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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
1997년07월10일 제 16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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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권력의 2인자로 불리는 김종필 자민련 총재는 그동안 제1인자가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 했으나 정상의 자리에 오르지 못했다. 권력쟁취를 앞에 둔 정치적 고비마 다 김 총재가 보여준 개 인적 선택은 국가의 운명을 바꾸기도 했다. 김 총재는 지난 61년 5·16 쿠데타에 주역으로 참여함으로써 권력자의 길 로 들어섰다. 쿠데타의 정당성여부를 논외로 친다면 그는 권력과의 정면대결을 선택한 것이다. 중앙정보부 초대부장에
이어 63년 창설된 공화당 의장으로서 제1인자를 노리던 그는 69년 박정희 대통령의 장기집권 음 모인 3선개헌이라는 암초에 부딪혔다. 권력과의 대결에 직면해 처음 김 용태 양순직씨 등과 함께 적극 반대입장에 섰던 그는 결국 권력과의 타협했다. 반대입장을 바꿔 69년 5월께부터 3선개헌 지지홍보에 나선 것이다. 그는 국무총리 재직시인 72년 10월 유신선포 때도 애초의 반대입장을 버리고 순응했다. 그러나 그는 79년 10월 유신정권이 김영삼 당시 신민 당 총재를 국회에서 제명 처분할 때 끝까지 반대하다 결국 혼자 반대표를 던지는 ‘소극적 저항’ 을 보이기도 했다.
박정희의 장기집권 그늘에 가려 있던 그는 79년 10·26사건으로 박정희가 암살되면서 공화당 총 재로 취임하는 등 독자적인 집권기회를 맞았다. 그러나 80년 5월 신군부 의 출현으로 꿈은 깨어지 고 부정축재자로 몰려 탄압을 받게 됐다. 그뒤 84년 미국으로 건너가 86 년 귀국 때까지 침묵했다.
87년 6·10항쟁 이후 신민주공화당을 창당, 13대 대선에 독자 출마한데 이어 88년 4월 총선을 통해 원내교섭단체 구성과 함께 정치적 재기에 성공했다. 90년 그는 대 통령제 아래서의 집권에 한계를 느끼고 90년 3당합당을 통해 변화를 꾀한다.
그러나 이 우회전략마저 깨지고 95년 김 대통령한테서 ‘팽’당하는 신 세가 됐다. 그후 자유민 주연합을 창당해 제2야당으로 또다시 화려하게 재기했다. 지난해 4월 총 선 뒤 정치생애 처음으로 장외투쟁에 나서는 등 야당정치인으로의 변신을 보여줬다. 그런 그가 마지막으로 연합집권이란 새로운 실험에 나서고 있다.
© 한겨레신문사 1997년07월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