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강문 기자의 인물탐험
1997년07월10일 제 165호 한겨레21

두밀리 자연학교장 채규철씨

아이들은 그를 ‘이티(ET) 할아버지’라고 부른다. 그를 보면 왜 그런 별 명이 붙었는지 한눈에 알 수 있다. 영화의 이티처럼 그의 얼굴은 괴상하 고 흉칙하다(그의 얼굴을 이렇게 표현하는 건 순전히 그가 그렇다고 인정 하기 때문이다). “문둥이들이 내 얼굴을 보면 자꾸 친구하자고 한다”는 너스레가 결코 과장이 아니다. 그에게 외양을 따지는 세속의 잣대를 들이 대는 것부터가 애시당초 잘못이다.


100원짜리 인생? 속으로 웃는다

경기도 가평군 두밀리 자연학교 교장 채규철(61). 20년 전 자동차 사고로 몸의 절반 가량이 불탔다. 의학상식대로라면 이미 무덤 속에서 뼈만 남아 있어야 할 몸이다. 그러나 그는 살아 있다. 그것도 누구보다 활기찬 사람 으로. 그는 아이들에게 자연의 즐거움을 선사하는 선생님이요, 기업의 사 원연수에 단골로 불려가는 명강사다. 그리고 지금은 고인이 된 장기려 박 사와 함께 우리나라 최초의 의료조합인 청십자조합을 만든 사람으로 기억 되는 이다. 그의 말마따나 그의 사전에 좌절이란 없다.

그는 스스로를 ‘100원짜리 인생’이라 부른다. 그가 다방이나 음식점에 들어서면 마담이나 카운터들이 잽싸게 100원짜리 동전 한닢을 쥐어준다. 장사 안해도 좋으니 제발 이것만 받고 나가달라는 신호다. 이유는 뻔하다 . 다른 손님에게 혐오감을 준다는 것이다. 그는 그렇게 주는 100원짜리 동전을 마다않고 꼭 받아챙긴다. 그리곤 기어이 자리에 앉아 손님행세를 다한다. 나올 때 찻값이나 밥값을 내더라도 100원을 아끼는 셈이니 기분 좋은 일이다.

그러면서 속으로 웃는다. ‘당신들은 모른다. 내가 얼마나 값비싼 존재인 지.’ 사실 그의 흉칙한 몰골은 엄청난 돈과 희생이 빚어낸 걸작품이다. 거기에 들어간 치료비며 관리비, 그리고 무엇보다 주위 사람들의 정성어 린 헌신을 돈으로 따진다면 엄청난 금액이다. “6백만불의 사나이는 못되 어도 6백만원의 사나이는 되고도 남을 것이다.” 남보다 더 융숭한 대접 을 받아 마땅한 모습이건만 외려 남보다 심한 수모를 받는 것이 그저 우 스울 뿐이다.

그는 한때 농촌운동에 뜻을 둔 전도양양한 청년이었다. 냉면으로 이름난 함흥에서 태어난 그는 1·4후퇴 때 월남해 거제도에 정착했다. 서울농업 대(현 서울시립대)를 나와 충남 홍성의 풀무학원에서 농촌운동가로 첫발 을 내디뎠다(이 학교는 지금 주목받는 대안학교로 떠오르고 있다). 월급 이라야 여름엔 겉보리, 겨울엔 벼를 받는 고된 시절이었다. 덴마크 정부 의 초청으로 유학길에 오를 때까지도 그의 인생은 예정된 시간표대로 굴 러가고 있었다. 덴마크에서 그룬드비를 배우고 스위스의 페스탈로찌를 거 쳐 인도의 간디를 살피고 한국에 돌아온 것이 1967년 가을이었다. 귀국해 선 지금은 고인이 된 장기려 박사를 만나 청십자조합을 만들었다. 그러나 1년 뒤 운명이 바뀌었다.

그날은 청명했다. 푸른 하늘 아래 미풍이 남실대고 있었다. 그는 일행과 함께 폭스바겐을 타고 산기슭을 달리고 있었다. 김해에 있는 양계장을 견 학하고 부산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갑자기 차가 제길을 벗어나 비탈길 을 구르기 시작했다. 공교롭게도 차 뒷좌석에는 시너가 가득 든 통이 두 개나 실려 있었다. 새로 지은 영아원의 바닥을 칠하는 데 쓸 물건이었다. 차가 뒤집어지면서 시너 두통이 몽땅 터져버렸다. 그는 시너를 머리 끝부 터 발 끝까지 뒤집어쓰고 말았다. 그리고 ‘꽝.’


한주일 서너번 기업연수 강사로

그는 장기려 박사가 원장으로 있던 복음병원으로 실려갔다. 그때까지도 정신은 말짱했다. 죽기 전에 남길 유언까지 생각해뒀다. 수술대에 눕자마 자 장 박사를 찾았다. 그를 아는 간호원들은 울고불고 난리였다. 의사들 이 다급하게 핀센트와 실을 찾아도 넋을 잃고 서 있을 뿐이었다. 그때 장 박사가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다. 그는 그제서야 스스로 유언이라 생각한 말을 남기고 정신을 잃었다. “박사님, 청십자조합만큼은 꼭 성공시켜주 세요.”

그의 얼굴은 죄다 병원에서 만든 것이다. 눈썹은 머리칼을 떼어서 옮겨 심었다. 그래서인지 눈썹이 쑥쑥 자란다. 2∼3주에 한번은 꼭 이발을 해 야 한다. 요즘에는 새치까지 난다. 눈도 마찬가지다. 눈 주위에 있는 살 은 다 타서 없어지고 눈동자만 덩그러니 남았다. 할 수 없이 어깨 피부를 떼어내 눈꺼풀을 만들고, 겨드랑이 털을 가늘게 떼어내 속눈썹을 만들었 다. 밖으로 향해야 할 눈썹이 안으로 자라는 바람에 재수술을 하기도 했 다. 오른쪽 눈은 의안을 박았다. 다행히 왼쪽 눈은 실명하지 않았다. 하 지만 눈에 염증이 생겨 1m 앞을 보지 못한다. 입은 오그라붙어 찻숟가락 조차 들어가지 않을 정도였다. 그걸 째고 가슴 피부로 입술을 만들어 붙 였다.

두밀리 자연학교를 말할 때 그의 얼굴은 가장 환하게 일그러진다(?). 그 때 입가에 번지는 미묘한 살의 떨림이란. 자연학교는 그에게 남은 마지막 사명이다. 그걸 제대로 완수하지 않고는 죽을 수가 없단다. 사명감은 화 상이 제법 아문 뒤, 새마을연수원 초청으로 강연에 나선 이래 그가 꼭 강 조하는 낱말이다. 그는 보통 일주일에 서너차례 기업체 연수원에 불려간 다. 그렇게 버는 수입이 대학교수 못지 않다. 그게 다 자연학교에 들어간 다. “강연으로 폼도 잡고 학교 운영비도 버니 신난다”고 한다.

자연학교로 가는 길은 학교로부터 멀어지는 길이다. 불기산 줄기를 타고 들어가면 포장길과 나란히 달리는 개울이 나타난다. 위태롭게 걸린 나무 다리를 건너면 야트막한 산기슭이 펼쳐지고, 그곳에 그가 10년 전에 일군 자연학교가 들어서 있다. 말이 학교지 야영장이나 다름없다. 네모난 시멘 트 건물은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 없다. 여기저기 가건물과 천막들이 늘어 서 있을 뿐이다. 그 사이사이로 숲이 우거지고, 시내가 흐르고, 아이들이 직접 심은 콩이 자란다.


“환갑잔치에 반딧불을 준비합니다”

자연학교의 교육방침은 따로 없다. 그저 맛있게 먹고, 즐겁게 놀고, 달콤 하게 자자는 정도다. 아이들이 학교의 진짜 주인이다. 계절을 달리 해 들 을 수놓는 온갖 꽃들과 개울을 따라 헤엄치는 멋대로 생긴 민물고기들, 그리고 숲속에서 자라는 달콤한 열매들이 아이들과 친구할 뿐이다. 아이 들은 낮엔 밭을 매거나 개울에서 물고기를 잡으며 논다. 수제비를 직접 끓여먹고 감자도 삶아먹는다. 그리고 밤이면 모닥불을 피우고 별자리를 찾다 잠이 든다. 잠이 없는 아이들은 반딧불을 쫓거나 귀신놀이를 하다 새벽이슬을 맞기도 한다. 그는 그런 아이들을 위해 기꺼이 무서운 귀신이 된다. “생긴 게 딱 귀신 역할하기에 제격이다”는 게 그의 자랑이다.

그는 오는 10월 환갑을 맞는다. 그때 학교 마당에서 걸판진 잔치를 열 계 획이다. 연못에서 기른 향어로 회를 치고, 손수 기른 푸성귀로 푸짐한 밥 상을 차릴 생각이다. 그런데 손님들이 너무 많을까 걱정이다. 해마다 8월 이면 자원봉사한답시고 찾는 소록도의 친구들. “너는 소록도에서 사는 게 어울린다”며 갈쿠리 손을 내밀던 그들이 이번엔 섬을 나올지도 모르 겠다. 그리고 살면서 신세를 진 숱한 지인들. 그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벌 써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아이들. 그들을 위해선 꼭 감춰둔 선물이 있다. 밤하늘에 반짝이는 반딧불들. 그는 요즘 우리곁에서 사라진 반딧불 살리기에 푹 빠져 있다.

사진 이정용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7월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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