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음반
1997년07월10일 제 165호 한겨레21

영혼 깨우는 `40년전 베토벤'

“지난 6년 동안 나는 귀머거리의 괴로움을 맛보았다. 나의 운명이 아무 리 가혹하더라도 재능을 충분히 전개할 기회를 갖기도 전에 죽음이 찾아든다면 너무 빠르다고 해 야할 것이다. 죽음이 좀 더 더디게 와주었으면. 그러나 죽음이 나의 바람을 비웃을지라도 만족할 것이다. 죽음은 끝없는 고뇌로부터 나를 해방시켜 줄 테니까…”(베토벤이 32세 때 쓴 <하 일리겐슈타트의 유서> 중). “지옥에 이르는 길이 굳은 결심으로 포장되어 있다는 속담이 사실 이라면 지금이야말로 나는 ‘지옥의 길’을 곧장 달려가고 있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천국을 믿고 있다”(푸르트벵글러가 객지 바덴바덴에서 죽기 직전 아내에게 쓴 편지에서).


일평생 베토벤의 절대음악에 몰두

루드비히 반 베토벤(1770~1827)과 빌헬름 푸르트벵글러(1886~1954). 후 배는 일평생 선배의 절대 음악에 몰두했다. 두 거장의 삶은 폭풍이 몰아치는 하루와도 같았다. 베 토벤이 개인의 고난을 영 혼의 울림으로 승화시킨 것처럼 푸르트벵글러도 두 번의 세계대전, 나치 의 유린, 게슈타포의 감 시, 스위스 망명, 패전 뒤 ‘친나치’ 죄목으로 선고받은 연주금지, 추 방 등 잠시도 그를 놓아주 지 않았던 동시대(contemporary)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초월적인(trans cendent) 음악을 추구했 다.

이들은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달란트(재능)를 마지막 한 방울까지 이 땅에 쏟아부었다. 베토벤 은 귀가 완전히 먹은 뒤에도 지휘대에 서 연주자들의 동작을 주시하며 템 포나 리듬의 사소한 잘 못을 고쳐주었다.

마지막 교향곡 <합창>을 작곡할 때는 피아노 다리 를 자른 뒤 귀를 마루바 닥에 대고 건반의 진동을 느껴가며 작곡했다. 푸르트벵글러는 화약연기 자욱한 2차대전중 독일에 서 매번 마지막 연주가 될지도 모르는 연주회를 이끌었다. 연주회는 공 습경보 때문에 자주 중단 됐지만 관객들은 잿더미를 넘어왔다. 전쟁 뒤 연합국 법정에 선 그는 관 객들의 증언으로 무죄가 인정돼 47년 베를린필로 돌아왔다.

거장들의 묻혀진 녹음을 발굴해 내는 것으로 유명한 타라레이블(프랑스) 이 최근 내놓은 푸르트 벵글러의 베토벤 <교향곡 9번>과 <교향곡 3, 5, 6번> 등 2종의 실황음반은 바로 <합창 >과 <영웅>, <운명>, <전원>이다. 오늘날 푸르트벵글러의 레코드는 대부분 실황이 다.

그는 본래 무대적 인간이어서 청중이 있을 때 비로소 즉흥정신이 살 아나고 연주에 불이 붙었 다. 그래서 스튜디오 녹음에선 원숙하나 어딘지 모르게 노인처럼 힘이 빠진 듯한 갑갑함이 느껴 지는 것이다.

<합창>은 그가 죽기 3개월 전인 54년 8월22일 스위스 루체른에서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루체른 페스티벌 합창단과 함께 연주한 음반이다. 소프라노 에리자베스 슈바르츠코프, 알토 엘자 카벨티, 테너 에른스트 헤플리거, 베이스 오토 에델만 등이 참여했다. 평생 96번이나 <합창> 을 지휘한 그의 마지막 <합창>이다. 베토벤의 마지막 교향곡을 마지 막으로 연주한 푸르트벵 글러의 실황이라는 사실만으로도 CD의 비닐을 벗기는 손끝이 떨린다. 오 랜 세월 탓에, 오디오 바 깥으로 튀어나올 듯한 요즘의 음질은 아니었지만, 이를 상쇄하고도 넘치 는 훌륭한 연주였다. 이

연주가 끝났을 때 한 비평가는 “푸르트벵글러가 베토벤이었고 베토벤이 푸르트벵글러였다”고 극찬했으며 95년 그라모폰상 히스토릭 비성악부문 수상이라는 훈장도 붙 어있다. 연주 서두엔 푸 르트벵글러의 육성이 담겨 있다. 둔탁한 독일어로 “9번은 베토벤 교향 곡 중에서도 최고봉이다. 그는 자신의 고독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거대한 공동체로 회귀했다. 그가 추구한 가치는 그 의 삶과 작품에 모두 녹아 있다. 이것이 우리가 그를 성자처럼 존경하는 이유다. <환희의 송가 >는 9번 교향곡의 대명사처럼 인식되고 있지만 내 견해로는 그의 영 감은 4악장 전반에 걸쳐 동일하다고 본다”고 나직이 말하는 그의 목소리엔 스승의 체취가 풍겨난 다.


“베토벤이 푸르트벵글러를 만난 게 더 큰 행운”

2장짜리 CD로 이뤄진 <베토벤 교향곡 3, 5, 6번>은 52년 12월(3번)과 54년 3월(5, 6번) 자신 의 분신과도 같은 베를린필과 함께한 음반이다. 연주가 끝나고 40년 전 관객들의 박수소리가 쏟아질 즈음 푸르트벵글러가 베토벤을 만난 것보다 베토벤이 푸르트벵글러를 만난 게 더 큰 행운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 각에 사로잡힌다.(문의: 02-208-5333)

권태호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7월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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