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야기	1997년07월10일 제 165호

‘찬옥’이 1인9역에 도전

그는 누나같다. 언제고 찾아가도 “배고프지, 밥먹어”하며 인사를 채 끝 내기도 전에 부엌으로 달려가는 고향집 누이처럼.

<첫사랑>의 찬옥이 송채환(29)의 요즘 일터는 대학로 연극무대다. 서 울 두레극장이 마련한 ‘이만희-강영걸 연극축제’의 첫 작품인 <돼지 와 오토바이>에서 한창 땀을 흘리고 있다. 지난 6월12일 막을 올려 7월 말까지 계속되는 이 연극에서 송채환은 아내, 애인, 수녀원장, 여의사, 간호사, 술집여자, 검사, 변호사, 판동의 처 등 무려 1인9역을 맡고 있다 . 연극의 등장인물은 무수히 많지만 배우는 단 3명이기 때문이다.

연극은 20대 애인과 재혼을 앞둔 황재규가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으면서 시작된다. 고아출신인 황재규는 사랑하는 여인과 가정을 이루지만 기형아 를 낳고, 그 아이를 살해해 감옥살이를 하게 된다. 감옥살이 도중 아내는 자신의 친구와 불륜에 빠져 자살하고, 십수년이 지난 지금 제자와의 재혼 을 앞두고 있는 것이다.

“1인9역이다 보니 순간순간 바꿔야 하는 감정처리와 목소리톤의 변화가 쉽지 않아요. 또 쉴새없이 무대와 막 뒤를 오가며 옷을 갈아입고 다시 나 오고 하는 일을 되풀이 하다 보니 1시간30분의 연극을 끝내고 나면 마치 장거리 경주라도 한 것처럼 온몸이 땀에 흠뻑 젖어요.”

이런 하소연이 아니더라도 그의 입술은 벌써 부르텄고 정강이는 멍투성이 다. 무대와 좁은 막 뒤를 오가다 이리저리 부딪쳐 생긴 상처다. 공연 첫 날은 과로로 40도까지 열이 올라 알코올로 온몸을 씻어내기도 했단다. 그 래도 무대에 섰다.

송채환의 연극사랑은 그저 연기력 향상을 위한 차원이 아니다. 그는 매년 한편씩 연극에 출연하고 있다. <쉘부르의 우산> <겨울사자들> &l t파우스트> <고래사냥> 등. 95년엔 <서툰 사람들>로 서울연극 제 연기상까지 받았다. 92년 영화 <장군의 아들2>로 데뷔한 그는 초 기의 청초한 모습을 벗어던지고 과감히 ‘민중 속으로’ 들어왔다. 그래 서 그의 연기엔 사람냄새가 물씬난다(02-3673-2961).

권태호 기자 한겨레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