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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정성 큰 기쁨 |
1997년07월10일 제 16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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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친구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홍현숙(32)씨는 그 친구를 생각할 때마다 아름다고 순수하기만 했던 소녀 시절을 떠올리곤 한다. 그 친구에 대한 기억은 그가 전해준 작은 시집으 로 이어진다.
여중 2학년 때 단짝이었던 그 친구는 다소곳한 성격에 문학 특히 시를 좋 아했다. 쉬는 시간에는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김소월이나 서정주의 시를 읽어주었다. 하교길 논둑이나 나무그늘 아래에 앉아 흘러가는 흰구름을 올려다 보며 함께 시심에 젖기도 했다. 시를 사랑했던 친구는 그러나 직 접 시를 써보라는 홍씨의 말에는 “내가 어떻게…”하며 쑥쓰러워하곤 했 다.
홍씨는 그러나 단짝 친구와 헤어져야만 했다. 2학기가 시작된 지 얼마지 않아 그 친구가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된 것이다. 홍씨는 그 가 떠나기 이틀 전 친구의 집에서 함께 밤을 새우며 이별을 아쉬워했다. 홍씨는 자신의 용돈을 모아 산 만년필을 카드와 함께 친구에게 건네줬다. 카드에는 “비싼 것은 아니지만 우정의 선물로 받아줘. 네가 이 다음에 훌륭한 문학가나 시인이 됐으면 좋겠어”라고 적었다.
만년필을 건네받은 그 친구의 눈시울은 금세 붉어졌다. 친구는 이어 책상 서랍 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를 꺼넸다. “이거 네가 간직해줘.” 친구가 내민 것은 작은 일기장처럼 생긴 공책이었다. 거기에는 한장한장마다 예 쁜 글씨로 쓰인 시들이 적혀 있었다. 여태까지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그만의 비밀스런 세계였다. “내가 좋아하는 시와 틈틈히 연습삼아 쓴 시 를 모아놓은 거야. 우리가 언젠가 다시 만날 때 이걸 읽어보면서 그때 우 리가 얼마나 어리고 순진했던가 되돌아보는 것도 재미있을거야”
홍씨는 시집을 잘 간직하겠다고 약속했다. 친구는 며칠 뒤 가족들과 함께 이민을 갔다. 홍씨는 친구로부터의 소식을 손꼽아 기다렸다. 이제나 저제 나 기다리던 편지는 오지 않았다. 그렇게 그 친구와의 연락은 끊어졌다. 홍씨는 떠나간 친구가 생각날 때마다 시집을 펼쳐보았다. 시를 읽을 때면 친구의 순수하고 아름다운 마음이 전해졌다. 홍씨는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될 친구를 위해 틈틈이 시를 써보기도 했다. 홍씨는 점차 문학에 관심을 갖게 됐고 대학도 국문과로 진학했다.
홍씨는 그처럼 애지중지하던 시집을 2년 전 잃어버렸다. 결혼한 뒤 전셋 집을 옮기는 와중에서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때의 안타까움이란…. 그 시 집은 지금의 자신의 모습을 있게 한 소중한 바탕이었다. 홍씨는 그러나 더이상 시집에 연연해하지 않는단다. “시집은 잃어버렸지만 마음속에 간 직한 소중한 우정은 영원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김창석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7월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