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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1 |
1997년07월10일 제 16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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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백만년 전, 인류의 진보를 알리는 위대한 발걸음이 시작됐다. 인류 최초 의 조상이 발만으로 땅 을 내딛기 시작한 것이다. 이로써 앞발은 땅에서 해방돼 뜻대로 세상을 조작하는 행운을 누리게 됐다. 그리고 인간은 그 앞발을 이용해 세계를 정복했다. 앞발의 이런 성 공은 온전히 뒷발의 희생 때문에 가능했다.
가죽구두와 함께 고난의 역사
인류가 발에 얼마나 많은 신세를 지고 있는가는 여러 통계들로 입증된 다. 사람이 1km를 걸을 때마다 발은 16t의 무게를 지탱한다. 게다가 앞으로 나아가면서 발은 땅 에 닿는 충격 때문에 20% 정도의 하중을 더 받는다. 체중계 앞에 그냥 서 있으면 70㎏이지만, 한발 을 내딛기만 해도 84㎏의 무게가 발에 실리는 것이다. 사람이 일생에 발을 땅에 부딪히는 횟수만 해도 1억번 이상이다. 사 람이 평생 걷는 거리는 지구를 4바퀴 반 도는 것과 맞먹는다.
이런 엄청난 막노동을 견뎌내기 위해 발은 경이로울 정도로 복잡한 얼 개를 갖고 있다. 발에는 26개의 뼈와 1백14개의 인대, 20개의 근육이 있다. 7천2백여개의 신경이 뼈와 인대, 근육을 거미 줄처럼 둘러싸고 있다. 이러한 복잡한 장치들이 균형을 이뤄 무릎과 허리 , 뇌에 전달되는 충격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발의 이런 구조를 가리켜 ‘공 학의 최대 걸작품’이라 고 불렀다.
하지만 발은 그 구실이나 중요성에 비해 신체의 다른 기관만큼 주목을 받지 못했다. 오히려 끔 찍하게 남용되고 천시돼온 편에 가깝다. 오래 전부터 발은 숨겨야 할 것, 더러운 것으로만 치부됐 다. 울퉁불퉁한 길을 걷든, 하이힐을 신든, 통굽구두를 신든 혹사되는 것이 발의 당연한 운명인 양 받아들여졌다. 심각한 이상징후가 나타나기 전까지 발의 건강과 안녕 은 깡그리 무시되기 일쑤 였다.
발이 이처럼 무시당한 이유에 대해 학자들은 “눈, 코, 귀와 같은 감각기 관에서 너무 멀리 떨어 진 신체구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발이 우리 몸 가운데 감각기관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끝에 자리잡고 있어 관심을 끌지 못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손과 마찬가지로 발을 면밀히 살펴볼 수 만 있었다면 발은 훨씬 더 후한 대접을 받았을 것이다.
발에 입는 상해가 생명을 위협할 만큼 치명적이 아니라는 의식도 발에 대한 무관심을 불러일으 켰다. 하이힐을 신고 백화점 쇼핑을 마친 한 여성이 “발이 아파 죽겠다 ”고 말해도 그 말을 액 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발은 심장이나 폐, 간장과 달리 생명기관이 아니기 때문 이다.
10명 가운데 6명이 엄지발가락 외반증
하지만 발을 잘못 다루면 치명적인 질병 못지 않게 수명을 줄일 수 있다 고 전문가들은 지적한 다. 발이 피곤하면 관절, 허리, 목 따위의 신체 모든 부위에 무리가 생기 고, 결국은 온몸에 노폐물 이 쌓여 장기의 노화를 재촉한다는 것이다. 한의학에서는 발의 각 부위 가 오장육부와 연결돼 있 다고 말한다. 따라서 발에 상처를 입으면, 상처부위에 상응하는 오장육부 의 활동이 저해된다는 것 이다. 전문가들은 “우리가 관심을 갖고 있지 않아서 모르고 지내는 것 뿐이지, 찾고자 한다면 엄 청나게 많은 발병 환자가 바로 우리 옆에 있다. 이들은 자신의 발이 망가 지면 다른 신체기관까지 망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고 안타까워 한다.
많은 전문가들은 이런 발의 통증이나 변형이 가죽구두의 등장과 식생활 따위의 변화에서 발생하 는 후천적인 ‘현대병’에 가깝다고 진단한다. 무엇보다 가죽구두 등장과 함께 고난의 역사가 시 작됐다고 본다. 발을 감싸는 튼튼한 가죽구두는 신발 모양대로 발을 마구 구겨 놓는다. 사람들은 옷이 예쁘다고 해서 작은 옷을 입지 않는다. 그러나 예쁜 구두를 위해서 는 발을 희생한다.
일본이 대표적인 사례다. 상계을지병원 이경태 교수(족부정형외과)는 “ 일본에서 구두가 보편화
된 72년 엄지발가락이 둘째발가락쪽으로 휘는 엄지발가락 외반증으로 수 술받는 환자가 처음 발생 했다. 이후 엄지발가락 외반증 환자가 급증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일 본의 전통적 나막신인 게 다를 신을 때만 해도 엄지발가락 외반증 환자는 없었다는 것이다. 유럽 에서도 가죽신이 등장한 18세기부터 엄지발가락 외반증이 발생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20세 이상 성인 남녀 2백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 과, 27.5%가 걸을 때나 서 있을 때 발에 통증을 느끼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다른 조사에서는 우 리나라 사람 10명 가운데 6명이 엄지발가락 외반증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발에 닥쳐온 이상 징후가 심각해지고 있다 는 것을 보여준다. 한양대 박시복 교수(족부변형 클리닉)는 신발이 바로 문제의 주범이라고 말한 다. “찾아오는 환자들 가운데 80%는 여성입니다. 대부분 자신의 발에 맞지 않는 하이힐이나 앞 이 뾰족한 구두을 신었던 것이죠. 통굽구두, 길이가 긴 구두 따위가 유 행하면서 청소년층의 환자 가 증가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키높이 구두도 발의 피로 부른다
발의 건강보다는 구두의 아름다움을 선택한 대가는 혹독하다. 발에 맞지 않는 신발은 단순한 발 모양의 변형뿐만 아니라 전신피로와 다른 신체기관의 합병증을 유발한다 . 하이힐을 신으면 뒷굽 이 높기 때문에 체중이 앞으로 쏠리게 된다. 몸이 앞으로 기울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허리는 뒤로 젖혀진다. 그러면서 요추전만증(허리 등뼈가 임신부처럼 앞으로 튀 어나오며 구부러진 것)이 발병한다. 게다가 하이힐은 뒷굽이 좁기 때문에 발목을 삐지 않으려고 더 욱 힘을 주고 걸어야 한 다.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근육들이 긴장하게 마련이다. 그러면 발의 충 격을 전달받는 허리, 어깨, 목 뒤가 뻐근하거나 통증을 유발한다. 전신이 쉽게 피곤해지는 것이다. 하이힐은 앞쪽이 뾰족하기 때문에 엄지발가락이 안쪽으로 휘는 엄지발가락 외반증도 불러온다. 통굽구두도 발의 ‘적’이다. 통굽구두는 밑창이 두꺼워 앞부리가 휘어 지지 않는다. 발 관절의 움직임이 자연히 둔해질 수밖에 없다. 특히 스프링 구실을 하는 엄지발 가락의 관절이 제역할을 못하고, 대신 엄지발가락 끝에만 과도한 하중이 실린다. 따라서 엄지발가 락 관절이 발등쪽으로 솟 아오르면서 위로 젖혀지지 않는 엄지발가락 강직증이 생기게 된다. 발보 다 길이가 긴 구두도 통 굽구두와 똑같은 문제를 야기한다. 신발의 구부러지는 곳이 엄지발가락 관절과 일치하지 않기 때 문에, 자연스럽게 엄지발가락 끝에 몸의 압력이 집중되는 것이다. 키높이 구두도 뒤꿈치의 깔창을 하이힐처럼 높게 만들었다. 따라서 앞부리와 뒤꿈치가 뾰족하지 않을 뿐 무게중심의 이동으로 인 해 하이힐과 같은 발병을 가져온다.
발에 생긴 못이나 티눈도 대부분 발에 맞지 않는 신발에서 생긴다. 굳은 살처럼 피부껍질이 어느 한 부분에만 비정상적으로 두꺼워진 것이 못이다. 이 못의 중심부에는 아주 딱딱하고 아픈 부위 가 있는데 이것을 티눈이라고 한다. 하이힐이나 통굽구두 따위를 신으면 무게중심이 한쪽으로만 집중돼 뼈의 모양이 변형된다. 뼈가 삐죽 튀어나온 부위는 결국 신발과 심한 마찰을 일으켜 못이 생기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문가들은 못만 깎아내서는 아무 효과가 없다고 지적한다. 튀어나 온 뼈를 편평하게 잘라내고 발에 맞는 신발을 신어야 한다는 것이다.
발 뒤꿈치가 땅에 닿게 걸어야
한번 균형이 깨진 발은 변형에 가속도가 붙게 돼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 다. 박시복 교수는 “우 리 몸의 모든 힘줄은 고무줄 같은 성질이 있어 계속 줄어들려고 한다. 따 라서 엄지발가락이 둘째 발가락쪽으로 기울어지면 기울어질수록 힘줄은 더 짧아진다. 게다가 걸 어다니는 동안 힘줄은 더 열심히 일하기 때문에 힘줄의 짧아지려는 힘이 더욱 강해진다. 힘줄이 짧아지는 속도에 비례해 엄지발가락 관절뼈가 밀려서 갈수록 자꾸만 튀어나오게 된다”고 말한다 .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발이 정상적으로 보일 때 올바른 신발을 선택해 발의 질병을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한 다. 성인의 신발은 자신의 발보다 1.2cm 정도, 청소년의 경우는 1.5cm 정 도 여유가 있는 것이 좋 다는 것이다. 가능한 폭이 넓고 앞부리가 편안한 신발을 골라야 몸의 하 중이 다섯발가락에 골고 루 분산된다.
최근 들어 비만도 발의 변형을 가져오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한양대 족부변형클리닉에 따르 면, 비만인 사람일수록 엄지발가락 외반증의 정도가 훨씬 더 심하다. 특 히 엄지발가락이 40도 이 상 안으로 굽어진 중증 외반증의 경우 비만체중인 사람이 정상체중인 사람보다 2배 이상 많다. 몸무게만큼 엄지발가락에 하중이 더 실리기 때문이다.
이용인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7월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