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삶/역사속의 여성 |
1997년07월10일 제 165호
|
|---|
“나의 누이, 나의 신부여. 그대 사랑 아름다워라. 그대 사랑 포도주보다 달아라.”
독일의 서정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연인 루 살로메에게 즐겨 읽어준 성경의 아가서 대목이 다. 22세의 릴케는 14세 위인 루 살로메를 뜨겁게 사랑했고, 루와 헤어 진 다음 <두이노 비가 > <헌시집> 등 생애 최고의 걸작을 쏟아냈다. 그런가 하면 철학자 니체는 루에게 청혼했 다가 거절당하자 극도의 절망감에 시달린 끝에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탈고했다.
그래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루와 사랑한 남자는 9개월쯤 지나면 책 니체와 릴케의 연인, 예술가의 창작혼을 자극하는 정령, 화려한 남성편력 가. 우리에게 알려진 루 살로메는 이런 모습이다. 그러나 이는 그의 일면일 뿐이다. 루는 여러 편 의 소설과 문학평론을 남 긴 작가이고, 프로이트의 제자가 되어 정신분석가로도 활약했다. 본명은 루이즈 폰 살로메. 1861 년 2월12일 독일계 제정 러시아의 장군 구스타프 폰 살로메의 외동딸로 태어났다.
루는 19살 때 스위스의 취리히대학에 들어가 비교종교학과 신학, 철학, 예술사 등을 공부했다.
취리히대학은 유럽 최초로 여성에게 문호를 개방한 대학이다. 루는 매우 지적인 여성이었다. 큰 키에 날씬한 몸매, 약간 튀어나온 넓은 이마, 깊고 빛나는 눈은 그의 지 성을 돋보이게 했다. 더욱 이 남을 의식하지 않는 그의 거침없는 태도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 분했다.
루는 어느 날 갑자기 결혼했다. 상대는 베를린 동양어연구소의 페르시 아어 교수인 프리드리히 칼 안드레아스. 루에게 청혼했다가 거절당한 그가 칼로 자기 가슴을 찌 르는 바람에 놀라 결혼을 승낙하고 만 것이다. 내로라 하는 당대 명사들의 청혼을 뿌리친 그로선 자못 충격적인 변신이었 다.
두 사람의 결혼생활은 안드레아스가 루의 생활에 아무 간섭도 하지 않는 다는 조건 아래 43년간 지속됐다. 루는 마리라는 하녀를 고용해 안드레아스의 실제 아내노릇을 하게 했다. 그리고는 자유 롭게 여행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사랑에 빠지고 글을 썼다. 처녀작 <신 을 에워싼 투쟁>을 비 롯해 소설 <낯선 땅에서> <인간의 후예들> <중간지대에서>와 비평서 <헨리 입센 의 여자들 모습> <니체의 편지>, 그 밖에 50여편의 에세이와 논문, 서평 등을 잇따라 발표 했다.
루의 궁극적인 관심은 ‘생의 근원’이었다. 문학에서 충분한 해답을 찾 지 못한 그는 1911년 프 로이트를 만나 제자가 된다. 그때 루의 나이 50. 루는 성본능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강한 욕구이 며, 성애와 예술적 창조, 종교적 열정은 생명력의 서로 다른 측면일 뿐이 라고 생각했다. 그랬기에 그의 사랑법은 동시대 여성들과는 아주 달랐다. 남성들은 루의 폭넓은 지식, 작가로서의 재능에 우선 놀라고 이어 그의 몸이 내뿜는 매력에 사로잡혔다.
19세기말은 루처럼 기존 도덕과 관습에 사로잡히지 않고 자유로이 자아를 추구하는 여성들이 두 드러지게 등장하던 시기였다. 구시대의 유산을 거부한 이들은 남성의 전 유물이던 학문의 세계에 뛰어들거나, 타고난 재능을 살려 예술가가 됐다. 자유연애는 이들이 기 존의 관습, 도덕질서에 던 지는 도전장 같았다. 루의 역사적 위치는 이쯤에 해당한다. 그러고 보면 그의 야릇한 결혼생활은 완강한 관습과 도덕질서에 적당히 타협하면서 자신의 길을 추구하기 위한 일종의 타협점이었는지 모른다.
1937년 1월5일, 루는 숨을 거뒀다. 생전에 자유로이 떠돌다가도 남편에 게 돌아가곤 했던 루. 그 는 죽어서도 역시 남편 곁으로 돌아가 괴팅겐 시립묘지에 합장됐다.
박은봉/ 역사연구가
© 한겨레신문사 1997년07월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