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삶/김순경의 맛기행 |
1997년07월10일 제 165호
|
|---|
경기와 충청, 강원도를 관통하며 내륙 깊숙이 이어지는 남한강은 발원지 인 태백산 검용수로부터 1천3백리를 흐른다. 정선 아우라지와 영월 동강의 뱃사람들은 7백리 또는 5백리 물길이라 읊었지 만 물줄기가 그만큼 한스러울 정도로 멀고 길게 드리워져 있다는 뜻으로 짐작된다.
그 옛날 물길이 가장 편한 교통수단이었던 때, 내륙의 모든 문물은 이 남한강 뱃길로 옮겨졌다. 그래서 물길이 닿는 고을을 중심으로 으레 큰 장이 서고, 마을의 생활과 문화의 중심지가 됐다.
뱃길로 왕래가 빈번했던 여주와 충주, 단양을 비롯해 영월과 정선 등 산 간 깊숙한 오지까지도 이 같은 호시절을 누렸다. 특히 생필품인 소금과 옹기를 실은 배가 닿고, 뗏목꾼들이 묵어가는 포구 에는 술집과 여인들까지 모여들어 흥청대기도 했다.
물길의 중간쯤인 단양은 경관이 빼어나, 뱃사람들은 물론 서울의 양반들 까지 뱃길을 거슬러 올 라와 산수와 더불어 주색을 즐기며 쉬어가던 곳이다. 지금의 장회나루와 도담삼봉이 있는 도담나 루는 당시 꽤 경기가 좋았던 곳이라고 한다. 유명한 단양의 띠뱃노래는 이같은 당시의 풍경을 절 절히 담고 있다.
이곳 주막촌에는 남정네들에게 좋다는 보양식들이 맥을 이뤘고, 도담나루 주모들 은 지친 몸으로 다시 먼 뱃길에 오를 주객들에게 용봉탕을 끓여 대접했다 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단양버스터미널 뒤편 음식골목에 들어 있는 삼선추어탕(0444-423-3868) 에서는 옛날의 용봉탕을 재현해 여름철 보양식으로 낸다. <동의보감>과 한약서의 내용들로 약효를 한층 보완했다는 이곳 용봉탕은 우선 봉(鳳)을 상징하는 오골계에 황기를 넣고 푹 삶아낸 물에 용(龍)인 자라를 안 친다. 뚜껑인 별갑(鼈甲)을 벗겨내고 찹쌀과 함께 마늘과 대추 밤을 넣고 , 별도로 작약 천궁 감초 숙지황 따위의 약재를 넣어 푹 무르도록 삼는다.
밥상에는 오골계와 용봉탕 순으로 나오고, 남은 국물에 다시 죽을 더 쑤 어준다. 벗겨낸 별갑은 그늘에 말렸다가 노릇하게 구워 곱게 가루를 내어 술에 타주거나, 술을 못하는 손님들에게는 말 린 별갑을 밤과 대추를 넣고 푹 고아낸 물을 한잔씩 준다.
가장 맛있는 부위는 역시 자라 특유의 각질 부위다. 익으면서 쫄깃해져 누구나 먹기에 좋다. 특 히 배를 덮고 있는 각질은 임금 왕(王)자 모양의 하얀 뼈 몇조각을 남겨 놓고는 다 먹는다. 달고 은은한 뒷맛이 약효 이전에 맛으로 미각을 사로잡고 만다. 보들한 살점 도 기름지지만 전혀 냄새 가 없이 담백하고 고소한 맛이 입에 녹는다. 미식가들의 말대로 맛과 씹히는 질감은 곰 발바닥 같고, 효과는 녹용을 닮았다는 표현이 실감난다.
자라가 많이 잡히던 단양과 영춘, 영월로 이어지는 강변에는 아직도 자 라잡이가 맥을 이어온다. 그 방법이 기상천외하다. 대를 물려오는 자라잡이는 그 비법의 공개를 사 양하지만, 자라의 성격을 꿰뚫은 묘안이 혀를 차게 한다.
먼저 몸에 풀잎을 붙여 물에 떠내려가는 풀단처럼 위장해 슬슬 헤엄쳐 자라에게 접근한다. 2∼ 3m 앞까지 다가가면 잽싸게 자라잡이 그물을 덮어 씌운다. 놀란 자라는 죽어라고 그물을 물고늘 어진다. 고집센 자라는 한번 그물을 물면 절대로 놓지 않기 때문에 놓칠 염려가 없다. 이처럼 어 처구니없는 자라잡이지만, 이런 기술을 가진 사람은 이제 단양에도 몇 안 된다.
자라는 지금이 산란기다. 자라잡이도 이때가 한창이다. 요즘은 잡은 자라 에서 채란한 알을 부화 해 양식하는 데 성공을 거두었다고 한다. 중국과 일본에서 들여온 자라가 판을 치는 판국에 우리 자라로 만든 용봉탕을 다시 먹을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여간 즐거운 일 이 아니다. 가는 길도 중 앙고속도로 서제천 인터체인지가 열리면서, 서울에서 2시간30분대로 닿게 됐다.
멸종 위기에 처한 보약 덩어리
자라는 중국과 일본사람들이 더 좋아한다. 강정식품으로 포장해 판매할 정도다. 우리는 아직 혐 오식품의 개념이 더 강하고, 일부 극단적으로 좋아하는 계층을 위해 무분 별하게 잡아들이다 보니 멸종위기를 맞고 있다. 하지만 좋은 식품인 것만은 틀림없다.
지금이 한참 산란기여서 알이 가득 들고 기름진 자라는 보약 덩어리다. 각질의 단백질은 먹기에 도 좋고, 필수 아미노산과 비타민군이 고루 들어있지만, 인삼이나 녹용 처럼 아직 알려지지 않은 효과가 더 크다.
자라의 피는 정력제이면서 빈혈에 효과가 빠르고, 노인들은 손발이 따뜻 해지고 <규합총서> 에서 왕비탕(王妃蕩)이라 할 만큼 부인병에 뛰어난 효과가 있다. 별갑을 달여 먹으면 부인들의 요 통과 월경불순, 대하증에 그만이고, 용봉탕은 당뇨에도 뚜렷한 효과가 있 다는 사실도 밝혀지고 있 다.
© 한겨레신문사 1997년07월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