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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06월26일 제 163호 한겨레21

오스트레일리아의 고아 생체실험

최근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2차대전 직후부터 1970년까지 약 25년간 빅토 리아주의 고아원 아이들을 의학적 실험대상으로 공공연히 이용했음이 드 러나 전국적으로 엄청난 충격과 경악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런 사실은 연방생체연구소(CSL)에서 생산된 인체호르몬 약품의 유해성 여부에 대한 조사과정에서 밝혀졌다. CSL 등의 연구소가 과거 새로 개발한 백신 및 의 약품에 대한 임상실험 대상으로 빅토리아주의 고아원생들을 이용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이때 사용한 백신이나 약품에는 동물에 대 한 안전도 검사에서조차 통과하지 못한 실험단계의 제품들도 다수 포함돼 있었다는 사실이다.

오스트레일리아 일간지 <에이이>에 따르면, 이들 고아들은 실험단계의 헤 르페스 백신이나 성인 분량의 독감백신이 인체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 등에 대한 연구대상으로 이용됐다. 그러한 실험의 결과가 어떠했는지 그 리고 그 부작용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정보가 부족한 상황이지만 몇몇 실 험 대상자가 구토와 피부종기를 경험했다는 사실만 보고되었다. 국민들을 더욱 분노하게 한 것은 CSL가 현재는 민영연구소지만 당시에는 연방산하 기구였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연방정부 차원에서 특별조사위원회를 설치 해 진상을 밝히고 피해상황이 확인되면 보상을 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 하다.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해당 연구소의 입장은 매우 고압적이다. CSL은 “ 과거 연방산하기구였을 당시의 임상규칙에 대해서는 밝힐 수 없으며, 당 시에 고아원 원생들을 대상으로 한 어떠한 의학적 활동도 책임있는 보호 자의 동의를 받아서 이뤄졌다”라는 공식입장만을 내놓고 있다. CSL은 또 “그 결과 역시 대부분 성공적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 빅토리아주 고아원을 거친 사람들은 자신이 어린시절 모르모트처럼 취급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분노를 금치 못하고 있다. 이들 중 하나 로 현재 고아원 보모이기도 한 마거릿 디레데리코는 한 신문 인터뷰에서 “당시 고아원 아이들은 손쉬운 실험대상이었다. 그들을 친자식처럼 보호 할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면서 “아무도 그 실험들의 장기적인 부작용 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없었고 더구나 책임을 지려고 하는 사람도 없다 ”면서 연방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을 촉구하였다.

현재 이 문제는 안전성이 확인되지 않은 의약품을 인체에 투여했다는 사 실뿐 아니라 그와 같은 실험이 자의식이나 판단력이 없는 사회의 ‘최약 자’인 고아를 대상으로 정부기관에 의해 수십년 동안이나 계속되어 왔다 는 점에서 사회적으로 커다란 파문을 던지고 있다.

시드니=정동철 통신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6월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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