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마당/연극
1997년07월10일 제 165호 한겨레21

<오구>...신명이 사라진 죽음의 놀이판

짧은 지면에 평을 쓰는 것은 숨가쁘고 힘들다. 용건만 간단히. 올가을 세 계연극제 출품을 앞두고 다시 올린 연희패거리단의 대표적 레퍼토리인 <오구>(이윤택 작·연 출)는 대폭 수정된 모습 이었다. 잘 알려져 있듯이 이 작품은, 죽기 전 사후 극락왕생을 비는 산 오구굿을 전반부에, 죽은 할머니의 장례 과정을 후반부에 배치함으로써 한국인의 죽음 의식을 놀 이판으로 보여준다. 결론 부터 이야기하자면, 이전 판만 못하다.

이번의 <오구>는 ‘함께 놀기’보다 ‘보여주기’가 강화돼 있다. 첫 장면 길고 장황한 ‘노모의 꿈’부터 후반부까지 멋진 그림을 보여주기 위한 배려가 역력 하다. ‘보여주기’의 강 화는 이승의 일상적 생활공간과 분리된 저승 공간의 설정과 연관돼 있다. 반투명막 뒤의 저승 공 간에서 온갖 잡귀귀신과 노모의 죽은 남편과 저승사자들이 마임과 합창으 로 이승을 이야기함으로 써 ‘멋진 그림’을 만든다.

그러나 이러한 보여주기의 강화는 ‘함께 놀기’를 약화시킴으로써 죽음의식을 걸판진 놀이판으로 풀어헤치는 작품의 핵심을 흐트러뜨렸다. 슬퍼야 마땅한 죽음이라 는 사건을, 당연히 맞아야 할 친구처럼 놀고 즐기면서 맞아들이는 한국 인의 죽음 의식을 포착했 다는 것이 이 작품의 핵심이고 매력이었다. 물론 예나 지금이나 이 작 품은 과연 그러한 축제적 장례가 한국인의 독특한 죽음관 때문임을 심도 있게 보여주는 데에는 이 르지 못한다.

야단스럽게 놀아젖힌 뒤에 기껏 덧붙여진 설명은 저승과 귀신은 인간의 마음이 만들 어낸 것이라는 너무도 맥 빠지는 사설 뿐이다. 벌써 오래전에 만들어진 TV다큐멘타리 <진도>의 ‘죽음편’보다도 그 내용의 심도가 훨씬 떨어진다. 그럼에도 이 작품의 특징과 핵심은 여전히 놀이판으로 풀어젖 히는 낙관적인 죽음의식 이었다.

이러한 핵심은 연희자와 관중, 극 안과 바깥, 의식과 놀이, 이승과 저승 의 뒤섞임과 넘나듦으로 부터 보장된다. 그러나 이번 공연은 이런 것들을 갈라놓았다. 저승을 이 승과 떨어뜨려 놓았고, 관 객은 저승을 지켜보게 만들었고, 결국 놀이적 분위기로 확보되는 이 작 품의 핵심을 크게 손상시 켰다.

주연 배우의 연기는 이런 문제점을 심화시켰다. 노모 역을 맡은 강부자는 텔레비전의 사실적 연 기에 매어, 통곡하다가 장난스러운 웃음으로 헤까닥 표정을 바꾸는 놀이 적 연기의 과장과 이중성 을 드러내는 데 실패했다. 그래서 ‘그건 동국정운식 발음이다’, ‘이 나이에 그 높은 계단 걸어 서 올라갈 군번이냐, 내가?’와 같은, 배우와 극중 인물을 동시에 드러내 는 놀이화된 대사들은 원 천적으로 소화불량이었다. 맏상주 역의 김학철은, 강부자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연기를 분절화 시켜 놀이화를 시도했으나, 몸에 밴 경직된 카리스마로 일상적으로 편안 히 놀지 못하여, 노모의 연기와도, 극전체와도 조화를 이루지 못했다. 그나마 석출 역의 하용부만 무난하게 제구실을 하고 있었다.

세계연극제에서 뭔가를 보여줘야겠다는 강박관념을 버리고 이전의 < 오구>로 돌아갈 것을 권하고 싶다.

이영미/연극평론가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7월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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