시는 “이 과학적 이론의 지도에 힘입어 홍콩은 반환 이후 더욱 안정되 고 번영할 것”이라며 홍콩의 장래를 낙관했다. 중궈칭녠정즈(中國靑年政 治)학원의 궈펑도 “1국2 체제의 방법이 중국의 대외개방을 확대하고, 선진자본주의 국가의 성과 를 흡수 이용할 것”이라 며 “사회주의 현대화 건설을 가속화시키는 등 모든 방면에서 중요한 의 의를 지니고 있다”고 지 적했다. 대륙 사람들에게 ‘1국2체제’는 이렇게 요술방망이인 것이다. 하지만 홍콩으로 넘어오면 분위기는 상당히 달라진다.


홍콩 민주인사들 ‘항인치항’안 지켜질 것

홍콩의 많은 사람들이 이 제도에 대한 의혹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기 때 문이다. 홍콩의 반중국 계 노동운동가 라우유판은 심지어 “1국2체제는 중국의 조크일 뿐”이 라고 매몰차게 비판한다.

홍콩의 반중국 진영에서는 “홍콩반환이란 홍콩이 영국식민지에서 중국식 민지로 넘어가는 절차일 뿐”이라는 평가가 나오기도 한다.

항변 내용은 이렇다. 1국2체제는 말 그대로 한 나라 안에 사회주의와 자 본주의가 함께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개방노선을 택한 중국의 경제체제는 사회주의가 아닌 자 본주의라는 게 이들의 평 가다. 홍콩은 이미 선전 등 중국 해안지역의 특별구들과 하나의 경제권을 이루고 있다는 게 이들 의 판단이다. 따라서 중국-홍콩의 통일에 원론적인 1국2체제 개념을 적용 할 수 없으며, 중국이 이 말을 쓰는 것은 ‘정치적 언동’일 뿐이라고 이들은 주장한다.

실제로 개혁개방 이후 중국자본의 홍콩진출은 눈에 띄게 늘어났다. 현재 홍콩 내 중국계 기업은 공식 허가된 기업만 1천8백여개, 비공식적 진출기업까지 합하면 7천여개 에 가깝다. 이들은 현재 상당수가 홍콩증시에 상장돼 있으며, 앞으로 일정 시간 이후 홍콩 경제 의 주도세력으로 떠오를 것이 분명하다.

결국 남는 것은 정치다. 홍콩의 ‘민주인사’들은 이 부분에 대해서도 우 려의 목소리를 높인다. 1 국2체제의 근간인 ‘항인치항’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한 예로 지난 95년 최초 의 민간선거로 구성된 홍콩 입법국이 주권 반환과 함께 그 기능을 상실 했다. 그 대신 중국은 임 시입법회의를 구성했는데 옛 입법국 의원 60명 중 반중국계 27명은 임시 회의에서 배제됐다. 이들 대부분은 그간 홍콩의 민주세력으로 자부하던 반중국계 민주당 소속이 다. 현재 임시입법회에서 활동하는 옛 입법국 의원 33명 중 다수는 말할 것도 없이 친중국계다. 홍콩의 반중국계 인사들은 이 외에도 중국의 입김이 정치 곳곳에서 작용 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런 상황에서 홍콩의 정치는 ‘홍콩인에 의한 통치’가 될 수 없으며 결 국 ‘베이징 정부에 의 한 통치’가 되지 않겠느냐는 항변인 것이다. 이들은 또 중국에 의해 임명된 의원들로 구성된 임시입법회가 개정해 7 월1일부터 적용되고 있는 여러 법령들도 홍콩 민중들의 자유를 명백히 제약하고 있다고 비판한 다. 개정된 ‘공공질서법 령’은 단지 신고만으로 가능하던 집회를 모두 허가사항으로 바꿔놓았다 . 사회단체 등록도 이전 에는 간단한 절차로 가능했으나, 앞으로는 홍콩 정부에 등록 거부권한이 주어지게 된다. 따라서 정치에서도 1국2체제는 공염불이라는 게 홍콩 민주인사들의 시각이다. 이렇게 1국2체제가 논란이 많은 것은 1국2체제라는 개념 자체에서 오는 측면도 크다. ‘중국과 홍콩 사이의 1국2체제’란 “홍콩의 지역 내 문제는 홍콩이 고도자치(高 度自治)를 누리고 국방이 나 외교문제는 중앙정부가 관할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그런데 여기 서 ‘1국’과 ‘2체제’ 중 어느 것을 강조하느냐에 따라 중국 정부의 주장이나 홍콩 민주인사의 주장에 대한 평가가 달 라지게 된다.

먼저 ‘1국’에 강조점을 두는 주장들을 살펴보자. 홍콩반환을 명시한 지 난 84년 중국-영국의 공 동선언은 홍콩문제를 “중국 전인대에서 의결한 홍콩기본법에서 다룬다” 고 명문화하고 있다. 홍 콩성시(城市)대학 조셉 정 교수는 따라서 “기초적 법률의 설계는 중국 의 국내적인 일”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홍콩이 비록 고도자치를 누리더라도 중국의 한 영토라는 사실에서 벗어날 수 없 다는 설명인 것이다.


영국의 홍콩민주화 추진에 곱지 않았던 중국의 시선

입법국 민주당 인사들의 자격을 7월1일부터 정지시킨 것도 중국쪽은 이런 맥락에서 설명한다. 즉 홍콩이 중국 국내법에 따라 움직이며 중국의 한 영역인 이상, 중국의 체제에 위협이 되는 모든 요소까지 허용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중국 정부와 홍콩의 친중국계 인 사들은 영국이 90년대 들 어 ‘갑자기’ 홍콩 민주화를 추진한 데 대해서도 의혹의 눈길을 거두지 않고 있다. 반환 이후

중국 내에 사회불안 요소를 만들겠다는 의도가 아니냐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영국이 1백55년간 의 긴 식민통치기간 대부분 홍콩을 ‘민주적’으로 통치하지 않았다는 데 서 일정 정도 설득력을 가진다. 사실 ‘공공질서법령’도 지난 60년대 홍콩 민주화운동을 탄압 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가

90년대 이후 시위에 관대한 방향으로 개정된 것이었다. 하지만 ‘2체제’를 강조하는 홍콩 민주세력의 생각은 당연히 이와 다르 다. 이들은 ‘홍콩의 민 주화’가 꼭 영국의 의도에 따른 것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비록 세력이 미약하지만, 이는 홍콩 민 주세력의 민주화투쟁 결과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에 대해 중국 정부가 과도하게 개입하 고 민주화를 후퇴시키는 것은 ‘2체제’를 인정한다는 ‘1국2체제’의 근 본 취지를 무시하는 발 상이라는 항변이다. 특히 홍콩반환 협정에서 홍콩주민의 의사가 전혀 반 영되지 않고 영-중 양국 정상들끼리 이뤄진 점에 대해서는 ‘식민지 이전’이라는 비판도 제기되 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홍콩의 민주운동가인 렁위칭은 “홍콩은 과거 영국으로부터 독립 되지 못했던 것과 마찬가 지로 앞으로 중국으로부터도 역시 독립적이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1국2체제의 ‘현실’뿐 아니라 ‘미래’도 커다란 관심사항 중 하나다. 이에 대해 대다수 홍콩사 람들은 1국2체제가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 한다. 즉 그 것이 ‘홍콩의 중국화’ 든 ‘중국의 홍콩화’든,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를 표방하는 이 두 ‘체제 ’는 ‘1국2체제’ 속에 서 서로에게 영향을 주면서 닮아갈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문제는 홍콩 이 중국을 더 닮을 것인 가, 아니면 중국이 홍콩을 더 닮을 것인가에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경제에 관한 한 ‘작은 홍콩’이 ‘거대한 중국’을 가르치는 스승이 될 것이라는 데 이견이 없 다. 자유무역항과 금융중심지인 홍콩은 곧 개혁개방을 더욱 진전시키려는 중국에게 ‘모범답안’ 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따라서 표면적으로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결합’으로 보일지 몰라 도 궁극적으로는 ‘자본주의 경제체제’로 통합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홍콩 방식’이 훨씬 더 높은 생산성을 내고 있는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회적·정치적 요소에 대해서는 ‘중국 방식’과 ‘홍콩 방식’ 중 어떤 것이 더 크게 영 향을 줄지 아직 확실한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 일부에서는 홍콩이 중국화 할 것으로 전망한다. 중 국 정부가 ‘1당체제’가 바뀌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이런 ‘ 힘있는’ 중국이 홍콩의 정치에 영향을 주는 상황이 앞으로 더욱 강화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러나 홍콩의 여러 요소들이 중국에 영향을 줄 것이라는 지적 또한 적지 않다. 애덕기금회 해외 연락사무소 간사인 김종구 목사는 그 이유로 “중국 정치 또한 국민경제 의 성장으로 필연적으로 민주화의 요구에 봉착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들고 있다. 이 경우 홍 콩의 사례가 좋은 모범이 될 것이라는 말이다.


폭죽속에 교차하는 희망과 우려

1997년 7월1일 0시. 13억 중국인들과 6백30만 홍콩인들은 저마다의 가 슴속에 이렇게 ‘1국2체 제’라는 새로운 실험에 대한 희망과 우려, 긍정과 부정을 간직한 채 올 라가는 오성홍기와 홍콩 특별행정구 기를 지켜봤다. 그러나 그것이 긍정이든 부정이든, 그들은 이 미 새로운 실험이라는 한 배에 탄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리고 1국2체제에 대한 부정까지를 포 함한 그들의 모든 행위들 도 이미 ‘1국2체제 실험’의 한 과정인 셈이다. 중국과 홍콩은 전세계가 그 결과를 지켜보는 가 운데, 때로는 투쟁하고 때로는 협력하며 자신들의 ‘조국’을 변화시켜나 갈 것이다.

김보근 기자 베이징=김성환 통신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7월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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