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리재에서
1997년07월10일 제 165호 한겨레21
한겨레21 편집장 곽병찬

죽어가는 아이 앞에서…

아이가 누워있다.

모로 돌린 얼굴, 눈가엔 굵은 눈물이 맺혀있다. 하얀 이가 창백한 입술 사이로 반쯤 보인다. 물맺힌 눈은 무언가 말하려 한다. 그러나 입은 따라 주지 않는다. 작은 몸집은 보이지 않는다. 살갗만 남은 커다란 머리에 가 려있다. 아직 누울 시간도 아닌데, 아이의 가냘픈 손은 광목 홑이불을 힘 겹게 끄러안고 있다.

그의 물맺힌 눈은 간절히 소망한다. 손잡아 일으켜줄 사람들일까. 먼저 간, 이제 배고픔 잊은 동무들의 영혼일까.

5살쯤이나 되었을까. 어느날 한 아이의 사진이 화살 되어 내게 날아왔다. 영양실조 3기라는 설명이 붙어있다. 대뜸 두 마디의 말이 불쑥 튀어나왔 다. “저 아이에게 무슨 죄가 있길래”라는 것이 먼저였고 다음은 “개새 끼들아, 잘 먹고 잘 살아라”라는 욕설이었다. 앞선 연민의 어구는 뒤따 른 폭언의 어구에 밀려 졸지에 자취를 감췄다. 이어 머리속은 살의로 가 득찬 저주로 미어터졌다. 외면해야지, 외면해야지. 마음을 다잡아도 눈은 한참동안 거두어지지 않았다. 억지로 눈을 돌리면 아이의 눈물이 빨간 핏 방울 되어 나의 적의를 더더욱 자극할 뿐이다. 시인 신동엽님이 절규한 굶주림의 고통을 다시 읊조려도 본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 점잖았다. 배 부른 자들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는 배고픈자의 푸념일 뿐이었다. 굶주 림의 고통을 절규하느니 그는 차라리 뺨따구를 놀부 처에게 들이대는 흥 부의 비굴하지만 현명한 처신을 귀띔하는게 나았다. 그렇지 않으면 임꺽 정의 반역을 가르치거나 정감록의 역성혁명을 선동해야 했다.

한달전 <한겨레21>은 북한의 ‘죽어가는 아이들’을 전했다. 그러나 ‘죽 어가는 아이들’은 추상의 숫자 속에 있었기에 감정은 이성을 쫓아가지 못했다. 지난해 5살 미만 아이들 1만2천명이 죽었다는 발표가 있어도, 올 들어 그보다 훨씬 많은 아이들이 죽거나 죽어가고 다른 30여만명이 영양 실조로 이미 치명적인 불구 혹은 정신지체 상태라는 보고에도 우리 마음 은 그들 곁에 다가서지 못했다. 정부 당국자들이 북한엔 올 한해 먹을 것 이 충분하다고 되먹지않은 생떼를 되풀이해도, 식량을 지원해주면 남침하 는데 이용된다는 입발린 협박을 계속해대도 그런 저주와 욕설이 돌출하지 는 않았다.

그러나 아이는 그 잠든 감정을 깨웠다. 그리고 권력은 거기에 불을 붙였 다. 권력은 이 아이를 포함해 반쪽의 동포가 처한 참상을 카메라에 담은 케이비에스 북한 특집의 재방송을 막았다. 거듭 재방을 예고했던 케이비 에스는 대명천지에 염치불구하고 가해지는 그들의 압력에 본래의 약속과 의무를 저버렸다. 권력은 북한동포돕기성금 모금을 주도해온 민간단체에 대한 강압수사에 착수했다. 그리고 북한엔 연말까지 먹을 양식이 충분하 다고 강변했다. 죽어가는 아이들의 진실에서 우리의 눈을 가리려는 것이 고 그를 위한 작은 정성의 손길들을 모두 잘라버리려는 것이었다. 오로지 “그들은 마녀이며 따라서 그 죽음은 마땅하다”는 암흑시대의 주술만을 주입하려는 것이었다. 그들에게서 염치와 연민을 구하느니 차라리 제어미 잡아먹는 살모사에게 도덕을 구하는 게 나을 것이다. 사람이 수치심과 동 정심을 잃는다면 금수만도 못하다는 맹자의 가르침은 그들이 지배자 중심 의 질서를 유지하는 데에나 이용될 뿐이다.

사람들은 개인의 살인 강도 도둑질을 증오한다. 패거리의 깡패짓도 저주 한다. 그러나 권력의 집단적인 살인(전쟁)이나 살인 방조, 그리고 강도질 (법안 날치기 등)에는 무감각하다. 그들이 강요하는 노예의 규범은 그렇 게 되어 있다.

아이의 눈물을 씻어주고 싶다. 물맺힌 눈가에 아이 본래의 웃음을 돌려놓 고 싶다. 광목 이불의 관을 벗겨버리고, 대신 뛰어놀 땅과 꿈을 펼칠 하 늘을 돌려주고 싶다.

말 못하는 짐승이 오로지 신음과 뒤척임으로만 아픔을 호소하는 모습은 언제나 가슴을 저민다. 하물며 짐승에게도 그러한게 사람 마음인데 오로 지 눈물로만 고통을 호소하며 말없이 죽어가는 이 아이 앞에서 나는 지금 어찌해야 하나.

<한겨레 21> 편집장 곽병찬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7월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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