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1997년06월26일 제 163호 한겨레21

린당팜의 꺼지지 않는 조국애

(사진/벤탄시장에서 그가 가장 좋아하는 채소 `무응'을 들고 있다.)

<인도차이나> <머나먼 쏭바강> 등으로 잘 알려진 프랑스 국적 여배우 린 단팜(23)의 베트남 귀국이 잔잔한 감동의 화제가 되고 있다. 프랑스에서 대학을 마친 뒤 캐나다 주류회사 씨그램의 현지 마케팅매니저로 고국을 찾은 이 미모의 여배우의 “나는 언제나 베트남인”이라는 자기고백 때문 이다. 이는 다시금 고국으로 귀환하고 있는 ‘베트남 보트피플’들과는 또다른 측면에서, 베트남 개방정책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사례로 인식되 기도 한다.


고국 발전에 기여하고자 귀국 결심

6월초 호치민의 한 카페 ‘잉어우흥(솟아오르는 감응)’에서 만난 린단팜 의 첫마디는 한국말 “배고파요”였다. 지난 93년 <머나먼 쏭바강> 촬영 을 위해 6개월 이상 체류했던 그는 이 밖에도 “하지 마세요”, “빨리빨 리”라는 한국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또 ‘익살꾸러기’ 박중훈의 모습이나 촬영을 끝내고 스탭들이 우르르 몰려가 함께 저녁을 먹던 기억 등 한국에서의 추억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고 전한다. 하지만 그는 그곳 이 한국이건 프랑스건 모두 ‘타국’이기는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프랑스에 있을 때도 나는 베트남 사람이었고, 한국에 갔을 때도 나는 베트남인이었습니다. 서양에 있다고 해서 어떻게 자신을 서양인이라고 생 각할 수 있겠어요. 자신의 뿌리를 정확히 이해하고 현재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죠.”

파리의 ‘미국대학’에서 경영관리학과를 전공한 린단팜이 어머니가 펀드 매니저로 있는 네덜란드나 프랑스를 택하지 않고 ‘조국’ 베트남을 일터 로 택한 것은 그의 이런 고국사랑 탓이다. 린단팜이 이렇게 베트남으로 돌아오기로 마음먹은 데는 지난 96년 8월 방문한 롱하이의 상이군인들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지난해 그는 국제음료회사인 IBC에서 마케팅 실습차 베트남을 방문했었다.

“<인민군대>의 기자와 함께 롱하이의 상이군인들을 방문했을 때, 저는 조국을 건설하고 지켜온 그분들에게 깊은 감동을 받았어요. 그래서 저도 사회에 조그마한 보탬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고국행을 결심했 습니다.”

린단팜은 1974년 사이공에서 태어났다. 사이공이 ‘해방’되던 그 이듬해 그는 부모를 따라 프랑스 파리로 이주했다. 그리고 ‘서구와 한국의 시각 ’에서 만든 영화로 먼저 베트남전쟁을 배웠다. 그런데 ‘조국건설’을 위해 몸을 바친 상이군인들은 그에게 ‘그의 눈으로’ 조국 베트남을 보 도록 가르쳤다.

하지만 그의 베트남행을 가능하게 했던 또다른 요인이 베트남의 개방정책 이었음은 분명하다. 시장개방을 통한 경제성장이 외국기업을 베트남으로 불러들였고, 린단팜은 그 과정에서 외국회사의 현지근무자 형태로 베트남 에 발을 들여놓았으니 말이다.

카페에서 그는 참 열심히 먹었다. 향이 독특해 외국인들은 좀체 익숙해지 지 않는 향채, 풀이파리며, 새우젓소스인 맘뜸 등 가리않고 정말 맛나게 먹었다. 그가 좋아하는 무응이라는 채소볶음은 아예 한 접시를 더 주문해 그 옆에 따로 놓았다. 역시 그는 베트남 사람이었다.

세계적인 누드모델 이승희의 고국방문으로 김포공항에 수백여명의 취재진 이 몰리고 12박13일의 짧은 기간에 얼마를 받아갔느니 하는 소식들이 이 곳까지 전해진다. 그러나 베트남에 아직까지 ‘스타신드롬’이란 게 없다 . 어쩌면 그는 정작 베트남에서보다 프랑스나 한국 등 해외에서 더욱 잘 알려져 있는 듯하다. 조국이 가장 어려웠던 시기에 고국을 떠나 있었던 그(아니 그의 부모)를 바라보는 이곳의 시선도 그리 곱지만은 않은 게 사 실이다. 영화 <인도차이나>가 베트남 텔레비전에 방영되고 간간이 신문· 잡지 등에 그에 대한 인터뷰기사들이 소개되곤 했지만, 거리에서 그를 알 아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래도 자연인으로 돌아가 고국의 품에 안긴 그는 마냥 행복한 표정이다.


곱지 않은 시선에도 행복한 표정

인터뷰를 마치고 빨간 우비를 걸친 그가 오토바이 뒤에 올라타 함께 왔던 아버지의 허리를 두팔로 꼬옥 둘렀다. 그리고 린단팜을 실은 오토바이는 빗방울이 떨어지는 거리에 강을 이루는 거대한 오토바이 행렬 속으로 사 라져갔다.

그 모습이 마치 ‘조국해방전쟁’에서 갈라졌던 베트남 민중이 이제 ‘개 방된 사회주의’ 베트남에서 다시 합쳐지고 있는 것으로 비쳤다면 지나친 상상일까.

호치민=구수정 통신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6월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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