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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
1997년07월10일 제 16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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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7월부터 수입이 본격 개방되면서 제주 감귤 농가의 생계를 크게 위협할 것으로 보인다. )
7월1일부터 수입 오렌지에 대한 빗장이 풀렸다. 쇠고기 꼬리, 돼지고기 삼겹살 등 다른 36개 농축산물과 함께 수입이 개방된 것이다(표 참조). 수산물까지 포함하면 개방 품목은 68개로 늘어난다. 지난해 말 현재 95.7 %였던 농축산물 수입 자유화율은 98.3%로 더욱 높아졌다. 농촌 문제와 식 량안보 차원에서 최소시장접근물량(MMA)만 수입하고 있는 쌀과 쇠고기(육 우, 젖소 등)를 빼고는 모든 농축수산물의 수입이 가능해졌다. 완전한 농 축산물 수입개방시대 진입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선발대 1차도입량만 4천1백40톤
수입개방 품목 중에서 가장 우려되는 것은 오렌지. 국내산 감귤에 미치는 영향은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정작 오렌지와 함께 개방되는 외국산 감귤 은 걱정을 안 해도 된다는 분석이다. 경쟁상대인 일본과 중국의 감귤은 품질면에서 우리 것보다 떨어지는 데다 가격도 큰 차이가 없거나 오히려 비싸다. 쇠고기의 꼬리와 족, 돼지고기의 삼겹살과 목살 등 일부 품목도 수입산이 국산보다 가격이 싸 일부 영향을 받을 전망이지만 감귤만큼 심 각하지는 않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요즘 제주 감귤농가들은 폭풍 전야 같은 불안에 휩싸여 있다. 미국산 오 렌지의 융단폭격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우리나라 감귤 농가는 제주도에 집중돼 있다. 제주도청 관계자는 “제주의 감귤 생산농민은 3만6천여 가 구로 3만9천7백여 전체 제주 농가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면서 “감귤 소 득은 관광소득에 이어 두번째로 많다”고 말한다. 감귤의 명암은 제주도 전체의 명암과 연결된다.
오렌지의 수입은 지난 95년 세계무역기구(WTO) 체제 출범과 함께 본격화 됐다. 하지만 일정량(최소시장접근물량·MMA) 한도 안에서, 그것도 50%의 관세를 내야 가능했다. 수입원도 제주감귤조합으로 단일화돼 있었다. 그 러나 앞으로는 일반 수입상들도 84.3%의 관세만 물면 마음대로 수입할 수 있다. 발빠른 수입상들은 이미 지난 6월27∼28일 부산항을 통해 미국산 발렌시아 오렌지를 들여왔다. 검역이 끝나면 경매를 통해 중도매상에게 분배된 뒤 곧 전국 각지로 공급된다. 1차분 물량은 4천1백40톤(40피트짜 리 컨테이너 2백30개분)에 불과하지만 이는 선발대일 뿐이다. 곧 2차, 3 차분이 꼬리를 물고 밀려들 것이다. 농림부는 상반기에 들어 온 MMA 2만5 천톤을 제외하고 하반기에 1만∼2만5천톤이 수입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 그러나 농산물 수출입 전문회사인 현대농산교역의 송명규 사장은 “아 무리 적게 잡아도 올 하반기 오렌지 수입물량은 3만톤을 넘을 것”이라고 말한다. 일부에서는 하반기 수입물량만 5만톤, 연간 전체로는 7만5천톤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수입 오렌지가 공포의 대상의 되고 있는 것은 대체효과가 예상되는 감귤 에 비해 가격이 싸기 때문이다. 수입 오렌지의 경쟁 상대인 시설감귤(하 우스에서 재배한 감귤)은 최근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에서 5㎏ 한 상 자에 1만8천∼2만3천원에 경락되고 있다. 1㎏당 3천6백∼4천6백원꼴이다. 그러나 수입업체들은 발렌시아 오렌지의 경락가가 18㎏ 한 상자당 3만∼3 만5천원 선에서 형성될 것으로 보고 있다. 1㎏당 1천6백70∼1천9백40원으 로 하우스 감귤의 절반도 안 된다. 10월부터 본격 출하되는 노지감귤(밖 에서 재배한 감귤)은 15㎏ 한 상자당 2만5천∼3만3천원으로 발렌시아 오 렌지와 가격이 비슷하지만 당도 등 품질 면에서 시설감귤에 떨어져 수입 오렌지의 경쟁상대로는 벅차다.
12월부터는 발렌시아보다 품질이 우수한 네이블 오렌지가 들어온다. 농산 물 수입업체인 도원마케팅의 신봉현 상무는 “네이블 오렌지의 가격은 18 ㎏ 한 상자당 4만∼4만5천원 정도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1㎏당 2천2백 ∼2천5백원으로 발렌시아보다는 비싸지만 시설감귤보다는 역시 훨씬 싸다 . 수입오렌지의 관세가 올해 84.3%에서 오는 2004년 50%까지 매년 단계적 으로 낮아지게 돼있어 앞으로 가격은 더욱 낮아질 공산이 크다.
일부선 낙관하지만 가격이 문제
변수가 없는 것은 아니다. 농협 가락동공판장의 구자성 경매과장은 “오 렌지는 감귤에 비해 당도는 다소 높지만 상큼한 맛이 없고 우리 국민들이 감귤 맛에 익숙해 있기 때문에 수입오렌지가 감귤시장을 크게 잠식할 것 으로 단정짓기는 이르다”고 말한다. 수요층이 다르다는 지적이다. 오렌 지는 감귤과 달리 칼로 깎아야 먹을 수 있다는 불편도 있다. 또 오렌지가 제한된 물량이지만 이미 국내시장에 들어왔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91년 바 나나가 처음 수입됐을 때처럼 호기심에 찾는 일도 적을 거라는 지적이다.
그러나 역시 가격이 문제다. 지금까지 들어왔던 오렌지는 독점 수입처인 제주감귤조합에서 정책적으로 가격을 높여 최근까지 경락가가 18㎏ 한 상 자당 5만∼5만5천원 선에 형성됐다. 지난해 한창 비쌀 때는 상자당 9만원 까지 치솟기도 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이 모두가 흘러간 이야기일 뿐이다 . 일부에서는 그동안 수입된 오렌지가 최상품이 아니었다는 지적도 한다. 전보다 값은 싸면서 품질은 더 좋은 수입 오렌지가 들어왔을 때 소비자들 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예상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외국산 오렌지 수입업체들의 선점경쟁이 벌써부터 치열하다. 도원마케팅 의 신 상무는 “10개 미만이던 오렌지 수입업체들이 20개를 넘고 있다” 면서 “1차 수입분의 반응이 좋으면 도입업체는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업체들이 침을 흘리며 수입 오렌지에 달려들고 있는 것은 짭짤한 수입이 기대되기 때문이다. 발렌시아 오렌지의 수입 원가는 18㎏ 한 상자당 2만5천∼2만6천원 선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경락가와 비교 하면 상자당 5천∼1만원의 수입을 올릴 수 있다. 1천 상자가 담기는 컨테 이너 한대분만 들여와도 5백만∼1천만원이 그대로 떨어진다.
수입 오렌지가 시장에 나오면 감귤 가격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수입 오렌지를 찾는 소비자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감귤의 가격인하 압력은 더욱 거세질 것이다. 소비자들로서는 값싸게 먹을 수 있어 반가운 일이지만 생 산농가로서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일이다. 연간 50만∼70만톤 정도가 생산되는 제주 감귤의 시장규모는 6천억원대에 이른다. 감귤 가격이 20% 만 떨어져도 1천억원대의 손실이 불가피하다. 제주감귤농업협동조합의 허 법수 상무는 “도입초기인 7월 한달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7월을 잘 넘기더라도 그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올해 말부터는 수입 오렌 지의 간판격인 네이블과의 한판 대결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농협중앙회 조사부의 이한주 조사역은 “그 동안은 식물방역법상 미국 이외의 지역에 서는 수입이 금지됐으나 앞으로는 오스트레일리아,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에서도 수입이 가능해질 전망이기 때문에 어려움은 더 크다”고 말했다.
오렌지농축액 수입 제한도 풀려 엎친 데 덮친 격
오렌지쥬스의 수입개방은 제주 감귤 생산농가에는 엎친 데 겹친 격이다. 해태, 롯데 등 음료업체들은 그동안 오렌지농축액 수입물량을 배정받기 위해 제주산 가공용 감귤을 의무적으로 수매해 왔다. 그러나 7월부터는 아무런 제한없이 오렌지농축액을 수입할 수 있게 돼 관련업체들로서는 수 입산농축액보다 2-3배 비싼 가공용 감귤을 수매할 이유가 없어졌다. 생산 농가들로서는 그동안 가공용으로 팔아온 하급품 감귤의 판로가 막히게 된 다. 제주감귤농협은 올해 음료업체들이 가공용 감귤 7만∼8만톤을 수매해 주기를 희망하고 있다. 수매희망 물량은 올해 제주 전체 감귤 예상 생산 량 62만톤의 12∼13%에 해당한다. 가공용 감귤의 수매가가 1㎏당 2백20원 으로 시설감귤과 노지감귤의 1/10 수준에 불과하지만 수매가 막힐 경우 감귤 생산농가는 올해만 1백50억원 이상의 손실이 불가피하다. 그렇다고 가공용 감귤을 일반 생식용으로 팔 수도 없다. 공급량이 늘어 감귤 전체 가격이 하락할 것이 불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지난 5월 말 열린 수매협의 회에서는 음료업체들이 올해 수매 물량과 가격을 제시하지 않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해태음료의 관계자는 “감귤 농민들 의 처지를 이해하지만 오렌지쥬스의 수요가 갈수록 줄고 있다”며 어려움 을 털어놨다. 주변에서는 음료업체들이 감귤 외에 당근 등도 제주에서 수 매하고 있고 대국민 이미지 등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수매를 완전히 중 단하지는 않겠지만 양은 줄이고 가격은 깎으려고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제주감귤조합의 한 관계자는 “장기적으로 하급품 감귤의 판매처가 끊겨 버리면 버릴 수밖에 없는 사태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감귤만 수입오렌지의 융단폭격 사정권에 들어 있는 것은 아니다. 청과물 취급상들은 오렌지 수입과 맞물려 출하되는 포도, 사과, 배, 복숭아 등 다른 과일들도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 가락동농협공판장의 구 과 장은 “한 사람이 먹는 과일 양은 일정하다고 봐야 하기 때문에 수입오렌 지 소비가 늘어나면 결국 다른 과일들의 소비가 줄 수밖에 없다”고 말한 다. 더욱이 올해는 전체 과일시장이 공급과잉과 경기침체 등으로 유례없 는 침체를 겪고 있다. 과일상들은 오렌지 수입에 맞춰 전반적으로 국내산 과일값이 떨어질 것이라고 말한다. 도원마케팅의 신 상무는 “기본적으로 국내 과일값이 너무 비싸다”면서 “현재 전체 과일 중에서 수입과일의 비중이 10∼15% 정도에 그치고 있지만 오는 2000년에는 40% 정도로 높아 지고 그 대부분은 오렌지가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제주 감귤이 수입오렌지와의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감귤산업 구조조정이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그동안의 구조조정 노력으로 1㎏당 생산비는 지난 90년 4백38원에서 95년 3백42원으로 22% 감소했다. 10a당 단위 생산 성은 90년 2천5백40원에서 95년에는 3천1백27원으로 높아졌다. 하지만 호 당 재배면적이 0.81㏊로 여전히 영세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자구노력 한계 “국민 애국심만 믿는다”
제주감귤조합의 허 상무는 “품질 향상과 함께 간벌, 꽃따기, 열매솎기 등을 통한 적정 생산량 유지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제주도는 올 봄에 대대적인 간벌을 실시하면서 4백35만2천 그루에 달하는 감귤나무 를 잘라내 전체 재배면적 2만2천여㏊의 10%가 넘는 3천여㏊를 줄이는 효 과를 거두었다.
농협중앙회는 감귤을 이용한 새로운 가공제품 개발, 수입오렌지에 대한 검역 강화 등 단기대책과 함께 고품질 감귤 생산체제 구축을 위한 생산조 정, 수출확대, 정부의 지원 등 장기대책을 병행해야 할 것으로 지적했다. 농협중앙회의 한 관계자는 “쉽지 않은 얘기지만 소비자들도 수입오렌지 보다 우리 감귤을 찾는 애국심을 발휘해야 한다”고 말한다. 생산농가와 정부, 국민의 3자 협력만 잘 이루어진다면 우리 감귤산업의 전망이 절망 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곽정수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7월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